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46)
시계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어젯밤 오르골을 틀어놓고 깜박 잠들었다. 열려있는 추억상자를 정리하여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오르골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정난희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으로 여겼다. 책꽂이 가운데 꽂혀있는 ‘탈무드’에 시선이 갔다. 정난희가 생일선물로 준 책이었다. 무심코 꺼내니 엽서 끼워진 부분이 펼쳐졌다. 밑줄 쳐둔 글귀가 눈에 띄었다. ‘두 개의 화살을 갖지 마라, 두 번째 화살이 있기에 첫 번째 화살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뇌리가 번뜩하였다. 두 개의 화살이 최선경과 정난희라 치면 당장 집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했다. 최선경선물로 얻은 고뇌를 정난희선물로 해결하는 지혜를 얻었다. 씁쓸히 정난희가 써준 엽서를 보았다. ‘사랑해’로 끝나는 맺음말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월요일아침이라 등교걱정에 심장이 덜컹하였다. 아직 방학이 일주일 남았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또 공부하러 가야 했다.
이틀뒤 서울대학교규장각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한 일본해군성 수로국판 지도원본을 공개하였다. 온 국민이 혼연일체 되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쳤다. 서울올림픽조직위가 올림픽공식마스코트를 호랑이로 확정한 다음날, 난데없이 전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었다. 오전 10시 58분경 동사무소에서 울린 사이렌과 긴박한 안내스피커소리가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서울·인천·경기도지역에 공습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뭐여, 뭔 일이어.”
“맨날 하던 민방위훈련이겄제.”
“아야, 실제상황이라 안 하냐?”
“으짜쓰까잉, 뭔 일이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며 공포에 빠졌다. 태평스레 생각한 사람들도 태세를 바꿔 우왕좌왕했다. 일선 군부대에서는 무장을 갖췄다. 거리의 시민들이 가까운 공습대피소로 다급히 뛰었다. 시립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도서관뒤편 방공호로 피난하였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중 공중폭격에 대비하여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만든 인공동굴이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학생들 눈빛이 불안초조했다. 장기원이 심각한 분위기를 망각하고 허풍 떨다 원성을 샀다. 30분쯤 뒤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곧이어 북한공군장교가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하였다는 간략한 발표가 있었다. 그제야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공포의 도가니에서 벗어났다.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던 오후에 정부가 공식브리핑을 했다. ‘북한군파일럿 이웅평상위’가 MIG-19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하였다며 시간별 상황을 공개했다.
한국은 팀스피릿훈련 중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준전시경계태세였다. 오전 10시 30분쯤 로켓사격훈련을 위해 MIG-19 편대가 평안남도개천비행장을 이륙하였다. 전투기 1대가 편대를 이탈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추격하는 북한기들과 레이더망을 피하려고 고도 50~100m를 유지했다. 저공비행을 하며 시속 920㎞의 전속력으로 남하하였다. 10시 45분경 황해남도해주시 상공을 지나 연평도상공서해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에 진입했다. 동시에 대한민국방공망도 MIG-19 전투기를 포착하였다. 팀스피리트훈련으로 초계비행하던 공군 F-5 전투기들이 즉각 요격에 나섰다. 미그기가 대한민국공군과 조우하자 날개를 좌우로 흔들어 투항의사를 밝혔다. 이른바 ‘뱅크기동’이었다. 적기를 만날 경우 귀순·항복·교섭 등 저항의지가 없음을 표시하는 국제공용표현이다. 육상전이나 해상전의 백기와 같은 역할이었다. 대한민국공군 F-5가 미그기를 유도하여 11시 4분쯤 제10 전투비행단인 수원비행장에 안전하게 착륙시켰다.
이후 상황은 기자들의 전언으로 잇따랐다. 이웅평이 착륙한 뒤에도 콕핏에서 나오지 않았다. 미그기를 둘러싼 국군병사들이 총을 겨눴다. 악의가 아닌 돌발상황대비였다. 이웅평이 불안한 대치상황을 깨려고 콕핏 안에서 손들며 공개적으로 투항을 외쳤다.
“나 할 말 많습네다.”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안심하고 나오셔도 됩니다.”
“나 총에 맞지 않게 해 주시오.”
이웅평이 쏘지 말라고 부탁하자, 국군은 총을 내린 뒤 병사들을 철수시켰다. 이웅평이 콕핏 밖으로 무사히 나와 국군에 인계되었다. 정부가 귀순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했다.
