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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pr 01. 2024

<파묘>에서 벗어나는 법

단어 속 이미지

드디어 진행 시작!

직장 다니며 책을 쓰고 출간 준비를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행복만 가득한 일이 아닙니다. 종이로 내 글이 세상에 나와 박제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큰 책임이며 다양한 분들 앞에서 다른 훌륭한 작가님들이랑 진검 대결을 펼쳐야 한다니 로마 시대 검투사가 된 기분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내키는 즉시 이렇게 글을 써 갈기는 행복에 살던 인스턴트 작가가 숙련되고 느린 과정에 질실할 것 같은 느낌이고 좋아하고 특기처럼 여기던 글쓰기가 싫어지려 합니다. 


그래도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처음 박영스토리에서 받은 제안 이메일을 꺼내보며 사람이 어찌 이렇게 얄팍한가 반성합니다. 


낮에 다니는 직장일 말고 저녁에 운영하는 유도, 주짓수 도장도 하필이면 큰 일들이 겹치면서 하루 시간을 더 촘촘하게 잘라서 계획하는 날들입니다. 책 교정도 일부 마쳤고 도장 운영도 조금씩 진도가 나가니 그럼 밀린 책들을 다시 읽고 썼던 글 중에 하나를 먼저 이렇게 보내드립니다. 


원래 아래 글은 구스타브 르 봉 쎔이 쓰신 <군중심리>를 읽다가 깨달은 부분이라서 <군중심리-2부> 리뷰에 넣으려 했는데, 다 읽고 쓰려니 너무 지체되어 따로 매듭짓기로 했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파묘>가 재미없다고 저주한 탓인지 매일 새벽에 <파묘>로 인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간이 요만한 데다 뭐든지 흘려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공포 영화를 잘 안 보는데요. 결국 이렇게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지요.


새벽에 <파묘>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닭살이 돋아 머리가 번쩍번쩍 서는 공포를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무덤에 살던 할아버지 귀신이 나에게 달라붙어 목을 조르고 창문을 열어 달라고 애걸하다 깔깔깔 웃으며 조롱하는 환청, 환시를 스스로 만들고 있지요.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끈덕진 기억력이고 감수성입니다. 


공포 영화를 일주일 넘게 가슴에 넣고 살다니..


견디다 못해 이 영화가 나에게 주는 공포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곧 다룰 <군중심리 - 2부>에서 단어가 주는 강력한 이미지가 있다는 봉쎔 말씀을 기반으로 분석을 해봅니다. 내가 느끼는 공포는 올라가다 보니 단어로 시작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영화 속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면 그 두려움은 순식간에 이미지로 전환이 되면서 제 무의식에 있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저로서는 그 감정이 소진되지 못하고 곧장 상상으로 그려지니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느끼는 상황이겠지만 저는 그 감정 안에 어떤 신화 내지 전설이 있을지 계속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전설 안에 어떤 문화 코드나 종교 색채 혹은 교육 목적을 띤 금지 규율이 있는지도 계속 생각 중입니다. 


안 무서운 귀신 이미지


무엇보다 귀신이랑 관련된 것들이 먼저 나오는데요. <파묘>는 효도 코드가 녹아 있기에 이 개념이 없는 호주 백인들은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포인트에 크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죽은 할아버지 묘지를 좋은 곳에 모시지 못해서 그 영혼이 땅 속에서 이장해 달라고 컴플레인하는 상황이랑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후대 자손들까지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우리 유교 문화를 배워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내가 느끼는 공포는 어려서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 동화를 통해서 나에게 들어온 신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 규범으로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 대상이 아니니 무의식을 비판하고 분석하면서 성찰하는 시간을 갖자마자 그 이미지가 붕괴되며 불안감이 사라지네요. 이런 모든 공포는 특정 조직이나 문명이 자신들 구조를 지키기 위해 구성원들 무의식에 감정을 자극해서 심어 놓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는 주로 죽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하는 불효자를 응징하는 이야기나 숱한 외침 통에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약자, 특히 여자들 원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한국 귀신들은 대화를 주로 원하고요. 종국에는 자기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최종 목표로 인간을 찾습니다. 그러니 인간을 해하더라도 짠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지요.


반면에 서양 귀신은 그런 서사보다는 곁에 있는 인간을 마구 찔러 죽이는 식으로 대화도 필요 없고 그냥 눈 마주치면 골로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도 각자 살던 동-서양 문화 속에서 놀고 있습니다.


 귀신이 무서우려면 그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제 개인 욕망이나 성취향이 너무 노출될 것은 가렸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꿈 일지를 쓰면서 개인 분석을 해보려고 했던 시간도 떠올랐네요 (하드 날리면서 그것도 날아감ㅠㅠ). 이렇게 하는 것을 개인 분석이라고 칭하기는 부족하고, 행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 분석은 명확한 한계가 있어서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기에 아마 당분간은 계속 꿈에서 <파묘> 귀신들에게 시달릴 것입니다. 


다만 새벽에 그런 두려움이 엄습하면 날 구해줄 누군가를 찾기보다는 특정 단어-이미지가 나에게 어떤 두려움을 주는지 해석하고 그 안에 숨겨진 욕망 따위를 성찰하며 극복하겠습니다. 완전 극복은 힘들지만 조금 도움이 되더군요. 


하지만 귀신이 무섭다고 다시 신을 믿을 계획은 없습니다. 그 공포 마케팅에서도 이미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이 없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귀신을 무서워하며 마음 조리는 것은,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군중 심리 - 리뷰 계속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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