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재활과정의 첫 번째 과제는 말하기였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담당 의사가 말하기를 포기하고 먹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었다. 의사의 물음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한쪽 눈을 잃은 옆 병상의 안암 환자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환자는 비록 한쪽 눈은 잃었지만, 목숨을 살린 것에 대해서 안도하고 있었다.
의사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목 수술 환자 가운데는 영원히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남편이 목숨을 살리되 말을 잃고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말하기와 먹기 어느 기능도 포기할 수 없다고, 둘 다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의사에게 눈물로 호소하였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이식 부위에서 침과 가래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현상이었다. 의사는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이식에 대한 신체의 거부반응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체가 이식조직을 자기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침과 가래가 계속 분출될 것으로 보였다. 남편은 스스로 침과 가래를 뱉을 수 없었으므로 강제로 그것들을 빼내야 했다.
유리피판 수술을 한 후 담당 의사는 남편의 목에 구멍을 내고 카눌라(cannula)라는 튜브를 꽂아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동시에 목에서 분출하는 침이나 가래를 카눌라를 통해 뽑아내도록 하였다. 침과 가래가 너무나 많이 생겼으므로 간호사들이 밤낮없이 붙어 이것을 뽑아내느라고 고생하였다.
남편은 스스로 가래를 뱉어낼 수 없었으므로 흡입기를 작동시켜 강제로 배출시켜야 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진공상태를 만들어 주는 흡입기가 있어야 하고 목 안에 넣은 긴 막대기(카데트라고 했다)를 연결하여 주는 네블라이저라는 기구가 필요했다. 흡입기 기계는 성능 차이가 꽤 나서 오래된 기계를 쓰면 온 병실이 울릴 정도로 붕~하는 진동 소리가 요란하였다. 특히 한밤중에 흡입기를 켜면 남편이나 나도 그 적막을 깨는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으니 옆 병상의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얼마나 시끄럽게 들렸겠는가. 그들이 만일 병상일기를 적었다면 틀림없이 옆 환자의 흡입기 소리가 지긋지긋했다고 적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이웃들은 그 소리를 참아내었지만 어떤 환자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거나 병실을 바꾸어 가기도 했다. 흡입기를 켤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으니 나도 가시방석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런 배려를 할 여유가 없었다. 우선 쏟아져 나오는 가래를 빼주어야 남편이 숨을 쉴 수 있었다.
밤낮없이 간호사들을 부르러 다니는 것이 나의 주 업무가 되었다.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면 간호사실에 앉아있는 아무나 붙잡고 가래를 빼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들은 싫은 내색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다. 그래서 그들을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가 보았다. 나는 간호사란 직업의 고귀함과 그들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무언가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한밤중에 간호사실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함께 모여 간식을 하며 고단한 삶을 수다로 풀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밤 간식거리를 사서 몰래 간호사실에 올려놓곤 하였다. 하루는 옆 병실 아주머니가 간호사들에게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간호사들이 뭔가를 ‘받아 처먹은’ 환자에게는 친절하게 대하지만 그러지 않는 환자에게는 못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듯하여 간호사실에 무언가를 넣어주는 행위를 자제하게 되었지만, 병원 가족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다. 다시 카눌라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무튼, 남편은 오랫동안 카눌라를 끼고 살았다. 카눌라는 남편의 숨줄인 셈이었다. 이곳을 통해 공기가 들어갔고 몸속에서 생기는 침과 가래를 빼내었다. 이 카눌라를 몸속에 오래 박아두면 주변에 새살이 돋아 교체하기 어려워진다고 하였다. 남편은 아침마다 소독실로 가서 상처 부위의 소독과 치료를 받았다. 이때 나도 직접 카눌라 주변에 새 살이 차오르는 놀라운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래서 카눌라는 수시로 교체해 주어야 했다. 카눌라를 교체할 때는 상처 부위를 건드려 환자가 고통스러워하였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목소리를 내려면 후두의 발성 기관이 작동해야 한다. 이런 곳에 구멍을 내어 카눌라를 삽입해 놓으니 말하는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수술 후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필요할 경우, 곁에 노트를 두고 필요한 말을 적었다. 처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노트를 사용하지 않으려던 남편도 친구들이 찾아와 상태를 물으면 꽤 자세하게 글을 적어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수술한 지 17일째가 되자 우리 주치의는 아침 소독팀에다가 소리를 낼 수 있는 카눌라로 교체하도록 지시하였다. 카눌라의 입구를 좁게 하면 후두의 기능을 가지게 할 수 있는가 보았다. 카눌라를 교체하자 쇳소리 같은 쉭쉭 하는 소리가 났다.
