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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죽음에 대하여(2)

외할아버지의 별세

by 흐름 Mar 26. 2025

 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그토록 죽고 싶었던 마음이 무색해질 만큼 장례식장은 눈물바다였다. 비누가 그 역할을 다해 닳고 닳아 아주 ‘잘 닳았구나’라고 말한만큼 마모되고 작아져 여한이 없었다.  


 서울대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다>라는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거기서 본 ‘soap’ 시리즈는 다 쓴 비누를 촬영해 전시해 두었다. 비누의 세정력을 다해 소멸되는 과정은 비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외조부의 왜소하고 취약한 모습은 그런 비누의 모습과도 같았다. 더 이상 닳을 곳도 없을 만큼 너무나도 ‘잘’ 닳았다.  

아름답고도 쓸모 없어진 지우개 <시간을 보다> 서울대미술관 전시작품아름답고도 쓸모 없어진 지우개 <시간을 보다> 서울대미술관 전시작품


 향년 93세, 일평생 일제강점기와 6.25, 월남전쟁을 거쳐, 가난과 고통의 시절을 딛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평화와 부를 누리는 시대에 머무르게 되셨다. 외조부께서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셨다. 외조부께서 겪으신 풍파는 우리가 상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장수하신 외조부의 상은 호상이었다. 갑작스런 죽음도, 당황스런 죽음도 아닌 누구나 예견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은 슬픔으로 메워졌다. 누군가의 죽음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이별, 그리고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처럼 깨진 것이었다. 만약 외조부가 있는 자리에 젊디젊은 내가 누워있었으면 어떤 충격을 가하는 것일까? 내가 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악질의 가학 행위였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라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과연 내가 죽으면 울 사람은 있을까? 모든 사람의 미소가 가식처럼 보일 그 무렵 나는 어쨌든 살고 싶었다. 죽고 싶다 외치면서도 내 마음 깊숙이 들려오는 ‘살려줘’라는 목소리를 다행히 나는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가족이 맞이하는 첫 장례식은 내가 아닌 아주 잘 닳은 비누였다.


 외조부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반 세기 넘게 살아오신 그는 마치 마지막 순간 아이와도 같이 작고 가냘펐다.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런데 우리는 일 평생 대체 무엇을 위해 애쓰고 구구절절하나,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움켜잡으려고 하나. 그저 그렇게 여기에 잠시 머물렀다가 갈 존재일 뿐인데 말이다. 외조부의 장례식은 ‘죽음’에 대해 일깨워 주셨다--죽음과 생명 앞에서 항상 한없이 겸손할 것. 나의 죽음과 생명은 ‘나’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있다가도 한 찰나 사라질 수 있는 위대하면서도 덧없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나의 어머니는 어찌나 서글프게 우시던지, 지금까지 받아온 그녀에 대한 외조부의 사랑이 살갗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면 아주 잘 닳은 비누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온 가슴으로 없어진 것을 감싸 안으려고 애쓸까. 잘 닳은 비누 앞에서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이 제 스스로 줄기를 끊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하실 수 있을까. 가슴 부여잡고 동동 구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경이로운 생명 앞에 다시금 정숙해졌다.


 그러니 “죽고자 한다면 그 마음으로 살아라. 살아서, 네 오욕과 자괴감, 절망, 모두 견뎌라. 죽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버텨내거라!” --<선덕여왕>中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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