다음날 초저녁뉴스에도 장시간 할애해 긴박한 상황을 조명하였다. 29세 이웅평이 한국계급으로 치면 중위이며, 전쟁준비에 광분한 북한실상을 알리러 왔다고 전했다. 조사를 마치면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을 끝으로 국민학교입학뉴스가 이어졌다. 어린아이들이 손수건과 명찰을 달고 엄마손에 이끌려 학교운동장에 모여드는 광경이 정겨웠다. 채널을 돌리니 KBS2에서 ‘사랑방중계’가 첫 방영하였다. 인터뷰·일반상식·이웃 등에 관한 일상생활정보를 제공하는 정감 어린 내용이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시사교양프로였다.
전쟁 같은 이틀이 지났다. 신학기개학을 앞둔 마지막 일요일이라 도서관에 학생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문승협만큼은 아침에 정난희전화를 받아서 즐거워야 함에도 역시 심난했다. 어쩐 일인지 통화시작부터 퉁명스러웠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짜증을 냈다. 묵묵히 말을 들어줘도 대답이 없다며 화냈다. 문제해결을 위해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격앙된 목소리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되질문하였다. 결국 ‘우리 그만 헤어져’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헤어지자는 말을 들어 억울하였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라고 물었다가,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 바보천치가 돼버렸다. 혹시 지난주 최선경물건 때문이냐고 하니 단호히 아니라고 했다. 몇 번을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답을 안 줘서 답답하였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어떻게든 연장하겠지만, 다툼으로 번지는 통화를 막을 재간은 없었다. 말이라는 것이 당시의 말투와 공기 등 여러 뉘앙스가 뭉쳐 의미로 전달되는데, 정난희에게 뭔가 일이 생겨 감정이 격화되었다는 사실 외엔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하였다. 사랑이 변치 않으리라는 착각을 준 것은 신의 가장 큰 실수였다. 그 혼란은 고스란히 인간 문승협의 것이었다. 사랑인데 왜 이렇게 아픈지 신께 따져보고 싶었다.
문승협이 공부하다 말고 중얼거렸다. ‘난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침 천영기와 이담이 와서 문승협어깨를 툭 쳤다.
“뭔 생각하길래 우리가 온지도 모르냐?”
“또 난희 때문이그만?”
“조용히 좀 해, 남들 공부하잖아.”
“나가자, 바람이나 쐬게.”
야외휴게실로 가려면 2층 남자열람실에서 내려와 1층 여자열람실 앞을 거쳐가야 했다. 항상 지나갈 때마다 여학생들이 힐끗 거리며 우호적으로 쳐다봤으나, 얼마 전부터는 예전 선망의 시선은커녕 본체만체하였다. 혹여 쳐다보더라도 뭔가 불편해하는 눈빛이었다.
“저 가시나들이 으째 우리를 삐딱하게 쳐다보까?”
“우리가 아니고 영기 너 아니어?”
“내가 으쨌다고야?”
“백미정 땜시 그런갑드만?”
“염병하네, 거그서 으째 백미정이 나온 다냐?”
“내가 아냐, 궁금하믄 가서 물어보든가.”
천영기와 평판이 나쁜 백미정이 사귄다고 소문이 돌았다. 기정사실로 확인되면서 여학생들이 천영기뿐 아니라 문승협과 이담까지 안 좋게 봤다. 천영기로 인해 빼빼로삼총사의 명성이 시들해졌다. 세 명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학생들 스스로 좋아하여 붙인 별명이었지만, 이를 즐기던 이담이 제일 아쉬워했다. 천영기와 이담이 변해버린 여학생들 시선과 백미정이야기로 티격태격하였다. 문승협이 아무 의미 없는 인기라며 중재했음에도, 계속된 이담의 공격에 천영기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였다. 자칫 싸울 것 같아서 공부나 하자고 달랬다.
셋이 다시 열람실로 가는데, 장기원이 문승협을 불렀다. 천영기와 이담은 옥신각신하며 올라갔다.
“아따 오랜만이다잉?”
“그러네, 방학은 잘 보냈냐?”
“그냥저냥, 다들 공부밖에 더하냐?”
“에휴, 공부도 쉽지가 않다.”
“벨 수 없제 뭐, 학생인디 공부나 열심히 해야제.”
“우아, 장기원이가 공부만 하기로 마음 잡았네?”
