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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이 취업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by 최환규


사람은 동물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경험과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동물은 성장하면서 암컷의 경우 출산하는 것만 빼면 하는 일이 똑같다. 반면, 사람은 태어나면 부모의 보호 아래 학생으로 2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공부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자기 혼자 하는 것이다. 이런 홀로 공부하는 시간을 보내면 직장에 취업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위계 구조의 조직에 들어가 함께 일하게 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퇴직하면 진짜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혼자 공부해야 하는 학생 때는 외롭지 않았다. 공부 방법이나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많고, 진로를 컨설팅해 주는 전문가도 많아 자신에게 적합한 최적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커리어를 쌓아가거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역량과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


반면, 퇴직 후에는 퇴직자의 미래를 설계해 주는 사람도 없고, 사람마다 가족의 속성이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사람을 보면서 따라 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미래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마치 무인도를 분양받는 것과 같다. 모든 무인도가 같은 조건이라도 거기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무인도의 모습도 달라지고,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만족도도 달라진다.


리더십 책을 읽는다고 리더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퇴직 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마다 경제력, 가족의 미래나 가치관 그리고 부지런함이나 인내력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성공 사례를 자신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퇴직 후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 될 수 있다.


취업과 퇴직의 가장 큰 차이는 ‘인싸’와 ‘앗싸’로 비유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용어인 인싸는 ‘인사이더의 약자로 자신이 소속된 무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콩글리시 표현이다. 취업을 하는 순간부터 사람이나 자원이 모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사와 동료 그리고 후배가 정해지고, 관련 부서 그리고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게 된다. 이 시절은 활동이 왕성할 때라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도 교류를 하게 된다.


반면, 퇴직은 이렇게 모인 자원을 모두 직장에 놓고 맨손으로 떠나는 시기이다. 인싸의 반대 개념인 앗싸가 되는 것이다. 퇴직 후에는 수입이 줄고,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멀어지면서 외톨이처럼 외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분양받은 무인도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인도에 있게 된 사람의 태도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을 할지 몰라 한숨만 쉬거나 생활박약으로 전락해 다른 가족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된다. 과거에 사장이든 임원이든 부하 직원이 몇 천 명이었든 지금 자신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무인도에서의 삶을 살아야 생존도 보장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퇴직하는 순간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과거의 경험과 역량들을 살핀 다음 자신만의 삶의 터전을 가꾸는 데 활용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보금자리는 잡초만 무성한 그런 곳이 되면서 가족도 살기 싫어하는 곳이 된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가꾼 사람은 열매가 무성한 곳이 되어 주변 사람들도 부러워하면서 찾아오는 그런 안락한 곳으로 변한 것이다.


퇴직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적합한 공간을 꾸미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만 왜 이런 황폐한 무인도를 분양받았을까?’라고 아무리 후회하고 누군가를 원망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만 쌓이면서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을 해치게 되면서 가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래를 위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좋은 환경의 무인도를 분양받았더라도 환경 가꾸기를 게을리하거나 분양 사기에 걸리면 완전히 황폐한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와는 달리 처음에는 집도 작고, 환경도 열악한 무인도를 분양받았더라도 가족이 뭉쳐 서로 격려하면서 가꾸어 나간다면 남해의 ‘왜도’처럼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곳으로 꾸밀 수도 있다.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산’부터 탐색해야 한다. 퇴직자 중에는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충분히 있음에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비관하면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자산에는 돈이나 인맥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온 능력이나 경험 등이 있다.


이럴 때 생존에 필요한 자산 중에서 자신에게 있는 자산부터 찾는 사람이 있고, 부족한 자산부터 찾는 사람이 있다. 무인도에서는 없는 것을 손에 넣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과거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부족한 자산부터,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보유 자산부터 탐색하는 차이가 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생존력이 높은지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퇴직은 인생에서 중요한 변곡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퇴직이 종착지는 아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고 방심한다면 힘든 미래가 기다릴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과거의 미련을 버리고 미래를 향해 첫걸음을 디딜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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