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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Dec 31. 2023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dum spiro,spero

참지, 마요 _내적욕구 _희망을 갖고 살기

"일본 디즈니랜드 직원들 사이에 퍼진 괴담이 있다는데 들어봤어?"

"뭔데?"

"가족단위 방문객들 중에 이런 가족이 있는지 유심히 지켜본다는 거야."

"어떤?"

"카메라 없이 다니는 가족"

"카메라?"

"그래 카메라"

"그게 왜?"

이 이야기를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그리고 그 괴담이 사실인지 여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그 시기도 가물가물 한데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카메라 대용으로 쓰이기 한참 전이었으니 아마도 십여 년 전이었을 것이다.


잠깐의 숨 고르기 끝에 들려온 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랜드 내 숙소에 가족 전체가 집단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더라고 했던 것. 나는 그 설명까지 듣고 적지 않은 충격과 함께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일 사람들에게 미래를 위해 남겨둘 사진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임으로.


나는 한동안 악몽에 잠을 설치곤 했다. 목에 사진기를 건 아빠와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즐거운 표정으로 디즈니랜드를 거니는 보통의 가족들과, 유독 어두운 조명을 받은 듯 카메라 없이 침울한 부모와 천진한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이 대비되어 나오는 꿈.


카메라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기계가 아니라,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는 희망의 상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된 그때. 요즘이야 너도 나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지라 그런 표면적 관찰이 가능해진 세상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개인 SNS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래도 건강한 희망을 품고 잘 살아가는 중이구나라며 안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혹 그 반대의 경우라면?)


불굴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어니스트 새클턴 경의 이른바 '위대한 실패' 스토리에도 카메라가 등장한다. 1914년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남극 횡단에 도전했다가 조난을 당하지만 약 637일 만에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전원 귀환한 기적 같은 이야기. 그들이 타고 떠났던 배의 이름이 Endurance(인내)호였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책임감이 강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늘 긍정적이었다는 새클턴 개인 리더십 특성 보다 나는 유독 그가 필사적으로 챙겼다는 물건에 더 눈이 갔다. 그 물건은 바로 카메라였는데, 1900년대의 카메라란 것이 지금처럼 휴대용이 아니라 장정 두 명이 짊어져야 옮길 수 있는 중장비였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필요한 물건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새클턴은 단호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남극을 횡단하면서 지치고 힘든 대원들에게 때때로 설상 운동회 등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 자체 '우리는 반드시 돌아갈 수 있고 그때 지금 찍은 사진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라는 강력한 독려가 됐을 터. 새클턴이 카메라를 눈에 보이는 희망의 상징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dum spiro, spero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굳이 정확히 번역하자면 '나는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로 읽힌다지만, 좀 멋을 부린 고대 현인의 명언으로 알려진 김에 그 의미만 취하기로 한다. 


일기를 쓰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그날의 인상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기억에 새기는 일.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이지만 마침 1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간의 기록들을 되돌아본다.


의식의 카메라에 찍힌 나는 여전히 무명의 글쟁이이고,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흔 여덟의 가장이지만, 365일 빠짐없이 축적해 온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내게 선명한 길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다. 그것을 희망이라 믿지 않을 이유도 없다.


나를 절망케 하는 모든 요소요소에 참지 않기를, 

그 힘으로 또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를 맞이하기를, 

그렇게 24년의 새 카메라를 준비한다.


그대, 살아 숨 쉬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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