“요즘은 쪼까 공부할 만 하드라, 문제는 지구력인디, 고것이 문제여. 니는 안 그냐?”
“나도 마찬가지지 뭐, 이 짓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아야 그건 그렇고, 천영기랑 백미정이랑 사귄다냐?”
“기원이 네가 알았으면, 목포시 전체가 다 아는 거네.”
“으짜다가 천영기랑 백미정이 사귀게 됐대?”
“글쎄, 궁금하면 영기한테 직접 물어봐.”
“백미정소문이 벨로 안 좋던디?”
“나는 백미정이 어떤 애인지 잘 몰라.”
“허벌창나부렀다든디, 완전히 쌩날라리라드라.”
“무슨 말이야, 허벌창나다니?”
“아따, 날으는 침대라는 뜻이여.”
“날으는 침대?”
장기원이 천영기 걱정 반, 백미정 비난 반 섞어가며 조잘거렸다. 문승협은 천영기가 소문을 알게 될까 염려 반, 천영기교제를 말려야 할지 고민이 반이었다. 장기원에게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단속했다.
문승협이 열람실에 들어서자, 천영기가 장기원과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문승협은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해 전국적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진 3.1절도 시립도서관은 붐볐다.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념하고 계승발전시켜, 민족단결과 애국심고취를 위해 제정한 국경일이나, 대입학력고사준비에 여념 없는 고3학생들은 의미를 찾지 못하였다.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인 선열들위업보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교과서와 참고서가 먼저였다.
천영기와 이담이 야외휴게실 한편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언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며 술렁였다. 문승협이 다급히 뛰어가 말렸다.
“야, 너희들 목소리 낮춰.”
“…….”
“사람들이 다 듣는데, 여기서 뭐 하는 짓거리래? 점심은 먹고 싸우는 거야?”
“잉, 방금 먹었어.”
“잘하는 짓이다, 아주 도서관이 떠나가겠다.”
“니는 밥묵고 오는 길이냐?”
“응, 집에서 먹었어. 그래, 둘이 왜 그러는데?”
“백미정 땜시.”
“왜, 백미정이 어째서?”
“들은 소문을 야그했드만, 이 시끼가 신경질이냐.”
“야 새끼야, 그라믄 그것이 친구한테 할 소리여?”
“내가 뭘 잘못했는디, 나는 니 생각해서 한 소리여.”
“아무리 그렇드라도, 친구가 사귀는 가시나한테, 날으는 침대라는 말을 해야 쓰겄냐?”
엊그제 장기원입에서 나온 ‘날으는 침대’는 또래들끼리 쓰는 속된 표현이었다. ‘남자를 가리지 않고 쉽게 잠자리하는 정조 없는 여자’를 지칭하였다. 행실이 바르지 않은 ‘날라리’보다 더 비하하는 뜻이었다.
“그것이 내가 한 말이어? 남들이 그러드라고 했제?”
“이 새끼야 고것이 고것이제 뭐여?”
“어허, 말끝마다 이 새끼 저 새끼 할래?”
“할란다, 으째, 나랑 한번 맞짱 뜨까?”
“야 그만해, 그러다 진짜 치고받고 싸우겠다.”
“좋은 말도 많찬애, 날으는 침대가 뭣이어?”
“그라믄 떠도는 말을 각색하리? 품행이 나쁘다든가 몸이 헤프다고 했으믄 암시랑토 안 해?”
“이 개새끼, 진짜 말 고따구로 할래?”
“그래, 쳐봐라, 어디 쳐봐?”
“그만하라고 제발, 얼른 떨어져, 빨리.”
“한 주먹도 안 되는 새끼가 까불기는 어디서 까불어?”
“영기야 진정해. 너 그러면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표현 때문에 그런 거야?”
“…….”
“담이가 무슨 마음으로 말했는지는 알 거 아냐?”
“시끄러 시끼야, 니도 저 새끼랑 별반 다를 바 없어.”
이담은 몸이 헤픈 날라리라는 백미정소문을 학교친구들에게 들었다. 친한 친구가 그런 가십에 휩싸여 자신조차 자존심 상한 상태였다. 백미정과 사귀는 걸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 조심스레 전했으나, 천영기를 극도로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문승협이 천영기를 진정시켜 가며 기승전결정리했다. 절친한 친구가 이상한 소문에 휩싸인 여자와 사귀는 걸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없다. 또 그런 소문을 가감 없이 전해 듣고 화를 안 낼 사람도 없다. 조금차분해진 천영기와 이담에게 서로 사과하라며 채근하였다.
