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 10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에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이 도서관에서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먼저 첫 번째 조건은 바깥이 보이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이 좋다. 마치 바깥세계를 차분하게 관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날씨가 좋으면 멀리 산을 바라보며, 마음껏 계절을 느낀다. 눈으로 뒤덮인 산에는 어느덧 새싹이 피어오르더니, 이제는 노랗게 물들었다. 저 잎들이 떨어지면 다시금 하얀 눈으로 뒤덮이겠지.
비가 오는 날도 좋다. 가볍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즐긴다. 그때만큼은 이어폰을 빼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또드락또드락. 자연의 소리마저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 시대에 실제로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은 꽤나 소중하다. 비 오는 날의 어둑한 날씨 탓일까. 살며시 가라앉아 잔잔해진 마음으로, 자연이 연주하는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저절로 평안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나는 햇빛이 드리우는 맑은 날이 가장 좋다. 햇볕이 잘 드는 것. 그것이 두 번째 조건이다. 창문 너머로 쬐여오는 따뜻한 햇살이 좋다. 한여름에는 조금 버겁긴 하지만, 요즘같이 햇살이 조금은 힘을 잃어가는 무렵이면 그 따스함은 마치 식빵을 굽는 고양이 못지않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목 뒤가 살짝 따갑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볕이 내리쬐는 액자 같은 창과 그 옆에 딱 놓아진 극락조 화분을 보자면 그 또한 바깥 풍경 못지않게 아름답다.
처음부터 햇빛이 드는 자리를 따라다닌 것은 아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였을까. 나의 첫 자취방은 5평 남짓의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원룸이었다. 신축건물에 첫 입주이기도 했고, 보증금도 적당했다. 하지만 내가 딱 하나 간과한 게 있었으니, 그게 바로 창문이었다. 방에 하나, 화장실에 하나. 구조 상 같은 방향에 창문이 있어서, 현관문도 같이 열지 않는 이상 그럴듯한 환기를 할 수 없었다. 남향이긴 했지만, 바로 건물이 붙어있어서, 안 그래도 작은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처음으로 햇빛이 귀한 것을 알았다.
당연히 창 밖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고작 대리석 느낌으로 마감을 한 옆집 벽을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방에 혼자 앉아 있노라면, 모든 게 그 5평짜리 직사각형 원룸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로로 밖에 놓을 수밖에 없는 침대와, 정해진 나의 행동반경. 그리고 늘 보는 벽. 어쩌면 그 방 안에서 나의 꿈도 5평짜리 원룸에 맞춰졌는지도 모르겠다.
한때 나는 평생을 공부를 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 하지만 내가 3학년에 올라갈 무렵 가세가 기울었다. 사실 아득바득 우겼으면 대학원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럴 위인이 되지 못했으며, 응시조차 하지 못한 채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세가 기울었다는 것은, 그저 나에게 허울 좋은 핑계가 되어준 것뿐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후, 만약 내가 진정으로 진학을 원했으면 시험이라도 응시했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회피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나의 한계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다. 완벽하게 마무리할 자신이 없었다. 잘할 자신이 없었다. 대학에 진학해서 내가 배운 것은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나를 견줄 자신이 없었다.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공황이라는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얻은 것도 아마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도망만 다녔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이런저런 시험에도 응시했었고, 당연히 낙방했다. 그렇게 나는 멈춰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윽고 나를 지켜주던 우산들이 하나씩 걷히고, 떨어지는 비를 맞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비에 젖어 한심한 내 모습을 가까스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햇빛을 찾아다닌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 아래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얼마 전 종영한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의 대사다. 주인공 '미지'가 매일 아침 되뇌는 이 말이 나에게도 오늘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오늘은 아직 모르기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산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살아갈 희망을 따스한 햇빛을 통해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