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어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한때 절친한 친구였던 그녀는 '날카롭고 까다로운' 성격과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외 다른 장점들이 많았지만, 가끔씩 신경질 적인 그녀의 태도에 마음을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친구가 내게 말했다.
"문희, 너 성격 진짜 예민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녀의 신경질적인 모습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별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에 내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상처를 받는 모습'을 두고 나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
자, 이제 누가 더 예민한지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어느 커뮤니티 게시판에 게시된 글이다.
- 저는요 아저씨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요
- 아무리 친근하게 불러도 너무 듣기 싫어요
- 그래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대에게 화내고 싸워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쓰여 있었다.
한참 어린 친구들도 나에게 오빠라고 부른다. 나는 아저씨라는 호칭이 싫어 타인을 부를 때, 여기요! 저기요! 한다. 굳이 앞에 아저씨라는 호칭을 넣을 이유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힘들다는 내용이다.
나는 별, 참 피곤하다.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댓글들은 불타고 있었고, 글쓴이를 조롱하고 몰아갔다.
조롱성 댓글이 이어지자 글쓴이의 하소연 하는 댓글이 등록되었다.
"나도 이러기 싫어요. 그런데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다른 건 화가 나도 예예.. 웃는데 이건 도저히..."
나는 아차 싶었다. 별 참 피곤하네라고 느꼈던 글쓴이에게서 나를 만나게 되었다.
나도 정말 죽어도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내 갈길 잘 가고 있는데, 난폭하게 끼어드는 차량, 초면에 퉁명스럽고 공격적인 말투, 나는 그렇지 않은데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
"너 그러지 마, 그러다 미친놈이면 어떻게 해?"
그런 말은 당시의 나에게 조금의 도움도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타인에게 위협하며 운전하지 않는다. 도저히 그 미친놈들은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나는 2021년 6월 마흔 살의 나이에 출산을 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겪어내야 했다. 아들을 낳고 5일간 얼굴도 보지 않았다. 엄마, 아빠, 친척, 친구들과도 기쁨을 나누지 않았다.
좌절, 두려움, 고통, 후회, 죄책감 기타 등등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로 조각조각 찢겨나가는 내가 죽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고향에서 조우하여 근황을 나누었다. 친구가 내게 말한다.
"나는 너의 어떤 점이 좋냐면"
"너는 타인을 함부로 파괴하지 않아"
"너 스스로를 파괴했으면 했지"
친구와 나는 울다, 웃다 전투적으로 뽐낸 화장이 다 지워졌다. 너무 울었던 친구는 눈에서 아이참을 떼어내야 했다.
누가 봐도 배우지 아니한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에게 예(禮)로써 엄히 꾸짖고 사과를 받아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분명 잘못한 놈들의 사과를 받아도 분통이 해소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왜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덮친 뒤 1년이 지났다. 나는 가급적 갈등상황에서 가장 나이스한 상황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24시 콩나물 집에서 펑펑 울며 후회해야 했다.
- 법륜스님 말씀을 끝도 없이 들어야 했다.
- 교회도 안 다니면서 찬송가를 매일 들었다.
- 분노가 치밀 때마다 미친놈처럼 운동을 했다.
- 나를 원망했다.
- 매일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해야 했다.
- 스스로 매일 너 같은 거 죽으라며 자신을 원망했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들은 없다. 내가 나의 태도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고통에 가깝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었나?
타인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글쓴이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나를 보았다. 댓글의 조롱들을 나를 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댓글들을 꼼꼼하게 읽으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은 흡수해 두었다.
나는 글쓴이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맞아요, 나도 죽어도 안 되는 것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같이 힘내요."
나는 글쓴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괜찮은 사람이 되겠구나 확신이 들었다. 글쓴이는 조롱성 댓글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솔직한 글쓴이의 태도를 보며 이렇게 고민이 깊은 사람인데 더 잘될 수밖에 나는 속으로 기도해 주었다.
최근 유명한 맛집에 음식을 포장하러 갔는데, 너무도 바빴던 직원이 혼잣말로 계속 짜증을 냈다. 계산 중에도 혼잣말로 계속 짜증짜증 보통 예전엔 "어머, 그래도 제가 앞에 있는데 너무 무안해요"라고 표현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고 얼마나 나빴으면 그럴까'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도 바쁘면 혼자 '쉬펄쉬펄, 그녀는 진주다' 콧노래를 부르지 않나? 안녕히 가세요 말하는 직원에게 "네~ 수고하세요" 애교 섞인 인사를 건넸다.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칭찬해 준다. 매일 죽으라고 폭언도 퍼부었는데, 칭찬 좀 해주면 어디 덧나나? 일희일비 좀 하면 어떤가?
이렇게 살다 보면 가까워지겠지.
주인공 하니는 다들 알다시피 성격은 절구에 넣고 빻은 것처럼 삐뚤빼뚤 하다. 그런 성격을 가진 하니가 육상선수의 꿈을 품으며 타인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마지막에는 마라톤까지 완주한다.
나도 하니처럼 그러고 싶다. 가까워지고 싶다. 내가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내가 꿈꾸는 작가의 삶에 닿기 위해...
그렇게 내 예민함 으로 세상의 모든 예민함을 잘 아울러 품격있게 살고 싶다 :)
(지금의 내 글은 어디에도 '격조 높은 수준'을 찾기 어려워 늘 부끄럽다)
* 국밥집에서 울며 웃어야 했던 그날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