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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리의 치즈냥이

『오늘의 단상』- 9

by 현재를즐겨라

우리 집 마당을 자기 집으로 삼고 있는 아주 발칙한 고양이 4마리가 있다. 엄연한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자 우리 집 문지기들. 내가 즐겨 앉던 베이지색 퀼트 의자는 이미 그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이고, 마당의 평상과 주변의 나무들에는 그들의 '꾹꾹이'가 남긴 생채기로 가득하다. 하는 일 하나 없이 기지개나 켜고 사료만 축내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힐링이 된다. 요망한 치즈냥이들.

하지만 녀석들도 꽤나 안쓰러운 구석들이 있다. 첫째 고양이는 몇 년 전, 지나가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튕겨져 수로에 떨어져 있던 걸 엄마가 간신히 구해왔다. 운이 좋게도 생명은 건졌지만, 뒷다리가 모두 으스러져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가능한 치료는 그저 걸어 다닐 수라도 있게 '바퀴의족'을 달아주는 것뿐.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고양이를 안고 집에 왔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무리에서 떨어져 우리 손에 들어온 이 녀석은 심지어 태생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한때는 강아지에게 물려 옆구리에 구멍이 난 적도 있다. 어째서 이 가련한 고양이를 더 불쌍하게 만드시는 건가요.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났나.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한 녀석이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니는게 아닌가. 우리는 '그만하면 됐다'며 안심했다. '자기 밥 잘 먹으러 오고, 볼일보고 모래나 잘 덮을 수 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가여운 고양이에게도 복은 있나니, 말도 안 되는 일은 연이어 벌어졌다. 어느 날은 제법 높은 의자 위에 고양이가 앉아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올려놨어?" 그 찰나였나, 이 놈이 뛰어 내려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첫째 치즈냥이는 그렇게 기적이 되었다. 지금은 언제 다쳤냐는 듯 어리저리 잘 뛰어다니기만 하는 이 미라클하고도 신묘한 고양이는, 오늘 밤에도 자기 구역을 순찰하러 암행을 떠날 것이다.

나머지 세 마리의 고양이들도 인생이 참 기구한 녀석들이다. 아니 원래 여섯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얼룩덜룩한 무늬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비닐하우스 한 구석에 새끼들을 낳았다. 시골에는 종종 그런 사건이 생긴다. 이미 비슷한 일을 몇 번이나 겪었던 터라, 더 이상 주변에 고양이를 맡아 줄 지인들도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어미까지 여섯 마리를 우리가 모두 떠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 고양이가 심각하게 뛰어다니는 것이다. 마치 발에 불똥이 튄 것마냥. 새끼 고양이의 마리 수를 세어보니, 한 마리가 모자랐다. 어떤 모성애는 본능보다도 강했다. 그 깔끔 떠는 고양이가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뛰어다니더라. 어미 고양이는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끝내 잃어버린 새끼를 찾지 못했다. 우리도 그 근방을 열심히 찾아봤으나 결국 고양이 수색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한 마리는 이름도 없이 떠나버렸다. 부디 어딘가에서 잘 살아있길 바란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이따금 우리 집을 찾아오는 녀석들에게 이름만 붙여주면, 꼭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아찔하고도 안타까운 징크스. 그래서 나는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잘 지어주지 않는다. 그냥 '야옹이'들이다. 몇 년째 이어저 오던 그 철칙을 잠깐 잊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어미 '고냥이'와 '하나', 두찌', '세찌'와 '네찌'. 다 똑같아 보이는 그 녀석들을 무늬로 구분할 수 있게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고는 벌어진다. '고냥이'가 먼저, 그리고 이어서 '두찌'도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냥이'가 아이들이 사료는 먹을 수 있게끔 지도를 막 마쳤던 터라, 남아있던 세 마리의 고양이는 어미 없이도 건강하게 자라 어느덧 성묘(成苗)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이 녀석들에게는 어미와 형제를 잃은 아픔이 가시질 않은 것 같다. 좀처럼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그나마 밥을 챙겨줄 때는 다가온다. 하지만 정확히 나로부터 한 발자국 앞까지만. 그 거리를 좁히려고 츄르도 줘보고, 헨젤과 그레텔처럼 '사료길'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기가 막히게 그 앞에서 멈춰 선다.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너. 먹을 것을 줘야 등 정도만 만지도록 허락해 주는 너. 가끔은 그 거리감이 야속하고 얄밉지만, 그 와중에 나를 보면 쫓아온다. 한 발자국 거리 뒤에서. 고양이의 밀당은 본능인가 보다.

날이 추워진다. 가을은 천고묘비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고양이는 살찐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보다 더 두둑하게 사료를 준다. 지금까지 그랬듯 다가오는 겨울을 잘 견뎌내라는 응원의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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