남편에게 말을 찾은 기념으로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먼저 해보라고 주문했더니 남편이 뭐라고 쇳소리를 내는데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미안하다”
라고 하는 말 같았다.
친구들과도 그 쇳소리로 의사소통을 하였는데, 오후가 될수록 목소리가 좀 더 명료해졌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려면 카눌라 구멍이 좁아야 하는데, 그 좁은 구멍으로는 가래 뽑기가 어려웠다. 하루도 못 견디고 다시 원래 상태의 카눌라로 갈아 끼고 남편은 다시 노트를 붙잡고 의사표시를 해야 했다. 결국 남편의 입에서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은 가래 속에 붉은 피가 섞여 나오더니 검은 혈변을 세 번이나 쏟았다. 나는 보호자답게 남편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변을 살펴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변 색깔이 완전 초콜릿색이었다. 변 사진을 찍어 의사에게 보여주며 내심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수술 부위와 위루술을 의심하여 목과 위의 내시경을 행하였다. 남편은 유리피판 수술과 방사선조사를 통해 목구멍이 좁아진 상태였으므로 위내시경 검사를 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가 보았다. 전문의가 붙어 관찰하면서 조심스럽게 위내시경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위루관에 문제는 없다고 했다. 대신 긴급 수혈을 실시하였다. 내 생각에는 가래를 흡입해 내다가 목 혈관을 건드린 것 같았다.
남편이 오랫동안 퇴원하지 못한 이유는 가래와 침 문제 때문이었다. 의사들이 당황할 정도로 침이 한없이 샘솟았다. 침을 줄이는 약을 투여하면 침이 끈적끈적해져 흡입해 내기가 어려웠다. 참으로 진퇴양난이었다. 흡입을 계속하면 목 주변이 붉게 충혈되었다. 고름에서는 피가 계속 섞여 나왔다. 피가 섞여 나온 뒤에는 더욱 가래가 증가하였다. 목 안이 헐고 피가래가 계속되자 퇴원이 계속 연기되었다. 너무 가래가 많이 나와 간호사 부르기도 숨찰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와 딸이 조심스럽게 석션을 시도해 보았다. 남편은 우리가 석션하는 것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는가 보았다. 어느 날은 히스테릭해진 남편이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을 보더니 후회의 낯빛을 띠었다. 그만큼 가래를 뽑아내는 문제는 어려웠다. 나와 딸이 석션하는 것에 대해 남편이 불만족하게 여겼으나 긴급 처방은 되었다. 퇴원 후에는 집에서 이 모든 처치를 해야 하므로 어차피 손에 익혀야 할 기술이었다.
퇴원 후에도 외래로 병원에 가서 카눌라를 바꿔 끼웠다. 어떤 때는 카눌라 장착이 잘못되어 침, 가래가 카눌라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와 당황하여 다시 병원에 뛰어가기도 하였다.
수술 후 100일에 가까워지자 가래가 확연히 줄기 시작하였다. 의사는 다시 말하는 카눌라로 바꿔주었다.
12월 초, 외래진료를 갔을 때, 담당 의사가 남편을 그윽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카눌라를 빼버렸다. 한마디 예고도 없이 카눌라를 빼버려 우리는 몹시 당황하였다. 카눌라 박은 자리에 구멍이 뻥 뚫려 그곳에서 금방이라도 피고름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곧 새살이 돋아 구멍이 자동으로 막힐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고 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전이어서 나도 남편도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병원에 입원한 후 5개월 동안 줄곧 남편을 괴롭히던 카눌라와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그해 말에 네블라이저 기기를 제약회사에 반납하였고 흡입기는 창고 속에 밀어 넣었다.
남편은 그동안 잃었던 말을 되찾았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남편은 쑥 들어간 목의 흉터 때문에 신경을 썼지만, 흉터에도 차츰 새살이 차올라 굳이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 남편은 목티나 스카프로 흉터를 가리고 다니더니 이제는 목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본인이 개의치 않으니 아무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