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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받지 못한 환영

시작부터 끝나버린 첫날

by 병욱
모든 사람은 보이길 원한다. 우리는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기억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린 그들의 등을 밟고 일어서면서도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오늘도 승리했다고 착각하며 잠이 든다. 하지만 보이는 게 가장 흐릿하고,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선명할 때도 있다.


“요즘 인재가 이렇게 없냐? 하… 진짜”


정 부장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으로 내팽개친다. 누가 도끼로 발을 찍은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꼼짝도 못 하는 나랑 다르게, 서류를 단단히 물고 있으라고 박아놓은 스테이플러 심은 너무나도 쉽게 그 책임을 놓아버린다, 책임감 없는 녀석… 주변의 공기마저 눈치를 보는지, 이따금 사무실을 채우던 키보드 소리도 종이가 공기를 때리는 파열음 속으로 삼켜진다.


“다시 해 와, 너 이따위로 하라고 뽑아 놓은 줄 알아?”

“죄송합니다”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주워 든다. 멀리도 던졌네, 정 부장 이 새끼는 분명 야구했으면 잘했을 거다.


“하… 좆 같네”

“뭐?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아닙니다,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머리도 없는 주제에 귀는 참 밝다.


‘하… 이게 맞나’


몇 시간 전만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이 나한테 친절할 거로 믿었다. 왜냐하면 난, 이 어려운 취업 문턱을 넘은 최고의 인재니까.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2년 넘게 준비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인턴 경력도 몇 줄은 쌓았고, 그 경력만큼 내 어깨도 올라갔다. 주변 사람들도 항상 날 최고의 인재라고 칭찬하기에 바빴다.


“와, 대단하네. 거길 들어갔어?”

“하하, 그냥 인턴인데요”


정직원은 아니었어도, 누가 들어도 아는 간판을 달고 다녔다. 괜히 자랑스러웠다. 난 분명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 그리고 정말 내가 원하는 회사에 합격했다. 그래서 난 내가 진짜 될 놈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진 말이다.


“정직원 첫 출근! 조금 일찍 출근해서 업무 파악 시작!”


인사팀이 알려준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회사 간판이랑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거든. 이 회사 들어오기 위해 들인 시간이 얼만데,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다.


“쌤, 거기 가셨어요? 축하해요!”

“우와… 대기업만 부시고 다니시더니, 결국 원탑으로 가시는군요”

“크… 미쳤다”


올라가는 ‘좋아요’ 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제 나도 정직원이다. 아무리 좋은 간판을 달고 다녀도 인턴이라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는데, 드디어 그 아쉬움이 채워졌다.


‘이제 시작이야, 내 커리어의 진짜 첫 페이지가…!’


그 순간, 언제 내려왔는지 모를 인사 담당자가 사원증을 건넨다.


“일찍 오셨네요? 이제부터 일하게 되실 전략 컨설팅 부서는 15층에 있어요, 곧 사수분께서 데리러 오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약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뒤 강 과장이라는 사람이 날 데리러 온다. 첫인상은 통과. 딱히 날카롭지도, 무례하지도 않은 인상, 어딘가 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면접 보셨던 시니어님이 엄청나게 칭찬하셨어요.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역시… 최고의 회사인 만큼 내 능력을 알아보는구나. 사람 보는 눈이 있네’


강 씨는 짧게 회사의 구조와 기본적인 규칙 몇 가지를 설명해 주더니, 내 자리를 가리키고는 ‘여기서 일하시면 돼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때부터였을까, 친절함이 감돌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냄새, 낯선 얼굴들… 서로 자기 모니터를 바라보기에 바쁘다. 그 누구도 날 신경 쓰지 않는다. 막상 자리에 앉아보니, 이건 날 ‘환영’한다기보다는 나라는 톱니바퀴를 ‘배치’한 것에 가까웠다. 이 자리가 ‘내 자리’인 건지, 그냥 비어 있는 자리를 채워놓은 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게... 따뜻해 보였던 차가운 나의 하루가 시작됐다.


해당 단편 소설은 여러 작가분들과 함께 출간한 <오늘도, 한 편의 이야기처럼>이라는 책 중 제 작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일부분입니다. 이후, 연재의 형식으로 조금씩 공개할 예정입니다. POD 형식의 독립 출판이라는 사실 그리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는 책이지만, 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라도 조금 더 많은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한 편의 이야기처럼 기억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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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