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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공녀 Oct 07. 2022

이도 오촌 이야기

약간의 TMI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의 TMI를 좀 하자면, 나는 합천군 해인사의 매화산 뒷자락에서 태어났다. 정말 아득한 시골이라 가구 열 채도 안 되었으며 집집마다 소를 길러 나도 국민학교 6학년까지 소를 몰고 다녀야 했다. 엄마소, 엄마친구소, 송아지 세 마리를 휘두르며 산이며 들로 뛰어다녔다. 나의 친구는 자연이었고 인생 최대의 공부도 자연이었다. 라떼로 말한다면 지금 애들은 알 수 없는 감성이 뿜뿜 솟아난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도시로 전학 오고 난 후 심한 사춘기를 겪던 나는 언제나 시골이 그리웠다. 가출을 감행하면서까지 시골로 숨어들 정도로. 날 키워주신 조부모님이 보고 싶었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마저 그리울 정도로 힘이 들었다. 도시 생활은 너무 숨이 막혔다. 


카페 단골 어르신 말씀이, 도시에 있으면 영감 목소리인데 시골에만 오면 목에 힘이 생긴다. 산의 정기를 받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웃으셨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 한적한 시골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신없는 도시 생활을 등 뒤로 하고 자연과 가까울 수 있는 이곳으로. 굳이 목을 꺾어 올려다보지 않아도 펼쳐진 하늘을 볼 수 있는 곳, 가을과 함께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볼 수 있는 곳. 나는 여기 고령 한켠에 터를 잡아 진한 커피를 내리고 버터 향 가득한 과자를 구우며 살고 있다.      


카페를 오픈하며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모든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이다. 시골은 모든 시간대의 냄새가 다르다. 오전에는 청량한 공기의 상쾌한 냄새가 난다. 가끔은 창문 틈으로 밭에 갓 뿌린 퇴비 냄새가 풍길 때도 있지만 시골이니 감수할 부분이다. 따사한 낮에는 벼가 익어가는 마른 냄새가 나고 저녁 무렵에는 아직도 구들장을 데우는 장작 때는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나는 저녁이 오고 있는 시간을 매우 좋아한다. 물론 눈 뜨자마자 집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새벽의 시간도 사랑하지만,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나무 때는 냄새가 너무 좋다.      


어린 나는 항상 쇠죽 끓이는 아궁이 담당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보며 요즘 말하는 불멍을 그때 모두 겪어 보았다. 너무 뜨거워 눈알이 화끈 거릴 때도 있었지만 불꽃이 춤추는 게 왜 이리 재미있었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하긴, 할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 모든 재산이었다. 잊고있어도 한없이 그리워지는 시골 삶이 다시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주었으니까.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조모님은 고령에 있는 요양소로 옮기셨다. 언제 다시 고향길을 밟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시골에서 추억하고 있다. 그때와 같은 풍경은 없지만, 이 새로운 풍경에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요즘 나는 주중 대부분은 고령에서, 하루 이틀 정도만 대구로 나가고 있다. 오도 이촌이 아니라 이도 오촌을 행하고 있는 중이다. 심야 보일러가 빵빵하게 돌아가는 시골집에서 뜨끈하게 등을 지지며 잠을 자고,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출근한다. 그리고 가끔 도시로 나가 문명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런 전원생활이 부러운지 아버지가 시골에 들어오고 싶다고 넌지시 집을 구해달라고 독촉하시는 중이다. 자주 오시는 어르신들께 부탁을 해봐야 할 듯싶다. 오빠도 조카들 키워놓고 나면 합천으로 들어갈 예정이라 하는데 결국 우리 가족은 시골을 벗어나기 힘든가 보다. 시골로 오면 없던 힘도 다시 생기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다시 글을 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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