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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Mar 23. 2023

오감도 시 제1호

- 맛이 간 위인의 체취 -

오감도 시 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 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람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오감도는 이상 25세 때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되어 물의가 폭주했던 문제작이다.

당시 오감도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센세이션이었다. 어떤 미친놈의 잠꼬대를 신문에 싣느냐? 무슨 시가 장난 망발이냐. 오감도가 사전에 없는 말이다 보니, 조감도의 오타가 아니냐? 등등 독자들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烏와 鳥는 획 하나 차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이상 연구 논문은 그가 작품 활동한 이상으로 엄청나게 풍부하다. 특히 오감도에 관련된 논문만도 수백 편에 이른다고 한다. 학위 논문으로 오감도만큼 다루기 쉬운 소재도 없다.

그의 시는 지극히 굴절된 관념의 세계이기에 현실 세계에서는 해석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이러한 이유로 논문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상도 “맛이 간 위인”이지만 마광수 교수도 이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맛이 간 위인”이다. 맛이 간 위인이 맛이 간 위인의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도 맛이 갈 만큼 독특하다.

마광수 교수는 오감도를 정자(精子)들의 무서운 질주라고 해석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13인의 아해는 정액을 의미한다고 한다. 3자는 둔부, 또는 유방을 상징하고 1자는 성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그러고 보면 13인의 아해는 시각적으로 수많은 정자가 질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둡고 좁은 질구를 처음으로 여행하는 것이니 당연히 아해들이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정자의 질주는 곧 아해(잉태)의 목적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13인의 아해가 모두 동일한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수정의 원리상 최초의 1인 또는 2인(쌍둥이)만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따라서 제1인 제2인의 아해는 난자를 뚫을 수 있지만(뚫린 골목)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 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수정한 이후에는 난자 방호벽에 의하여 달리던 아해들은 막힌 골목에 부닥치게 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마광수 교수가 위와 같이 해석한 근거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이상은 다방을 운영했었는데 다방 이름이 "69"였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다방 이름은 다분히 성적 체위 뉘앙스를 풍긴다. 그전에 "제비"라는 간판 이름도 있었는데, 당시 상류층은 서구적인 춤이 유행이었다. 제비는 오늘날의 의미와 같은 건달을 의미한다. 그 외 여러 가지를 근거로 들었다.

마광수 교수는 시인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가 고난의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한 젊은이가 부르짖는 자궁 회귀 욕망의 표현이라고 했다가 비평가들에게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오감도 해석도 예외가 아니어서 비평가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마광수 작품 중에서 여론이나 문학가들에게 두들겨 맞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두들겨 맞지 않으면 천재가 아니다.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도 두들겨 맞았다. 한 번은 한 여학생이 “질이 낮아서 강의 못 듣겠다”고 마광수 교수에게 따졌다. 그러자 마 교수는 그 여학생에게 일어나 보라고 말했다. 그 학생이 당당하게 일어나자 마광수 교수가 말했다. “어때? 질이 높아졌지?"     


마광수 교수 말고는 대부분의 오감도 해석은 평범하다. 불안과 공포의 시대를 표현했다고 하는 의견이 가장 많다. 까마귀(烏)가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13일의 금요일처럼 “13”이라는 숫자도 음침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 자신이 폐결핵에 걸린 환자였고, 일본인들 틈에서 멸시받으며 다녀야 했던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업 실패를 생각해 보면, “13”이 두려움과 불안의 상징으로 보는 것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13”이 예수와 열두 제자가 그려진 최후의 만찬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배신과 추종 관계를 숫자를 통해서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여러 여자와의 배신, 특히 금홍과의 관계는 파멸과도 같았다. 그에게는 제대로 된 구석이 없는 세상이었다.  

   

28세의 짧은 생,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과연 그의 詩想은 무엇인지, 앞으로 논문이 수없이 쏟아진다 해도 그 실체는 밝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 시에서 나는 “막힌 골목”과 “뚫린 골목”에 주목한다. 시대가 막혀 있을 때 그것을 뚫고자 하는 역사의식이 한 명의 천재를 잉태한다. 시대가 뚫려있을 때는 천재가 필요치 않으므로 광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어두운 시대가 한 명의 천재 또는 광인을 낳는다. 나는 천재와 광인을 이음동의어로 취급한다. 제대로 맛이 간 위인들이다. 그들에게서 독자를 배려하는 친절한 글은 찾아볼 수 없다. 독자들에게 선택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독자를 선택한다. 자신을 선택할 줄 아는 독자를 기다린다. 독자에게 선택받은 글은 당대에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선택을 기다리는 쪽은 후대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선택을 기다리는, 그중 한 명이 마광수 교수라 생각된다. 그의 책은 아직도 금서로 묶여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당대에 “미친놈의 잠꼬대”로 평가받았던 오감도처럼, 그는 틀림없이 후대에 이상만큼의 진가로 재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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