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퇴직은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정든 둥지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했던 소속을 떠나는 것은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물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 TV에서 야생 동물의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가 있다. 이럴 때 늙거나 권력 다툼에서 패한 동물은 무리에서 스스로 떠나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 동물은 혼자 생존해야 하지만, 혼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무리를 떠나기를 두려워한다. 퇴직은 직장인이 무리를 떠나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퇴직을 생각하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직장인의 삶은 ‘직장이라는 집에서 전세 혹은 월세살이’와 같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평수도 넓고 입지도 편리한 곳에서 법으로 정해진 기간까지 전세 사는 사람이다. 기업의 규모나 평판이 떨어질수록 열악한 환경의 작은 집에서 전세 사는 것과 같다. 전세는 자신이 언제 집을 비우기 위해 이사를 해야 하는지 그 시기를 알 수 있어 정년이 보장된 직원과 같다. 반면, 임원의 경우 퇴직을 통보하면 즉시 퇴사를 해야 하는 운명이라 계약 기간이 정해진 전세가 아니라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임시로 월세로 사는 사람과 비슷하다. 월세라고 해도 전세 사는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환경도 좋고, 평수도 넓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전세 사는 사람이 부러워하기도 한다.
전세나 월세의 공통점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까지 살겠다고 소송을 하더라도 결국은 1~2년 늦추는 것뿐 영원히 살기는 어렵다. 이럴 때 집 없는 서러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세입자는 집주인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을 안고 산다. 특히 집주인의 환심을 사겠다고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집주인으로부터 방 빼라는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으면 ‘내가 이렇게 깨끗하게 집을 썼는데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들에게 낙서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는 건데….’라고 과거의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미리 겪은 퇴직 선배들은 ‘주인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런 조언을 가슴 깊숙이 새겨둔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를 살면서 저축이나 재테크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 두거나 자기 집을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설마 집주인이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나를 나가라고 하겠어?’라고 근거도 없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 배우자가 “옆집을 보니 이사 준비를 하던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괜찮아. 그 사람은 집주인 눈 밖에 나서 그런 거고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천천히 준비해도 돼”라고 말하면서 가족을 안심시킨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상황은 누구나 맞을 수 있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으면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하면서 집주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도 느끼면서 자신의 준비 부족을 자책하게 된다. 이럴 때 배우자로부터 “내가 미리 준비하자고 했을 때 괜찮다고 했지? 당신이 책임져!”라는 질책이라도 듣게 되면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배우자인 것처럼 배우자나 가족에게 화를 낸다. 배우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라 서로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싸우다 “따로 살자”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순간 최악의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전세 사는 사람은 월세를 사는 사람보다 사정이 조금 나을 수 있다. 주인의 퇴거 통보가 없으면 전세보다 월세가 방도 넓고 주거 환경도 좋아서 전세 사는 사람이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월세는 계약 기간이 ‘주인 마음대로’라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 이 사람은 보증금도 없이 살았기 때문에 살던 집에서 나가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살던 집보다 방도 좁고 주거 환경도 열악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사한 다음 친구나 지인이 “여전히 거기서 살고 있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왜 이사를 했는지도 설명해야 하고 이사한 집이 열악하다면 그 이유까지 설명하려면 자신의 능력 부족을 드러내게 될까 봐 이사한 사실을 숨기고 싶어진다. 이런 이유로 월세 살던 사람은 이사 후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기도 한다.
집주인이 아니면 언제든지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한다. 다행히 착하거나 무관심한 주인을 만나면 몇 년 더 살 수도 있겠지만, 주인 자녀가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바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안심할 수 없다. 결국, 전세나 월세를 사는 순간부터 이사 준비를 조금씩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다른 집을 보러 다니면 집주인이 눈치를 채고 예정보다 빨리 나가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준비는 여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주식이나 가상화폐와 같은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투자는 여윳돈으로 해야 한다. 또한, 지인들의 투자 권유에도 조심해야 하는데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전세나 월세 사는 사람과 같은 처지이다. 물론 법으로 정해진 정년이 있어 그때까지 근무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힘들어서 혹은 회사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도 있다. 이처럼 퇴직은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문제는 퇴직을 맞이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정년을 맞아 퇴직하는 사람에게 정년퇴직은 오랫동안 무탈하게 일한 훈장과 같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퇴직 후 주변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가정불화 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자신도 그런 상황에 부닥칠까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퇴직 준비가 필요하다.
과거를 후회하면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커진다. 퇴직자는 퇴직한 이유가 무엇이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따라서 퇴직자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퇴직 몇 년 전부터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계획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래의 계획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퇴직 후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별다른 영향이 없어 새 출발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