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두려움을 동반한다. 철없던 시절에는 두려움 따윈 없었던 것 같은데 마흔이 되니 재는 것도 많아지고 의심도 많아지고…. 과감하게 일을 벌였던 과거와는 달리 조금 힘이 빠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본질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또 일을 벌였다.
12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퇴사했다. 나의 30대를 갈아 넣은 회사였다. 나의 생활 주기는 그 회사로 12년간 맞춰져 있었다. 뭔가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뿐. 아마 30대의 마지막 변덕이었지 않았을까?
40대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가장 큰 일은 이사였다. 대구시의 외곽에 붙은 작은 공단에서 10여 년을 넘게 살았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 중을 차례대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도 이사계획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30대 막바지에서 큰 고비가 왔다. 당시 딸은 운동했었고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사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대도시 외곽에서 중심부로 이사를 했다. 회사까지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졌다.
퇴사 후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후 코로나와 싸웠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갔다. 안타깝게도 적당한 일자리는 구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마흔이 되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되어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막연하게 마흔을 대하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가까운 것이었는데.
인간 세 명과 고양이 세 마리의 도시살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시 한복판의 삶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모든 생활권의 중심이다 보니 배달의 민족을 켜면 너무나 다양한 종류에 선택 장애가 오고 시끄러운 소리와 확연히 다른 공기 질은 둘째 치더라도 압도적인 편리함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40대가 되었다.
마흔에 퇴사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다른 무언가를 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걸 부담 없이 하자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배움 카드를 신청해 두 가지를 배웠다. 원래 좋아했던 제과반을 수강했고 관심이 많았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을 배우는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자격증반을 수료했다. 배운 걸 토대로 잠깐 동안 쿠키를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통신판매업도 해보았다. 실험적인 경험을 쌓아 올리는 기간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에 중독되어 가던 중 대구 인근의 경북 고령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다. 카페를 하는 친구의 매상이라도 올려주고자 간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내게 카페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원래는 친구에게 먼저 들어간 이야기지만 친구가 여의치 않아 나를 소개해줬다. 카페 아르바이트 경험도 다수 있었지만, 운영과 경영은 또 다른 이야기다. 제의를 하신 분도 행정업무와 관련한 사무 경력과 카페 경력을 한 번에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도전보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 번을 고사하고 두 번째 나는 이 일을 받아들이기로 맘먹었다. 언젠가 카페를 차리겠다고 막연하게 꿈꾸던 내게 매력적인 일이었지만 전 회사보다도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이었다. 심지어 유가도 비싼 이 시국에.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고령은 내게 기회로 비췄다. 지인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받아들인 이 일은 그만큼 대가도 비쌌다. 꼬박 두 달 가까이 정도는 아무런 소득 없이 왔다 갔다만 해야 했었다. 권역 사업으로 만들어진 유효공간의 카페는 영업허가가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고령군수가 한번 바뀌었다.
나는 카페에 앉아 산에서 구름이 걷히는 장면을 보고 있다. 한바탕 비가 퍼붓는 대구에서 고령으로 넘어오니 여기는 금세 해가 나려고 하고 있다. 회색 도시에서 살며 푸른 배경의 카페에서 일하는 건 마치 휴식을 취하러 오는 것만 같다. 물론 만만치 않은 거리를 오가야 하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다.
편도 50Km의 거리를 오가며 졸음과 지루함을 이겨내고 달라진 공기를 호흡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그사이 오만 생각이 왔다 갔다 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째서 여기가 그토록 끌렸던 것일까? 나는 이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싶은 것일까.
창밖 구름 걷힌 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잡다한 생각이 이내 사라지고 바깥 풍경에 홀리게 된다. 결국, 모든 결론은 내가 여기서 살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이곳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