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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ul 03. 2024

구름도 쉬어가는 산

고흥 팔영산


신혼부터 16년 동안 병환의 시어머님과 함께 살았다. 78세 셨던 시어머님은 94세를 한 달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 기간 동안 여행을 꿈꾸기는 어려웠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집안에만 갇혀 살았기 때문에 휴가는 늘 나를 유혹하는 단어였다.



토요일에도 출근했던 남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회사가 첫째인 사람이다. 집안일은 온전히 내게 주어진 임무였다. 잘 해내고 싶었다. 남한테 부탁하거나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라 남편은 결혼 생활 동안 전구하나 갈아 끼우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를 가던 시어머님은 우리의 동행자셨다. 시어머님을 집에 혼자 계시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명절날 친정에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모임이 남편 초중고 동창 모임이었다. 친구분들도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부인들끼리도 친해져서 가족과도 같았다.



친구들이 열 팀이었는데 그들의 특징이 있었다. 대부분 큰 아들도 아니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거나 가까이 살면서 살펴 드리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모임 때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임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임 때마다 갈 수는 없었고, 그 모임의 가장 큰 행사인 해돋이 행사나 여름휴가에 가는 여행에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동행했다.  모임 회원들 모두 친어머니를 모시듯 살펴 드렸다. 시어머님께서도 환한 표정으로 즐거워하셨다.



팔영산은  2011년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고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유려한 관광명소가 많은 고흥군이 첫 번째로 소개하는 곳이 팔영산이다. 팔영산 자연휴양림은 여러 차례 가 보았다. 고흥이 고향인 남편은 가끔, 다른 모임들을 팔영산 휴양림에서 하곤 했다. 친정 가족들과도 함께 갔었고, 내 친구들 모임에서도 갔었다. 해돋이는 휴양림 몇 채를 빌려서 일박을 했다. 야외에 불을 지피고, 삼겹살을 굽고 고흥의 명물인 굴덩이를 구워 먹었다. 왁자지껄~~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시간이 흘러도 날 새는 줄 몰랐던~~



새해 첫날, 새벽이면 자연스럽게 산에 갈 사람과 밥 지을 사람이 정해졌다.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나는 어김없이 산을 오르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님은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셨는데, 그 모임에는 편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괜찮으셨다.  휴양림에서 40분 정도 오르면 팔영산의 6봉에 닿았다. 해돋이를 보려면 새벽에 올라야 했다. 컴컴한 산길을 오르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새벽산을 오르면서 까지나 이렇게 해돋이를 보러 다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로 이사를 나오면서는 몇 해 정도 해돋이를 함께 싶어서 고흥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족마다 아이들도 자라고 타지로 나가는 경우들도 생겨서 모임의 해돋이 행사도 스르르  없어졌다.



도시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꼬박꼬박 다녔던 해돋이를 빼먹는 해가 생겼다. 지금은 새벽 등반이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때는 그랬다. 추위를 무릅쓰고 옷을 겹쳐 입으며 애써 해돋이를 가곤 했다. 새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무에 그리 빌 것이 많았는지... 둘째부터 부르고 시작했던 나의 기도는 어디에 걸려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니, 그런 기도 덕분에 둘째가 지금의 둘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팔영산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봉우리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비경을 자랑한다. 또한 전국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팔영산 자연휴양림은 팔영산의 풍광과 천연림으로 이루어진 휴양림으로 숙박시설(숲 속의 집/휴양관 등)과 야영장이 운영 중이다. 팔영산 편백치유의 숲은 웰빙, 힐링을 겨냥한 산림 휴양 공간으로 팔영산 자락에 조성되었으며, 울창한 편백숲 속 테라피센터를 비롯한 명상쉘터, 치유의 숲길, 에코 물놀이터 등 36종 109점이 조성되어 방문객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 고흥 군청에서 발췌



팔영산을 1봉부터 8봉까지 순회를 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밧줄을 붙잡고, 철계단을 오르내리며 마치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여정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여서 그 불안은 더했다. 아이들도 어리고 산도 위험하니 등반을 미루자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남편은 자신이 아이들을 책임지고 데려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등반을 강행했다.

 


나를 따르라! 스타일인 남편은 앞에 서고 아이들을 가운데 배치하고, 마지막에 내가 섰다. 아이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내 불안을 싣고 걸었던 산행이라 팔영산 등반은 잊히지 않는다. 고흥의 또 다른 관광명소인 능가사에서 출발해 다시 능가사로 돌아오는 코스로 6시간 정도 소요되는 난이도 상의 코스였다.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은 중간정도의 난이도이지만 1봉부터 8봉은 바위산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위험해서 조심해야 할 코스다.



팔영산 정상에서 보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모습은 팔영산의 모습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 바쁜 풍경들이 펼쳐진다. 팔영산의 가을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누렇게 익어가는 논의 모습도 멀리서 보니 꽃처럼 아름다웠다.



*  사진은 오래된 여행이라 폰에서 찾기 어려워 검색, 편집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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