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세일즈 업무를 했었는데, 그때 담당했던 고객사 중 외국계 회사가 있었다. 같은 세일즈맨으로서 이 회사를 방문할 때마다 부러웠던 점은 바로 세일즈맨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였다. 세일즈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장이 인원채용에서부터 연봉산정까지 모든 권한을 가지고 부서를 운영할 정도로 회사에서 세일즈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거의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직도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은 여전히 세일즈 부서에 배치받기를 꺼린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차별이 직업선택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렇게 세일즈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세일즈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인이나 낯선 사람에게 찾아가 “이번에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 구입해 줘.”라고 하는 부탁은 대부분의 사람이 불편해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고객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구입해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중 누구로부터 구입하고 싶겠는가?
세일즈에 대한 이런 편견이 만들어진 이유는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강요 영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고객은 세일즈맨의 요청에 대해 ‘거절할 권리’가 있음에도 세일즈맨을 교육시키는 사람들은 ‘고객의 거절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고객의 거절을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이런 교육에서 주로 다뤄지는 내용은 ‘고객의 ‘no’는 ‘yes’라고 생각하라’는 고객에 대한 ‘강요’를 주요 해결책으로 다루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고 싶어 한다. 자기 결정권이 무시되는 순간 고객과 세일즈맨과의 관계는 끝이 난다. 세일즈맨이 고객에게 압력을 가하면 고객은 불편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세일즈맨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되면서 세일즈맨 또한 실적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세일즈 방법이 계속되면 고객은 점점 줄어들고 세일즈 실적 또한 떨어지면서 세일즈를 그만두는 결과를 낳게 된다.
두 번째로 세일즈를 꺼리는 이유는 세일즈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세일즈만큼 전문적인 분야도 드물다. 한마디로 세일즈는 종합예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제품을 누구보다 많이 알아야 하고, 고객에 대한 이해도 완벽해야 한다. 세일즈를 담당하지 않는 직원은 제품에 대한 이해나 고객에 대한 이해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하더라도 우수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세일즈맨은 제품에 대한 이해와 고객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세일즈를 성공시킬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더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회사에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세일즈를 꺼리게 된다.
세 번째는 환경의 영향을 직접 받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물리적 환경에 직접 노출되는 것도 힘들지만 경제적인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아무리 경쟁력 있는 제품이라도 경제 환경 자체가 어려워지면 고객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실적에 직접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세일즈맨들은 회사로부터 실적향상에 대한 더 큰 압박을 받게 되고 특별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회사의 생존을 위해 세일즈는 계속되어야 하고, 경쟁이 심해지거나 경제 환경이 나빠져 세일즈가 어려울수록 세일즈맨의 역할 또한 중요해져 간다. 또한 세일즈맨으로부터 성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세일즈 매니저의 역할 또한 그에 비례해 중요해지게 된다.
세일즈 매니저는 ‘성과 향상’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일즈 매니저는 글자 그대로 ‘매니저’ 역할에 그치고 있다. “무엇을 관리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세일즈 매니저는 “세일즈맨”이라고 대답한다. 세일즈 매니저가 이런 대답을 하는 한 세일즈 매니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세일즈맨을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세일즈 매니저가 세일즈맨을 24시간 따라다니지 않는 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세일즈맨의 실적이나 세일즈맨이 말하는 활동 결과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세일즈 매니저는 세일즈맨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일즈맨이 목표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우미’여야 한다. 세일즈맨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향상되면 곧 세일즈 매니저의 역량이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약 세일즈 매니저의 역할이 ‘관리’라면 세일즈맨의 역량이 부족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무엇을 관리할 것인가? 이런 이유로 인해 세일즈 매니저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생각이 바로 ‘나는 관리자’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세일즈 매니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세일즈 매니저 자신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함께 역량 향상이 필요하다.
모든 세일즈 매니저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모든 세일즈맨이 실적에서 뛰어난 결과를 내는 보석이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세일즈 매니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세일즈 매니저는 ‘목표 달성에 대한 불안’에 계속 시달린다. 세일즈 매니저는 실적 불안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언제나 ‘확실한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완성된 보석’을 찾고 있다.
세일즈 매니저가 ‘보석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는 한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다. 보석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모양과 광택을 유지하지만 세일즈 실적은 절대 그럴 수 없다. 학창 시절에 입학부터 졸업까지 전교 일등을 계속 한 사람이 별로 없듯이 세일즈 실적을 계속 향상하고 높은 실적을 유지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일등이 바뀌는 것처럼 세일즈 실적도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다. 실적이 좋은 몇몇 세일즈맨에게 지속적으로 실적 향상을 요구하게 되면 세일즈맨은 세일즈 매니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하게 된다. 그 결과 세일즈를 그만두거나 금전 사고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세일즈 매니저가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건강한 세일즈맨의 발굴’이다. 여기서 ‘건강’이란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을 의미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조직에 들어오면 그 사람은 암세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조직이 건강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암세포가 주변의 건강한 조직에 번지면서 조직 전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처음부터 거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석을 찾을 필요가 있다. 원석을 찾더라도 어떻게 가공을 하느냐에 따라 보석의 가치가 다른 것처럼 세일즈 매니저의 안목에 따라 세일즈맨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일부 세일즈 매니저 중에는 원석을 찾을 시간과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공된 보석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이런 기대는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런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일즈 매니저의 ‘사람을 보는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일즈 매니저의 두 번째 역할은 ‘관계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세일즈맨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팀워크가 부족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세일즈는 세일즈맨 혼자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세일즈 역량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세일즈 역량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때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깨끗한 물이 담겨있는 그릇 속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물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세일즈 조직에 부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게 되면 그 조직 전체가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세일즈매너저의 역할이다.
세일즈맨의 향상된 역량을 바탕으로 조직원 모두가 세일즈 활동에 열중하게 되면 세일즈 성과는 저절로 향상된다. 세일즈 매니저가 세일즈 성과를 기대한다면 성과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세일즈맨 개개인의 역량 향상과 관계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세일즈맨의 역량 향상과 관계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일즈 매니저에게 상당한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