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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퇴직자의 희생을 바라지 않았다

by 최환규

회사에 입사하고 몇 달 후 같은 부서의 선배가 조회 시간에 부서장에게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지방에서 형님 사업을 돕기로 했습니다.”라고 퇴직 인사를 했다. IMF 전만 해도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배신자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부서를 떠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후 충격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큰절을 하고 회사를 떠났던 선배가 신설 회사로 옮겼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에피소드를 얘기하면 젊은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퇴직을 했거나 앞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회사는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평생직장을 보장할 수 있는 회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잘 나가는 회사도 언제 어려움을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평생직장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회사와 직원 모두 회사가 어려워지면 고통을 겪게 된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는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거나 조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구조조정이나 해고 대상이 되는 조직원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면서 회사의 결정에 저항하게 된다. 이처럼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순간 회사에 감사함보다는 서운함 혹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회사를 떠나야 하는 모든 사람은 불안과 걱정 그리고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심지어 정년을 맞이하고 떠나는 사람도 감사함보다는 서운함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자신은 충분히 몇 년 더 일할 수 있는데 회사가 정년을 핑계로 자신을 잘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회사를 떠날 때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감정은 여성보다 남성 직원이 더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회사는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이 직장에 입사하는 순간 이 사람의 정체성이 변한다. ‘나는 ○○의 □□□’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최환규라는 사람이 어떤 회사에 입사했다면 그 회사의 조직원으로 최환규의 정체성이 정해진다. 만약 유명 대기업에 입사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목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 회사의 유명세를 빌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작은 회사에 다니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회사에 다니면 회사 이름을 말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회사를 숨기는 이유도 그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모든 회사원은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년 퇴직이 60세라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해가 되면 퇴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직장인 중에는 퇴직 준비를 회피하는 사람이 많다. 퇴직을 2~3년 앞둔 사람도 퇴직 준비 대신 퇴직을 늦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실적을 올려 임원 승진을 바라면서 부서원을 갈구는 사람도 있고, 경영진에게 치열하게 로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한다고 정해진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사람일수록 퇴직하고 나면 심한 욕을 하게 된다.


회사와 조직원은 거래 관계이다. 즉, 비즈니스 관계이다. 예전에 같은 부서 후배 중에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후배가 있었다. 이 후배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퇴근 후 회사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가졌고, 그 결과 신장에 문제가 생겨 하나를 떼는 수술을 받았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수술 후 후배는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업무 강도가 약한 부서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동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회사의 힘 있는 부서에서 그렇지 않은 부서로 쫓겨난 것이다. 이 후배는 몸이 망가지도록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회사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직장인이 평생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가정’이다. 심한 말로 표현하면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은 유흥업소에서 만난 사람과 같다. 돈을 주고받을 때만 아는 사람이고, 그럴 능력이 없으면 어제까지 자신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던 사람이 안면을 몰수하는 사람의 모임이 회사인 것이다. 따라서 직장인은 회사에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자신과 가족을 돌볼 여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직장인이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돈’이다. 특히, 배우자와 결혼이라도 하면 ‘돈을 벌어 배우자와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라고 결심한다. 스스로 한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직장 동료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생활을 퇴직 직전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직장 동료들과 시간을 보낼 때 가족들은 가장이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시간이 20년~30년 정도 지나게 되면 몸만 같은 집에 있고, 마음은 다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된다. 서로에게 애틋한 정이 없는 채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퇴직을 하고 나면 집에서 외톨이가 된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배제된 채 시간을 보낸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지만, 외로움은 더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일찍 퇴근할 필요가 있다. 퇴근 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취미나 공부를 하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취미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부족한 지식이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경험의 폭을 넓힌다면 승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될 가능성도 있다. 가족과의 관계도 개선되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인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대상은 ‘자신’이다. 만약 회사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오히려 ‘나를 위해 회사를 어떻게 이용할까?’라고 고민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생각이다. 이렇게 해야 조직원을 떠냐 보내야 하는 회사도 괴롭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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