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생겼습니다.
시골 한적한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의 주 단골손님은 역시나 마을 어르신들이다. 백 미터만 가도 커피를 파는 휴게소가 있지만, 어느새 알음알음 개업 소식을 듣고 이 마을 저 마을 어르신들이 모였다 가시곤 했다. 제일 바쁜 시간은 점심시간 이후 두 시간 정도. 그 이후로는 정말 한가하다. 처음엔 영업시간과 메뉴 가격에 허둥대었다가 두 달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
오전에 고령 문화누리에서 수영하고 가게로 오면 11시, 부지런히 오픈 준비를 하고 나면 막간의 쉬는 시간이 생긴다. 그럴 때면 항상 카페 안의 지정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창밖의 모습은 매일 같지만, 표정은 시시각각 다르다. 마을 산책에 나섰다가 나지막한 산 구릉으로부터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카페에 뛰어 들어왔던 적도 있었고,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던 날 고속도로를 뚫고 고령에 도착해보니 맑게 개 무지개가 뜬 날도 있었다.
청개구리가 들어와 구속해서 바깥에 풀어주는 일은 빈번하다, 화장실 청소 도중에 까만 새끼 뱀이 숨어 있어서 깜짝 놀라 겨우겨우 잡아 풀어 준 적도 있다. 시골 생활의 흔한 에피소드일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두근두근하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시골 생활이란!
시골 카페를 운영하기 전만 해도 정말 두려움이 더 앞섰다. 흔히 말하는 텃세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대구에서 들어와 카페를 한다고 당연히 소문이 퍼질 테고 외부인이 하는 카페에 어느 만큼 관심을 줄까?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마을 어르신들은 내게 따뜻했다. 이 년간 버려져 있던 유효공간을 카페로 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분들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전동차를 타고 산책 다니시는 어르신께서는 망할까 봐 걱정이라며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나다니면서 주차장에 차가 몇 대인지 확인하신다고. 매번 지인분들을 데리고 카페에 오시는 분이셨다.
손에 호두알을 쥐고 굴리시는 어르신은 카페 옆 건물에 사셨다. 지인이 오면 하루에 세 번씩이고 드나드시는 말쑥한 차림의 어르신이었는데 어느 날 뚝딱뚝딱 바뀐 카페 내부 풍경을 보시고 자리에 앉으시며 웃으셨다. “이 자리에서 우리 집 현관이 훤히 다 보이네!” 한 번씩 씻고 나오시면 훌훌 벗고 나오실 때가 있으시다고 했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려줄까요 했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그분이 씻고 나오실 때면 아마 카페도 마감할 때가 아닐까 싶다.
하루는 아들을 등교시키고 일찍 출근한 적이 있는데 할머니들께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카페 근처에서 풀을 뜯는 봉사를 하고 계셨다. 한창 여름이라 그런지 풀들이 마구잡이로 자라나는 중이었다. 일찍 출근도 했겠다 더워 보이셔서 커피와 차를 바리바리 싸 들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며 어르신들 사이에 끼었다. 카페라는 공간에 갇혀서 조금 답답하기도 했고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깔깔 웃으시며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곧장 어르신들은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개인정보를 탈탈 털렸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했던 도시 생활과 달리 어르신들은 그냥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셨다. 물음의 끝은 이사를 언제 오냐는 것이었다. 곧 올 거예요 하고 웃었더니 얼른 오라며 말씀하셨다.
나의 귀촌은 예정된 건 아니었다. 막연하게 내년쯤 대구의 전셋집 계약이 끝나니 카페를 계속하고 있다면 고령에 집을 알아볼까…. 하는 정도였는데 시골 어르신들은 내가 귀촌하려는데 마땅한 집을 못 구하고 있는 거로 아셨던 것 같다. 마을 주민분께서 선뜻 내게 손을 내미셨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이 있었는데 어느새 회의를 하시더니 집을 빌려주겠노라 하신 것. 심지어 카페에서 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방 두 칸짜리 전원주택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회를 마다할 수 있을까?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아 약간 보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있었다. 창밖으로는 밭과 산이 보였고 마당엔 자갈이 깔려 있었다. 비염이 심한 딸과 출퇴근으로 고통받는 내가 살기에 딱 어울리는 집이었다. 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계약을 했다. 이토록 내게 따스한 마을이었다. 내가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귀촌이 결정되고 딸의 전학수속을 밟았다. 아들은 미술 중점고 전형으로 고등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이동을 결정할 수 없었다. 충분한 대화 끝에 고양이와 아들은 대구에, 나와 딸은 시골로 이사하기로 했다. 걱정스러웠지만 자주 대구에 들르기로 하고 아들의 생활습관을 믿기로 했다.
오래 비어있던 집이라 도배를 했다. 흰 벽으로 깔끔하게 채워진 집은 앞으로의 기대를 더해주었다. 시골의 삶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삿짐은 아직 옮기지 못했지만, 조만간 이 집의 문을 열고 흘러들어오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겠지.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카페 마감을 하면 어두워질 것이다. 어두운 하늘에 뜬 별빛을 보며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벌써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