“니 말도 옳다, 니 말도 옳다, 니가 뭔 황희정승이어?”
“너희들 서로의 입장에서 대변한 거야, 내가 어찌 훌륭하신 황희정승만 하겠냐.”
천영기와 이담은 솔직한 본심을 다시 토로했다. 서로 화해하였지만 내적갈등은 있었다. 문승협과 이담은 백미정과 사귀겠다는 천영기를 설득하기 어려움을 간파했다. 천영기는 두모범생친구의 염려를 익히 알았으나 백미정에게 가있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다. 문승협과 이담에게는 그런 걱정이, 천영기에겐 그런 눈치가 남아있었다. 당장은 어쩌지 못해 그냥 묻어두고 열람실로 올라갔다. 각자 자리에서 공부하였다.
두어 시간 지났을 무렵, 문승협이 이담을 조용히 밖으로 불러냈다.
“왜, 뭔 할 야그 있냐?”
“아니, 그냥 바람이나 좀 쏘이자고.”
“언능 말해, 니 얼굴에 다 써있어, 나 할 말 있소 하고.”
“하하, 그래? 저기, 영기랑 백미정 말이야, 우리가 그냥 이해했으면 해서.”
“아야, 우리가 친구나 된께 그런 말 하제, 아니믄 뭐 한다고 관섭하겄냐.”
“맞아, 친구니까. 우리가 친구니까 영기를 이해하자고.”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지가 좋다는디 누가 막겄냐, 친군께 아쉬워서 그라제.”
“백미정소문이 그렇다지만, 사실 확인된 것도 없잖아?”
“그건 그라제.”
“설사 그 소문이 사실이더라도 영기의 선택이니까, 우리가 존중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아.”
“알았어, 그라자 그라믄. 영기 그 시끼는 우리가 뭐라 해도 지맘대로 할 것이다, 전혀 상관없이.”
“그래서 영기별명이 천방지축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천방지축마골피잖아.”
“염병, 별명 한번 무자게 잘 붙였단께.”
문승협이 천영기를 두둔했지만, 백미정에 대한 거부감은 아직 존재하였다. 문승협과 이담의 대화가 끝날 즈음, 천영기가 두리번거리며 찾아왔다.
“아야, 나만 빼고 느그 둘이서 뭐 하냐?”
“아, 답답해서 바람 쐬러 잠깐 나왔어.”
“내 뒷다마 깐 것은 아니고?”
“귀신이네, 너 욕하느라 우리 입이 다 아프다.”
“허허허, 지랄들 하네. 이따가 한 다섯 시쯤에 옷 사러 갈라고 한디, 같이 가까?”
“왜, 무슨 옷 사려고?”
“내일부터 교복자율화잖애, 학교 다니믄서 때깔라게 입을 옷 좀 사야겄다.”
“아 맞다, 내일부터 교복자율화지.”
“어디로 갈라고야?”
“저그 에스에스패션이나 코롱스포츠, 시간이 되믄 프로스펙스도 가볼라고.”
“반도패션이나 아식스도 괜찮던디?”
“아놀드파마에 예쁜 옷 많더라.”
“아, 그 우산마크 있는 거?”
“그라믄 나는 신발을 좀 보까?”
“요즘은 나이키가 쪼께 식상해져 갖고, 푸마랑 슬레진저가 잘 나간다드라?”
“나는 이번에 새로 나온 아식스워킹화가 멋있던데?”
“그라믄 이따가 같이 가서, 여그저그 둘러보자.”
