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설렘을] 세상이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하라

제 3장. 중요한 건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야

by 별똥별 shooting star


내가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하라

두려움을 똑바로 직시하고, 두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 목표에 나를 맞춘 후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도약할 수 있다. 그중 첫 번째로 도전해야 할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나'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해야 한다. 각자 개인에게는 많은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나의 과거가 두려울 수 있고, 나의 현재가 두려울 수 있고, 나의 미래가 두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두려울 수 있고, 실패가 두려울 수 있다. 또 나의 무능이 두려울 수 있고, 세계가 두려울 수 있다.


수많은 두려움 중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계가 두렵다면 혼자 해외여행이라는 가보는 것이다. 물론 두려움을 넘어서겠다고 여행 위험지역에 간다는 것은 포인트를 잘 못 짚은 것이다. 그리고 무능이 두렵다면 과감하게 무능과 마주하는 것이다. 실패가 두렵다면, 과감하게 실패와 마주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두렵다면 과감하게 인간관계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두렵다면 가장 솔직하게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전하고 도약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이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하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도전하며 도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다음으로는 세상이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한다면 나를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한다면 분명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곳에 도전하려면 먼저 세상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 두려움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은 "책임"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남 탓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조차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세상이 두려워하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던 중에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의 내용은 이러했다. 한 아버지와 아이가 절벽에 서 있었는데 아이가 절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버지는 바로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같이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이 꿈을 꾸는 순간 나는 "책임"을 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을 사랑한다면 나를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나라를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일까? 성경에서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라는 구절이 있기도 하다. 두려움의 가장 큰 이유가 책임인데, 사랑하면 책임을 질 수 있으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고 했다.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아무도 가족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가정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아무도 나라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라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아무도 세상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것에 가장 큰 형벌이 아닐까?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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