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요일마다 바뀌는 주인장 : 요마카세] 연재물입니다.
“언니, 나 다 때려치고 그냥 요가강사나 될까?”
점심시간을 마치고 단과대 1층 커피숍에서 동기 언니오빠들과 이야기 나눌 때면 자주 하던 말이다. 연구라는 것은 끊임없는 나와의 싸움이자 타인과의 비교였다. 나만의 분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긴장감은 일상을 숨 가쁘게 만들었다. 그리고 뉘앙스에서 느꼈다시피 ‘요가강사’는 그 당시에 하고 있는 공부보다 훨씬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왔다--아직 강사 자격증도 없으면서 요가강사가 쉽다는 것은 어떤 오만이었을까? 그러나 악착같이 공부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요가강사가 되는 것이 이것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가 수업 때면 선생님께서 반복하시는 말씀은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호흡해요”였다. 그냥 이런 말들이 좋았다, 그리고 내 몸뚱이가 처절하게 필요한 말이었다. 내 몸은 호흡이 필요했다. 호흡명상을 배우는데 내 호흡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깊게 호흡하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 깊게 호흡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잡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느껴졌다. “딱 한 시간만큼은 생각을 비우고 호흡해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만약 이 시절 나에게 요가가 없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요가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시끄럽고 번잡한 내 두뇌를 고요하고 차분하게 안정시킬 수 있는 안정제 같은 존재였다.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말이 필요했다. 나의 생각의 꼬리를 잘라내 잠시 멈춘다는 것은 용기이자 선물이었다. 공부를 하고 과제를 제출하는데 끊임없는 ‘생각’이 필요했다. 한 학기는 나의 욕심 때문에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했는데, 일주일에 최소 4~5권의 전공서적, 최소 15편의 논문을 읽어야 했다. 이 리딩을 바탕으로 토론도 하고 시험도 보고 프레젠테이션도 진행해야 했다. 사실상 24시간이 모자를 정도였으니 제발 하루가 32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이렇게 숨 가쁘게 지내다 보니 내 몸은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잠시 두 눈을 감고 한 호흡 깊게 코로 들이마시고, 내 쉬어 보자. 그러면 잠시나마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호흡의 효과는 대단하다. ‘요가나 하면서’ 살게 되면 이런 평온한 호흡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폭풍우 치는 바다 파도가 아닌 잔잔한 호수 위의 두둥실 떠다니는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고대 요기들은 인간의 수명은 시간이 아닌 호흡의 횟수로 정해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깊고 긴 호흡은 생명을 연장시킨다. 호흡을 연구한 제임스 네스터도 그의 책 “호흡의 기술”에서 깊고 긴 호흡이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말한다.
인정의 욕구가 솟구치는 나에게 ‘잘’ 해야 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 의미와도 같았다. ‘잘’ 하지도 못하면 굳이해서 무엇하리. 칭찬받으며 자라온 삶은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칭찬의 한 마디가 없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웠다. 따라서 나는 칭찬을 쫓아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높이 높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무엇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거머쥔 듯했지만 손가락 사이 바람 스쳐 지나가듯 모든 것을 잡지 못했다. 그 모든 것들은 사실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의 주변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외롭고 쓸쓸했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소리치고 싶었다. 괴로웠다. 나의 삶은 휘황찬란해 보였지만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걷고 있었다.
[요마카세] 수요일 : 집착과 노력사이
작가 : 요기니 다정
소개 : 국제 정치 배우다 요가 철학에 빠지게 된 사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것은 집착일까 노력일까 방황하며 지냈던 세월을 공개합니다. 누구나 힘들 수 있고,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그 질문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