두발자유화에 이어 전국중고등학교 교복자율화가 시행됐다. 유명브랜드 옷과 신발이 불티나게 팔렸다. 앞서 나온 ‘위크앤드, 페페로네’ 외에도 ‘엘리트, 챌린저’등 수많은 의류브랜드가 출시되었다. 대형고급브랜드가 유행을 선도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학부모들이 학비보다 의복비에 한숨지을 정도였다. 학생들은 유행하는 고가유명브랜드를 ‘메이커’라 불렀다. 친구들을 만나면 얼굴보다 브랜드마크에 먼저 눈이 갔다. 어떤 상표를 입었느냐에 따라 빈부를 구별하기도 했다. 그러니 유명상표가 붙은 옷과 신발, 가방까지 앞다퉈 구매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의기소침했다. 메이커를 사달라고 조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새 학년 신학기첫날등교해서도 새롭게 편성된 반친구들 얼굴보다 어떤 메이커를 입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교복자율화가 정상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하였다. 신문방송이 이런 현실을 비판하려고 허례허식과 허영에 집중조명했으나, 설익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대책 또한 별반 없었다. 오히려 어떤 학생이 흰 고무신을 신고 지나가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흰 고무신옆면에 ‘나이키’ 마크를 그리고 ‘나이스’라 표시하였다. 며칠 후 흰 운동화에 똑같이 나이키마크와 나이스라 표기해 신고 다니는 학생들이 학교마다 몇 명씩 등장했다.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국산품애용운동이 펼쳐졌다. 외국브랜드에 지불해야 할 연간로열티가 연일 방송을 탔다. 국산품애용운동에 힘입어 해외유명브랜드와 경쟁하려는 국산브랜드출시가 봇물을 이뤘다. 낙수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문승협은 3학년 신학기를 맞아 3반 부반장에 선출됐다. 보이스카우트활동을 하며 친해진 유호창이 반장으로 뽑혔다. 김영후와 김용남, 이달순과 조운대 등이 같은 반이었다. 문승협키가 훌쩍 자라 180Cm이었다. 이전까진 앞번호였지만, 폭풍 성장한 키 때문에 김용남, 문승협, 김영후 순으로 뒷번호뒷자리였다. 공부와 여자친구고민이 많은 만큼 이마 주변에 여드름도 피어났다.
3학년을 중심으로 심화반이 다시 편성되었다. 학생들을 성적우열로 가르고 위화감조성이유에서 폐지하였는데, 부작용을 알면서도 부활시키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며 반대한 선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공부하려는 아이들에게 기회라며 찬성한 선생들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 대입학력고사를 앞둔 학기 초에 실력 따라 상중하분반하면 진도 맞추기 용이하고, 한 명이라도 더 대학에 보낼 방법이자 노력이라는 주장이었다. 대입학력고사를 치른 경험에서 나온 선배들 고언이라는 점이 주효했다. 결국 야자시간에 상중하분반하여 두 시간 분반수업 후 자율학습으로 결정됐다. 심화반학생들에게는 학교도서관자유이용 등 공부에 집중하도록 여러 특혜를 줬다. 대학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한 학생들은 불평이 없었으나, 심화반에 들지 못하고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에 열성인 학생들은 불만이 컸다. 심화반은 학교도서관이용이 자유로워 야자시간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반면, 교실에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공부에 손 뗀 학생들이 떠들어 방해받았다.
고3수험생들은 대입학력고사준비로 참고서를 수집하고, B4크기 문제집 사냥에 앞장섰다. 어떤 참고서와 문제집을 살지 정보파악에 촉각을 세웠다. 참고서는 한정됐지만, 문제집은 선택폭이 넓어 출판사별로 구입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문제집 구입을 명목으로 부모에게 돈을 타내 용돈으로 썼다.
건설부가 수도권 인구와 산업의 적정배치를 위해 1984년 7월부터 인구영향평가제실시를 밝혔다. 대입학력고사응시생이 역대 최고라는 통계가 고3수험생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을 받들어 다들 수도권대학진학을 목표하였다. 수도권 인구집중과 과밀화는 당연한 귀착이었다.
