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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ul 10. 2024

꽃구름 속을 걸어서

보성 대원사 벚꽃길


가슴속에 품은 열망과 간절한 소원들을 어쩌지 못해서 늘 답답했다. 발밑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차분히 앉아 쉴틈을 가져 보기 어렵게 살았던 것 같다. 사는 건 항상 바쁘고, 시간은 언제나 내게만 짧은 것 같았다.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다. 아니, 할 일이 없으면 죽는 것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성 대원사는 고흥에서 살았던 신혼 10년 동안에는 그저 지나가는 길에 불과했다. 둘째의 치료를 위해 매주 광주에 다녀갔지만, 틈을 내서 대원사에 들러 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집에는 다른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돌아가 함께 점심을 먹어야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대원사 벚꽃길은 5.5km의 진짜 아름다운 길이다. 봄에 대원사 입구를 지나면서 보이는 벚꽃길은 주암댐과 어우러져 꽃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 것 같은 환상을 자아냈다. 그 길을 지나서 대원사 부처님 앞에 앉으면 내 기도를 모두 들어주실 것 같았다.



광주로 이사해서도 한참 후, 어느 봄날 아침에 계획도 없이 훌쩍 나섰다. 그날이 아니면 대원사 벚꽃을 그해에도 만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계절에는 대원사를 가 보았지만, 벚꽃이 핀 길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봄철 주말이면 찻길이 막혀 통과하기 매우 어려운 길이다. 벚꽃이 지는 때였다. 데크로 만들어진 인도에 꽃비가 내려서 꽃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경내는 조용했다. 108배를 올리고 숨을 고르자니 부처님의 미소가 모두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내 마음속에 나조차 선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모두 다 알고 있으니 편안해지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가끔, 내 속에 차오르는 것들이 터져 나오려고 하면 사찰을 찾아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곤 한다. 그렇게 평온이 찾아오면, 또 세상이 살아지곤 했다.



어린 영혼들을 위한 기도처인 대원사를 나오다가 천진한 부처님을 만났다. 한동안 폰의 프사로 모셨던 부처님이다. 한없이 평화로운 미소가 좋았다. 어떤 어려움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미소... 사찰이 세워지면서부터 있었다면 그렇게 평온하게 1500년을 넘게 살아온 미소다.





대원사 벚꽃길은 피안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꽃길을 지나며 세속의 마음을 모두 지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오라는 뜻이 서린 길이다.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 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 대원사 누리집에서 발췌



대원사 삼거리에는 보성군립 백민 미술관이 있고, 대원사 입구에는 티벳 박물관이 있다. 벚꽃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을 걸어 도착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평온한 나였다.




* 아래의 두 사진은 검색하여 편집해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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