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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Oct 12.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21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존경도 사랑? - (13)

문승협은 간밤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음에도 아침에 눈을 뜨니 온몸이 찌뿌듯하였다. 뒤숭숭한 꿈을 꿔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그대로 이부자리에 누워 꿈을 복기해 보았다.

‘택시를 타고 갔던 서수연선생이 문승협집 앞으로 찾아와 홍지아와 관계를 추궁하더니 울면서 뛰어갔다. 옆집대문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홍지아가 서수연선생을 쫓아가는 문승협을 가로막으며 다짜고짜 키스를 퍼부었다. 홍지아가 키스를 거부하는 문승협에게 청혼하더니 강제로 결혼식장으로 끌고 갔다. 문승협을 응시하며 신부입장을 기다리는 여자는 뜻밖의 최선경이었다. 최선경이 웃는 표정으로 결혼행진곡에 맞춰 문승협을 향해 걸어오는데, 갑자기 얼굴이 지선이라는 아이로 바뀌었다.’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 복잡한 상황. 다시 생각해 봐도 뒤죽박죽 된 희한한 꿈이었다.

이틀을 쉬며 캠핑에서 얻어온 여독을 풀었다. 유선국민학교 오성희선생과 엄정한선생의 결혼식에 갔다. 신랑 엄정한선생이 축하인사를 건네는 문승협을 꽉 껴안으며 반겨주었다. 오성희선생은 신부대기실에 들어선 문승협을 환한 웃음으로 반겼으나,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두 손을 잡았다.

“선생님, 결혼 축하드려요.”

“승협아, 와줘서 고맙다.”

“행복한 결혼식인데 우시면 어떡해요.”

“너를 보니까, 갑자기 선경이가 생각나서.”

문승협도 최선경생각에 울컥했지만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어지는 신부축하객들 때문에 더 머무를 수 없었다.

신부대기실을 나와 5학년 때 담임 고삼랑선생과 교장교감선생을 찾아다니며 여기저기 인사하기 바빴다. 선생들뿐 아니라, 문승협과 함께 했던 방송부와 학생회, 6학년 3반 친구들도 와있었다.

예상한 대로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선경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질문받은 제갈민주가 문승협 눈치를 살피며 말하느라 곤혹스러워하였다. 이정주와 김철종은 서글픈 표정으로 문승협의 등을 토닥였고, 차여선과 현기정이 눈물을 글썽이며 문승협의 손을 잡았다.

김용남이 문승협에게 어깨동무하며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김진철이 앞장서 동창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이끌었다. 거기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김일한이 반갑게 문승협과 악수하고 나서 유선국민학교 후배들을 불렀다.

“느그들이 방송부와 학생회의 전설이라고 부른다는 그 문승협선배여, 인사들 해.”

“안녕하세요, 저희는 현재 6학년 반송반이에요. 이렇게 선배님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희는 선배님 덕택에 학생들의 직접투표로 뽑힌 학생회장하고 임원진이어요, 선상님들한테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어라.”

“나는 전설로 불릴 만큼 그렇게 대단한 선배가 아니에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염병, 또 겸손 떨고 있네.”

“어, 가병수. 야, 너희들도 왔구나, 오랜만이다.”

문승협이 가병수와 몇몇 동창들과 안부인사를 나누는데 누군가 등을 툭툭 쳤다. 돌아보니 박진숙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문승협의 팔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문승협은 더 이상 억눌렀던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옆에서 안타까워하던 제갈민주도 눈물을 쏟았고, 참아보려던 차여선과 현기정도 따라 울었다.

“느그들 시방 뭐더냐? 신부아부지도 안 울고 있는디, 지랄들 한다 참말로.”

“…….”

“어허, 누가 보믄 옛 애인 결혼식장에 와서 청승 떤다고 하겄단께?”

“…….”

“으째, 내가 이결혼파토요하고 소리 한번 지르까?”

김철종도 마음 아팠으나, 최선경죽음을 애도하기에는 장소와 환경이 그런지라 냉정하려고 애썼다. 김철종다운 에두른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였다. 모두 진정하고 한마음한뜻으로 오성희선생과 엄정한선생의 결혼을 축복했다.

많은 하객들의 축하로 결혼식을 마쳤지만, 친구들이 각자 길을 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문승협이 약속 있다는 핑계로 먼저 떠났다. 다들 다음에 연락하자는 인사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렇게 제각기 가는 줄 알았으나, 김철종과 제갈민주가 문승협을 쫓아와 빵집으로 데려갔다. 빵집에는 김용남과 김일한을 포함한 방송부와 박진숙이 있었다. 가병수와 현기정이 쟁반에 빵과 음료수를 담아 가져왔다.

처음에는 중학생활을 중심으로 각자 경험하였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다들 의식적으로 최선경이야기를 피했지만, 역시나 직선적인 박진숙이 꺼냈다.

“선경이가 승협이한테 더없이 소중한 친구지만 우리한테도 소중한 친군께, 내가 솔직히 제안하나 하께.”

“그래, 할 야그는 하자. 말 안 한다고, 서로 맘을 모른 것도 아닌께.”

“뭔디야, 발전적으로다가 야그 해봐.”

“우리 동창회를 선경이 생일날 하믄 으짜까? 그래갖고, 3년만 추모했으믄 한디.”

“우린 괜찬한디, 동창회 때 오는 다른 친구들이 우째 생각할란가 모르겄다.”

“추모라고 해서 뭐 거창한 거 아니고, 그냥 시작할 때 기도정도만 해도 되잖애.”

“하기사, 동기들 중에 맨첨으로 하늘로 갔는디, 그 정도도 못한다믄 동창회 오지 말아야제.”

“그래 맞어, 선경이가 또 동기들한테 얼마나 잘했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하자.”

“나도 동의하께.”

“나도.”

“나도.”

“그라믄, 여그 친구들이 다 동의하고 회장단도 다 있은께, 그렇게 정해서 통지하자.”

“그래, 요번 동창회는 11월 19일이다잉. 장소는 따로 정해서 알려주께.”

그렇게 번개모임이 끝나고, 박진숙과 문승협은 집 방향이 같아 함께 걸었다.

“진숙아, 고맙다.”

“너는 여전하다잉, 그렇게 친구들 간에 고맙다는 말 하지 마란께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염병, 선경이는 내 친구이기도 해.”

“하하, 그래, 미안.”

“어허이, 미안은 또 뭐시대?”

때마침 6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렸다. 동시에 국기하강식이 거행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방향을 찾아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였다.


국기하강식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고취를 위해 1971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행인뿐 아니라, 도로 위 횡단보도에서조차도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심지어 운전 중일 때도 정차하고 차내에서 차려자세를 취하였다. 동절기는 오후 5시, 하절기는 오후 6시에 시보가 울렸다.


온 세상이 일시정지된듯한 국기하강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진숙이 최선경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쳐냈다. 모른척하려고 몸을 틀어선 문승협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서로 눈물을 감췄으나 느껴지는 숨소리로 이미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알기에 갈림길까지 말없이 걸었다. 둘은 헤어지면서 잘 지내라는 말에 진심을 담아 위로를 건넸다.

“승협아, 하늘에 있는 선경이도 우리가 잘 지내길 바랄 것이어. 긍께, 너도 잘 지내.”

“그래, 진숙이 너도 잘 지내, 더위도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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