국방부가 ‘귀순용사 이웅평’ 회견을 열었다. 이웅평이 북괴남침야욕을 고발하려 귀순했다고 밝혔다. 여의도귀순대회에서 만세 부르는 장면과 타고 온 미그기가 방송되었다. 국민들은 이웅평을 앞세운 귀순배경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군부독재정권홍보로 이용한다는 불신이 바닥민심에 팽배하였다. 정확한 전후사정을 발표하지 않은 정부의 미온적 조치로 각종 귀순설이 난무했다. 어느 날 이웅평이 함경북도경흥군바닷가에서 이상한 비닐봉지를 줍는데 삼양라면봉지였다. 그는 라면이 뭔지 몰랐다. 면이니까 국수라 생각하며 봉지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 ‘판매나 유통과정에서 변질∙훼손된 제품은 판매점과 본사대리점에서 교환해 드립니다’를 읽고 고민하였다. ‘남조선은 이런 작은 물건 하나까지도 인민의 편의를 도모하는구나, 그렇다면 인민의 지상낙원이라던 우리 공화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며 귀순했다는 것이다. 라면조리법을 보고 충격받아 귀순하였다는 설도 신문지상을 통해 퍼졌다. ‘기호에 따라 계란을 넣어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북한에서 계란이 워낙 귀하다 보니 그럴싸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웅평이 가난한 북한사회에 회의감을 느꼈으리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이 받아들인 공통된 감정이었다. 이웅평이 비행기라디오로 남한방송을 몰래 청취하다 남한사회의 자유를 동경하게 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군부독재가 땡전뉴스와 보도지침으로 언론탄압을 대놓고 자행하던 시기였기에, 국민들이 신군부정권을 비아냥대는 이야깃거리로 애용하였다. 정작 국민들 관심은 북에 있는 이웅평의 가족이 당할 후환과 귀순보상금이었다. 때마침 이웅평이 자신의 망명으로 고통받을 가족생각에 괴로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이 그의 가족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총살할 거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2남 5녀 중 맏아들이라는 가족관계까지 관심받으면서 자연스레 외모평가로 이어졌다. 한국사회는 선동정치로 인하여 북한사람들에게 선입관이 있었다. 뿔난 머리에 시뻘건 얼굴 등 매정하고 흉측하게 생겼을 거라는 편견이다. 그런데 이웅평은 훤칠한 외모에 체격도 건장하며 키도 180cm나 되었다. 한국의 20∙30대 남성평균키가 170cm가 안 됐기에 남남북녀대신 남녀북남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귀순보상금은 공산진영의 군수품을 갖고 올 경우 보로금報勞金을 지급토록 한 법률이 있었다. 이웅평이 보로금으로 15억 6천만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다. 국민들은 법률을 몰라 타고 온 MIG-19기 값이라며 왈가왈부했다. 평생 먹고살만한 돈이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대치동 은마아파트분양가가 2천만 원, 고급라면으로 출시된 안성탕면이 150원이었다. 일반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보상금이었다.
조운대가 교실에 들어서면서 화두를 던지자, 이달순이 덥석 물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웅평이 완전 땡잡았더라잉?”
“긍께, 우리가 뱅기 몰고 가믄 북한도 그만큼 줄란가?”
“몇년 전 12.12사태 때 탱크 몰고 그냥 북한으로 넘어갔으믄, 얼마나 받았으까잉?”
“탱크를 몰다니, 뭔 소리대?”
“어허, 이런 한심한 시끼가 있나, 우리나라의 불행한 역사에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나는 한강다리를 막았다는 말은 들었는디.”
“그래 맞어, 그때 광화문 하고 서울시가지에 탱크들이 쫙 깔렸었다드란께.”
“그라믄, 무시무시한 공수부대가 움직이고, 참모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이 있었던 건 아냐?”
“뭣이라고, 공수부대? 총격전?”
“잉, 정승화참모총장 잡을라고.”
“아마도 먼 훗날에 소설이나 영화로 나올 것이다.”
군사반란 12.12사태가 일어나고 3년여 흘렀지만, 국민들은 당시 상황을 잘 몰랐다. 잘 모르기보다는 신군부의 보도통제와 언론탄압에 알 수가 없었다. 국민적 관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뒤 유언비어처럼 떠돌았다. 퍼즐조각을 맞추듯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하였다.
“어떤 썩을 노무 시끼들이 그랬다냐?”
“니는 아는 것이 뭐여? 하나회신군부제 누구겄냐?”
“하나회는 뭐고, 신군부는 또 뭣이대?”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육사 11기 중심으로 육사 36기까지 구성된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가 주축이었다. 정규사관학교 첫 졸업생 육사 11기는 서울대보다 뛰어나다는 엘리트의식이 강했다. 이들이 배타적 파벌집단을 형성해 군부세력으로 자리 잡으며 박정희의 비호를 받아 성장하였다.
“그라믄, 반대하는 군바리들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여?”
“당연히 있었제, 헌병대장이랑 수도경비사령관이 있었고, 특전사령관도 있었제.”
“느그 그거는 아냐? 우리 학교 1회 졸업한 선배 육군참모차장도 있었다던디?”
“그 사람들은 다 뭐 하고 있었대?”
“뭐 하긴 뭐 해야, 출동하믄 바로 전쟁인디 참을 수밖에 없제. 민간인이 죽기라도 하믄 큰일인께.”
“전방사단까지 동원한 내전상태였다드라.”
“누가 그런 몹쓸 일을 짰는지, 아조 일사천리였그만?”
