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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식' 독서는 안되나요?

『오늘의 단상』- 6

by 현재를즐겨라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책을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책을 읽고 있음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전자는 오롯이 나의 의지일 테지만, 후자는 타인의 시선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런 생각은 특히 고전문학을 읽을 때 많이 떠오른다. 100년, 길게는 그보다 더 이전의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시대의 감성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겠다는 다짐 하나로 책을 읽어나간다.

내가 이 고민을 쉽사리 풀어내지 못하는 건, 지난 날 나의 부끄러운 '지적 허영심'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일부로 어려운 수학 문제만 골라서 풀었다. 어차피 풀지도 못하고 낑낑거릴 것을, 그냥 '답도 없어 보이는' 그런 것들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거다. '나 이런 거 풀고 있어요'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간혹 가다 선생님도 시간이 꽤나 걸리는 문제인 경우에는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이런 수준에 도전할 만큼 잘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선생님에게 주면서, 동시에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뭐하나, 수학만큼 점수를 꼬라 박은 과목이 없었는 걸.

이렇듯 어린 나는 인정 욕구가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공부는 나의 인정 욕구를 정확히 채워주는 수단이었다. 우리나라 같이 교육열이 강한 나라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칭찬은 알아서 따라온다. 잘하면 더 좋겠지만, 너무 잘할 필요도 없다. '적당히', 그리고 '열심히'면 충분하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의 일이 떠오른다. 밤늦은 시간에 친구들과 월담을 해서 숙소에서 밖으로 놀러 나갔던 적이 있다. 당연히 선도부장 선생님에게 발각됐고, 우리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교무실로 불려 갔다. 걱정과는 달리 선생님은 적당히 훈계만 하고 우리를 내보내줬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도 있었니?" 그때의 나는, 그 질문을 '얘 때문에 너희들도 사는 줄 알아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괜히 우쭐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봐주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처음에는 독서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했다. 누가 봐도 보여주기식 독서였다. 중학생 시절, 국어 시간에 교내 도서관을 가면, 나는 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못했다. 그저 그 두꺼운 '벽돌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다음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었다. 두꺼운 책이 6권이나 이어지는 장편 소설이다. 막 책이 출간되기 시작했을 때라, 당시에는 4권까지 밖에 읽진 못했지만, 보여주기식 독서에는 그만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나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글쓰기가 되었다. 도대체 난 언제부터 책이 좋아진 거지.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에 막 들어갔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졸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과학 카테고리의 과목을 수강해야 했고, 그중에서 그나마 재미있어 보였던 게 '우주의 이해'라는 강의였다. 머리가 반쯤은 벗겨져 있었던 교수님은 천문학을 인문학과 결합하여 설명을 하곤 하셨는데, 우연하게도 나는 그 수업의 강의 교안에서 『코스모스』의 한 구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라고 시작하는 그 단락이 이유도 없이 뇌리에 강렬하게 꽂혔다. 갑자기 『코스모스』가 읽고 싶어 졌던 나는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앉은자리에서 꽤나 오래. 그제야 나는 칼 세이건의 위대함을 사뭇 느낄 수 있었다. 이토록 천문학을, 우주를, 따뜻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적어도 그때부터의 나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지적 희열'. 깊은 만족으로 고양되었던 그 마음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몇 년이나 됐을까. 최근에 '북스타그램'이 유행했다.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언제부턴가 독서는 멋지고 힙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열풍 속에서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책을 읽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를 SNS에 표출한다.


혹자는 이를 '왜곡된 독서 문화'라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뭐 어때?'라고. 허영심에 시작한 독서면 어떤가. 그저 책을 가까이 두고 있기만 하더라도 언젠가 책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는 찾아온다. 그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던,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던 말이다. 그러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저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껏 읽자. 내가 사랑하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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