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직장인에게 새로운 만남을 강요한다. 퇴직하는 순간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 퇴직자들이 퇴직 후 불안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도 ‘만약 내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중에는 힘들면 동료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하고, 함께 상사 뒷담화를 하면서 불편함을 해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버팀목이 되어 주던 동료들과 헤어져야 해서 마음속에는 허전함이 자리하게 된다. 이런 허전함을 채우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동호회나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면서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퇴직자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때 고려해야 할 내용은 ‘관계의 질’이다. 직장생활과 같이 비스니스 관계에서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멀리해야 할 사람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사람이 많다. 도움을 에너지 혹은 돈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도움을 받으면 돈을 받는 것으로, 도움을 주는 행위는 돈을 주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대인관계의 가장 본질일 수 있다. 이런 본질은 퇴직 후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새롭게 모임에 가입하는 순간 퇴직자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기존 모임에 참여하는 누군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퇴직자의 태도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퇴직자 A와 B가 특정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하자. 기존 회원들은 처음에는 탐색하는 기간을 갖게 되면서 A와 B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두 사람을 관찰하게 된다. A 씨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와 활동 준비를 하였고, 선배 회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반면, B 씨는 활동 시간에 맞춰 나와 모임에 참석하고 끝나면 바로 돌아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원들이 A 씨와 B 씨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A 씨에게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동호회 모임 외에 개인적인 만남도 갖지만, B 씨와는 여전히 거리를 두면서 B 씨가 인사를 하더라도 건성으로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B 씨는 동호회를 떠날 가능성이 크다.
친구나 지인과의 관계에서도 상호작용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만날 때 일방적으로 사기만 하거나 얻어먹기만 한다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공짜로 얻어먹으니 처음에는 즐겁게 모임에 참석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서는 얻어먹기만 한다는 부채 의식으로 인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일 때마다 돈을 내게 될 때도 불편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이다. 즉, 어떤 관계에서도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면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보다는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계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짝사랑이 힘든 이유도 관심이나 사랑을 주고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호성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쪽은 받기만 한다면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상호작용이 부족하면 상대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관계의 질이 떨어지면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기대와 현실 간의 괴리는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다.
위의 동호회 사례처럼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일방적인 관계는 한쪽이 모든 결정을 내리거나 주도하는 구조이다. 이런 불균형은 상대에게 무력감을 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만을 초래할 수 있다. 한쪽이 항상 희생하거나 노력하게 되면 다른 쪽은 그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에 기반을 둔다. 동호회에서 리더가 일방적으로 의사결정한 다음 회원들에게 “자신의 지시를 따르라”라고 말한다면 리더 측근을 제외하고 불만을 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리더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갈등이나 오해가 생기기 쉽다.
의사소통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이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피로감으로 이어지면서 관계가 악화한다. 이렇게 되면 리더의 관심에서 소외된 회원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활력을 느끼기 위해 참가한 동호회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더는 동호회 활동에 대한 흥미와 동호회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면서 더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한쪽의 의견이나 감정이 자주 무시된다. 관계에서 중요한 결정이 한쪽의 의견만으로 이루어지면 다른 쪽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상대가 관계에 대한 소속감이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여 불만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상대로부터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상대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을 초래한다.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관계를 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직장에 재직 중인 후배와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 후배로부터 얻어먹을 때가 있다. 필자가 직장에 다닐 때는 후배에게 점심을 사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능력이 되니 얻어먹어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기분 좋게 먹고 난 다음 반드시 “맛있게 먹었다”라고 말하면서 고마움을 표현한다. 또한, 밥을 먹을 동안에도 후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말을 잘 들어주고,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기도 한다.
이런 후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후배도 있다. 직장에 있는 동안 필자로부터 점심도 많이 얻어먹고 업무에서 도움도 많이 받은 후배가 퇴직 후 연락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이들의 생각은 퇴직한 필자로부터 더는 도움받기가 어렵고, 만날 때마다 점심을 자기가 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이들과는 비즈니스 관계라고 단정하면 이들의 태도에 대해 서운하지 않고 서운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행태를 생각할수록 내 에너지만 빼앗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동호회 회원들은 A 씨와 B 씨가 동호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동호회 혹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평가하기 시작한다. A 씨는 동호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지만, B 씨는 그렇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회원들은 ‘A 씨는 동호회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B 씨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A 씨에게는 친근하게 대하지만 B 씨와는 거리를 둔 것이다. 이처럼 대인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