“누구긴 누구여, 지금 여그까지 끌고 온 것이 바로 전두환이 똘마니들 쓰리 허제.”
“쓰리 허?”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쓰리 허’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신군부독재정권실세였다.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청와대대통령비서실에서 사정, 정무, 공보 분야를 맡아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둘렀다.
‘허삼수’는 10.26 사태와 12,12 군사반란 당시 대령으로 국군보안사령부인사처장이었다. 육군범죄수사단장과 한남동육군참모총장공관에 가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불법연행한 장본인이었다. 이후 대통령비서실사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사정권력을 쥐었다.
‘허화평’은 단짝동기 허삼수와 하나회에 가입했다. 10.26과 12,12 때 전두환국군보안사령관비서실장으로 신군부독재정권개국공신이었다. 전두환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대통령비서실직제에 없는 비서실보좌관을 만들어 허화평을 발령하였다. 특이한 점이 다른 비서진들은 별도건물에 있었으나, 허화평은 청와대본관 전두환대통령집무실 바로 앞에서 근무했다. 전두환정부 초기 허화평의 위상과 권력이 얼마큼 컸는지 보여준 예였다. 한 마디로 혼자서 청와대핵심기획자역할을 하였다.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급영향력을 갖는 실세 중의 실세로 사실상 전두환정권이인자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화평권력이 너무 강하다는 지적이 대두되자, 재작년 1981년 12월 대통령비서실 정무제1수석비서관으로 좌천됐다.
‘허문도’는 육사출신 허삼수∙허화평과 달리 서울대학교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일보기자로 입사해 일본특파원을 지냈었다. 12,12 군사반란 후 전두환이 실권을 잡자, 허문도 스스로 일본에서 건너와 전두환을 접촉하여 자문해 주었다.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할 때 중앙정보부장비서실장으로 채용했다. 이로써 허삼수∙허화평과 더불어 전두환최측근 쓰리 허의 일원이 되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문화공보위원에 위촉되면서 전두환정부의 언론과 문화정책을 총괄하였다. 청와대대통령비서실공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관제 축제인 ‘국풍 81’을 기획했다.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또한 그의 작품이고, 기자해직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1월 문화공보부차관에 임명되자, 땡전뉴스와 보도지침 등 언론탄압을 자행하였다. 정권입맛에 따라 연예인을 출연금지시킨 장본인으로 국민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이들 세 명의 문고리권력에 의해 대한민국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던 중, 작년 1982년 5월 전두환대통령친인척이 연루된 장영자∙이철희금융사기사건이 터졌다. 허삼수와 허화평이 대통령친인척의 공직사퇴를 건의했으나, 이것이 쓰리 허가 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보고로 고민하던 전두환눈밖에 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결국 허화평과 허삼수는 작년 12월 정무제1수석비서관과 사정수석비서관에서 경질됐다. 허문도만 전두환에게 ‘히틀러의 괴벨스’와 같은 존재가 되어 권력을 유지하였다.
“그 허문도가 진짜 악질 아니어?”
“그놈의 땡전뉴스 땜시, TV도 틀기 싫어 죽겄어 그냥.”
“긍께 말이어, 벨 것도 아닌 뉴스를 갖고, 오늘 전두환대통령각하께서는 어쩌고 저쩌고.”
“아야 어디 그뿐이냐, 또한 영부인이순자여사께서는, 큭큭큭 아조 웃겨 부러.”
“느그 전두환하고 이순자 호가 뭔지 아냐?”
“뭔디?”
“오늘, 또한.”
“허허허, 잘 지었다잉. 오늘 전두환대통령께서는, 또한 영부인이순자여사께서는.”
“허벌나게 웃겨 불구마잉, 뭔 이런 나라가 다 있대?”
“아야, 북한우상화를 따라서 한 것이어.”
“그라고 있냐, 코메디언 김영덕이랑 텔런트 박용식은 TV에도 못 나온다드라.”
“으째서야?”
“이순자 전두환 닮았다고 그라제, 뭔 이유가 있겄냐.”
“암튼 우리들이라도 잘 기억해야 써, 역사를 잊은 인간들하고는 말도 마라 했은께.”
“염불 하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제.”
“맞어, 말하지 마 간디 김생출선생의 어록이잖애.”
“아따 고말이 고말이제, 안 그냐?”
“아그들아, 꼰대 온다.”
