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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Oct 31. 2024

프롤로그

퇴사했다. 더 부드럽거나 덜 무겁게 시작하고 싶었으나,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라고 하거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됐다”라고 하거나. 뭐가 됐든 내가 당하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다. 왜냐면 퇴사는 오롯이 내가 결정한 바이고, 그대로 실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지어내면 많겠지만, 그냥 힘들어서 퇴사했다. 나는 퇴사를 자주 한다. 입사와 퇴사를 거듭하다 보니 어느덧 20대 후반이 됐다. 30살이라는 상징스런 나이가 눈에 보인다.


퇴사한다는 느낌은, 비유하자면 달리기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기분이다. 계약 기간이 있는 기간제라고 할지라도 함께 일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면 목적지까지 가던 도중에 홀로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퇴사는 외롭다. 알게 모르게 고립감을 느끼게 만든다. 친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집단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만 빼고 다들 잘 사는 듯한 느낌. 물론 회사를 즐겁게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지만.

퇴사는 외롭고, 퇴사는 힘들고, 알게 모르게 배신감까지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퇴사한 사람을 불쌍하게 보거나 그러고 싶진 않다.


61일은 나에게 남은 기간이다. 남았을 기간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퇴사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떠난 곳에서 그만큼 더 머물렀을 것이다. 그만한 기간 동안 지난 간 있었던 일을 정리할 겸 답답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랠 겸 글을 쓰고자 한다.

글을 쓰는 데에 한 가지 지키고 싶은 점이 있다. 조금 많이 솔직했으면 좋겠다. 드러내기 부끄러운 말이더라도 가볍게, 지나가는 투로 쓰고 싶다. 입사와 퇴사를 거듭하는 젊은 시절 내 마음을 온새미로 드러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솔직해야 하고, 솔직하게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어려서부터 나는 집단에 쉽게 섞이지 못했다. 어느 집단에 들어가든 존재감이 없었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 않았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그래도 타고난 성실함과 성격이 온순한 덕분에 함께 사는 데에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집단생활이 좋진 않았다. 굉장히 싫었고, 지금도 그렇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면, “맑은 물과 같은 인재”라고 한다. 이유를 물으면 “만약에 제가 일할 곳이 1급수처럼 맑으면 수위를 높여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분위기를 맑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 있게 말한다. 스스로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재감은 없지만 회사에 유익함을 불어넣는 인재, 나를 멋들어지게 꾸민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솔직히 썩 내키진 않는다. 그나마 성품이 두루뭉술해서 어딜 가나 미움받진 않고 살았지만 즐겁게 산 적은 없다.

집단과 나는 어딘지 모르게 서로 삐걱거리는 대상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맞춘다면 분명 우리는 절름발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돈이 필요했고,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 했기에 집단생활을 시작했으나 끝은 언제나 예상보다 빨랐다. 


내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세상이 나빴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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