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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지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지만

『오늘의 단상』- 12

by 현재를즐겨라

11월도 막바지를 향해간다. 고대 로마에서는 1년을 10월로 나눴다고 한다.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11월은 존재하지 않는 달이었다. 우리는 고대 로마인들은 누릴 수 없는 11월을 누리는 셈이다. 이제는 날이 제법 쌀쌀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에 아직 남아있는 가을의 향기를 붙잡아본다. 하지만 그 애타는 마음에도 도저히 가을은 잡히지가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에 적당한 외투 한 겹이면 알맞았는데, 이제는 패딩 점퍼를 꺼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올 가을은 특히나 짧게 느껴진다. 이제야 가을을 느끼나 했는데, 점점 겨울의 냄새가 다가온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가을이 이렇게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은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이유라면 나는 가을을 싫어함으로써라도 이 지나가는 계절을 붙잡고 싶다. 아니,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이제는 흘러간 과거가 된 찰나의 순간들을 붙잡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 오히려 어떤 감정들은 과거에 있기에 아름답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교에 들렸다. 학교 정문을 넘는 순간, 왜 사람들이 모교를 찾는지 단번에 알았다. 학교 밖 세상은 긴 세월 동안 모든 게 바뀌었는데, 학교만큼은 그 건물, 그 운동장이 그대로 있으니 말이다. 늘 가던 매점, 매일 같이 사 먹던 '비스마르크 빵'과 '육개장 사발면'. 학교는 지나간 추억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은 아니었다. 강제로 머리도 밀어야 했고, 체벌도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가 지난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과거의 것'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한다. 뇌과학에서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뇌의 작용이라고 하며, 혹자는 '망각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과거에 놓아주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 세월 동안 '비스마르크 빵'은 단종되었다. 아무리 미련을 가져봐야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샘물에서 시작되어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는 동안 강물은 그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 우리의 손으로 아무리 잡으려고 해 봐야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흘러가는 강물에 내 몸을 맡기고 뉘이는 것뿐이다. 그렇게 굽이치는 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바다에 닿겠지.

이제 우리는 가을을 이만 놓아주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할 때가 됐다. 옷장을 정리하고 두꺼운 외투를 세탁해야겠다. 올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따뜻한 손난로도 잊지 말고 여러 개 구비해 둬야겠다.

# 오늘의 단상은 잠시 쉬었다가, 12월에 『오늘의 단상 - 겨울』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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