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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Sep 27. 2022

고난은 '별난 선물'일 수 있다

맺으며


열한 살 때 찾아온 투렛증후군.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틱을 남발했습니다. 청각장애를 앓아서 학습능력도 떨어졌습니다. 칼로 손목을 긋기도 하고 건물 옥상에 뛰어내릴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자해했고 우울증 증세는 무한 반복됐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정형편도 안 좋았습니다. 부모님은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꾸렸고,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에 어릴 때부터 마구간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 주변 사람들의 놀림거리는 이제 익숙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빌리 아이리시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으로 얼룩졌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팝아티스트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7개의 그레미 트로피. 21세기 출생의 첫 빌보드 1위 달성. 정규앨범 한 장 없이 싱글 네 장만으로 10억 회 이상의 스트리밍을 달성한 팝스타.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그녀의 암울했던 불행들이 음악에 베어 들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은 겁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스무 살이 된 후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틱장애도 청각장애도 본인의 한 부분으로 감내한 겁니다. 그녀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어쩌면 결핍과 고난이었는지 모릅니다.


누구 하나 무엇하나 인생이 쉽지 않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부터 빌리 아이리시까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공통점입니다. 비단 유명인들 뿐만이 아닐 겁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본인의 자리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은 거인들이죠.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리그에서 치열하게 처절하게 살고 있습니다. 노량진 수험가에서도, 여의도 직장인들에게서도, 공무원들도 말입니다. 역경을 극복한 누군가를 보면서 저도 심심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때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겁니다. 소소하지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그리고 태연하게 극복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고난은 별난 행복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슈와르츠 논단'입니다.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워야만 비로소 진짜 인생을 사는 겁니다. 사람의 기운은 신기합니다. 자기실현적 효과가 있어서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안된다고 하면 될 것도 안되고 된다고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것처럼요. 결국 삶의 모든 행운과 불행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현듯 찾아온 31살의 사춘기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사표라 쓰고 출사표라 읽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줄줄이 떨어지고 30대 후반에 노량진에서 9회 말 2 아웃의 청춘을 썼습니다. 공부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합격권 언저리에서 계속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해에는 한 문제 차이로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피가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도 세상살이는 쉽지 않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피부가 타들어갈 듯한 태양의 햇볕에도 무거운 몸을 가누기 힘든 현기증에도 성당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랐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당신에 대한 믿음은 부족하지만, 원칙은 지키면서 살고 싶다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놓인 그 어떤 가시밭길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불행이 없다면 한 편의 문장에 영혼이 없고 한 편의 시에는 시상이 없다는 문장에 가슴이 설렜습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습니다. 투박하고 서툴렀지만, 저의 표현방식에도 문장 하나하나에도 영혼이 실려있다고 믿습니다.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요. 고난과 결핍이 있었기에 지금의 글들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갈증과 배고픔으로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맺음말까지 쓰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난관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고난은 별난 행복이라는 말처럼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습니다.


끝은 곧 시작일 겁니다. 기자생활이 끝났고, 수험생활이 끝났고, 공무원으로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처럼요. 작가로서의 삶도 기대됩니다. 웃고 울고 달고 쓰고 시리고 슬픈 삶들입니다. 치열하게 오늘 하루를 보낸 만큼 내일은 달라지겠죠.


앞으로 그 '별난 선물'을 믿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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