3학년 3반 학생들이 깔깔대며 왁자지껄 떠들다 금세 멈췄다. 담임한형남선생이 교실문을 들어선 순간, 적막이 흐르던 교실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으째서 우리 반이 시끄러우까? 지금 아침자습시간인디, 웃고 떠들믄 쓰냐 안 쓰냐?”
“안 씁니다.”
“뭔 좋은 일 있다고 웃었냐, 반장 일어나 말해봐.”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우리끼리 재밌는 야그 하다 웃었어라우.”
“어허, 반장이 돼갖고 거짓말한다잉. 거짓말 못하는 부반장 문승협이, 니가 말해봐.”
“네? 제가요?”
“잉, 니는 무자게 순해서 거짓말 못한다고, 느그 2학년 때 담임이 그러드라?”
“저 거짓말 잘하는데요?”
“어허, 기합 한번 받으까?”
“선생님께서 화 안 내신다고 약속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좋아, 화 안내께, 약속하께.”
“저기 두 가지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대통령부부이야기하다 웃었어요.”
“두 번째는 뭔디?”
한형남선생은 40대 중반 남자로 공업을 가르쳤다. 이마가 훤히 드러난 곱슬머리장발에 안경을 썼다. 허리띠가 맞지 않아 넥타이로 맨 배불뚝이 모습이 오뚝이인형 같아서 별명도 ‘오뚜기’였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면 배부터 등장했다. 상체는 미동이 없으면서 다리만 움직여 걷는 행동이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한형남선생도 익히 아는 사실이라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새 학년 담임과 첫 대면한 다음날, 관찰력이 뛰어난 이달순이 흉내 내서 알게 되었다. 반아이들이 온순한 성격과 다정다감하게 대해주는 한형남선생을 좋아하였다. 놀려먹으려는 나쁜 의미보다는 늘 공부에 찌들어 또래끼리 웃음거리를 찾던 중 발견한 먹잇감이었다. 다만 3반 안에서만 용인하는 불문율이었다. 다른 반아이들이 한형남선생의 걷는 것을 흉내 내거나 오뚜기라고 놀리면 못하게 막았다. 간혹 담임을 지키려는 애정에 그들을 강력히 응징했다. 한편으론 담임건강을 많이 걱정하였다. 좋은 말도 반복해서 들으면 싫고 외모를 품평받으면 기분 나쁘듯, 담임선생감정이 불편할 때는 삼갔다. 담임심기날씨를 파악하는 제자들 관심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 느므 시끼들, 이 선상님을 놀린께 재밌냐?”
“선생님을 놀리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우리끼리 웃을 거리를 찾은 겁니다.”
“떼끼 이놈들. 허허 그래, 느그들이 한번 웃어서 좋다믄냐, 뭐 나도 까짓것 좋다.”
“선상님, 선상님도 우리한테 놀림 안 받으실라믄 운동 좀 하셔야 것든디요?”
“음마, 뭔 소리다냐? 내 제자들 웃음을 위해서라도 이 풍채를 유지해야제?”
“하하하.”
“느그들 스승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은 알제?”
“예.”
“그라믄 됐어. 근디, 내 걸음걸이가 그렇게 이상하냐?”
“아니라우, 허벌라게 귀여워라우.”
“허허허, 아무리 재미있어도 남의 외모를 평가하고 놀리믄 못써, 알았냐?”
“예.”
“이건 가정형편조사서인디, 집에 가서 대충 써 와.”
한형남선생은 약속대로 화내지 않고 유쾌히 결론지으며 ‘가정형편조사서’를 나눠줬다. 작년에는 대놓고 공개적으로 조사했다. 학생들이 차라리 나눠주어 알아서 쓰게 할 일이지 굳이 반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손들라는 선생을 원망하며 웅성거렸었다. 한형남선생은 가정통신문으로 보냈다. ‘대충 써 갖고 와’라는 말이 반아이들 귀에 정확히 꽂혔다. ‘제자들의 생활환경과 인성을 파악하는데 참고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이지 않다. 나는 차별 없이 대할 테니 중요하지 않다’라는 뜻으로 읽혔다. 국민학교 때부터 학년이 올라가면 조사하는 연례행사였다. 형식과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대동소이하였다. 왜 이런 조사가 필요한지 이해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방이 몇 칸이고 부모학력을 왜 알아야 하는지, TV가 칼라든 흑백이든, 냉장고·전화·전축이 있고 없음이 왜 중요한지, 어떤 학생에게는 주눅 들어 피하고 싶은 가장불편조사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