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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잡담 May 24. 2023

세포들의 이야기

세포들의 이야기


세포 표면에는 당단백질(당사슬)이 솜털처럼 나있다. 

이것은 단당(포도당+과당)이 단백질과 결합된 형태다. 단당이 단백질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당사슬 성격도 달라진다. 당사슬은 종류가 2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사슬은 CCTV와 같다. 세포 주변을 항시 감시한다. 외부 침입자(바이러스)를 발견했을 때 면역세포에게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고물질(사이토카인)을 내보기도 한다.

당사슬이 획득한 정보는 도미노처럼 퍼져 주변 세포들이 공유한다. 즉 인터넷망(인터페론)이 우리 몸에 깔려있는 것이다. 세포가 얼마나 건강한가에 따라 인터넷 품질이 달라진다. 통신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질병에 걸리기 쉽다. 정보 전달이 늦어 대처가 늦기 때문이다. 통신 품질이 메가급인지 기가급인지는 당사슬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달려 있다.  


적혈구도 세포이기에 당연히 당사슬이 있다. 

어떤 종류의 당사슬이 붙어 있느냐에 따라 혈액형이 결정된다. 정자와 난자 표면에도 당사슬이 붙어 있다. 같은 종 간에는 모양이 같지만 종이 다르면 당사슬 모양도 다르다. 이 때문에 이종 간의 교배에서는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사슬이 수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뇌세포 중에는 포만감을 감지하는 당사슬도 있다. 이 세포가 부실하면 비만에 걸리기 쉽다.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만인 사람은 이 세포의 당사슬 길이가 짧다고 한다. 안테나가 짧아서 더 먹어야 하는지 덜 먹어야 하는지 신호를 잘 포착하지 못한다.     


호흡기, 소화기, 비뇨기에서 당사슬은 점막 형태로 존재하여 독소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 

가래가 나오는 이유도 당사슬이 이물질을 외부로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생리현상에 당사슬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당사슬은 세포 표면을 덮고 있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웃한 세포 간에는 서로의 당사슬이 접촉될 수밖에 없다. 뉴런 말단에서 신경세포들이 정보를 교환하듯 세포들도 접촉된 당사슬을 통해 이웃한 세포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한 세포의 이야기는 주변으로 퍼져 서로가 새로운 소식을 주고받는다. 밤새 별일은 없었는지 안부부터 시작해서 바이러스나 이상한 단백질 침입은 없었는지 그쪽 살림 형편은 어떤지 소소한 얘기도 나누지만 관리조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요즘 세포들에게 글리코겐 공급이 충분치 않다. 세포들이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영양식인데 그것은 췌장에서 합성되어 배달된다.     


『글리코겐이 떨어져 가고 있는데 대체 췌장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언제 배달해 준다는 한다는 얘기도 없고, 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전에처럼 또 바이러스 먹고 뿅 간 거 아냐?』     


『그러게 말이야. 복지부동인가 봐. 몇 번을 독촉했는데도 꼼짝을 안 하네. 단백질 생산을 잔뜩 해놓았는데 가져갈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이제는 쌓아놓을 데도 없고 내가 먹어 치울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뇌는 이런 거 감독 안 하고 뭐하는지 모르겠어. 요즘 알코올이 많이 들어오던데 집집마다 난리야. 어지럽고 속이 쓰려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알코올뿐만 아니야. 니코틴은 어떤지 알아? 얼마나 독한지 환기를 해도 빠져나가지 않아. 화생방 훈련도 아니고 악취 때문에 대체 살 수가 있어야지.』     


세포들은 부드러운 솜털을 만져가며 서로가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들도 하나하나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사연도 많고 할 얘기가 많다. 

언어가 없으면 생명이라고 볼 수 없다. 생물은 살아 있기 위해서 매 순간 반응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은 의사소통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질분자 교환이 곧 그들이 소통하는 언어다.

세포는 자신이 외부 침입자나 이상한 놈이 아니라는 증거로 표면 위에 자신의 신분증을 달아 놓는다. 자기가 생산한 단백질 샘플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세포의 항원 제시다. 


면역세포(세포독성T세포)가 수시로 순찰하면서 세포가 제시한 샘플을 일일이 확인한다.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샘플(항원제시)을 보면 세포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구별할 수 있다. 샘플이 없으면 암세포일 경우가 많고, 샘플 모양이 이상하면 바이러스가 침투한 세포일 확률이 높다.

어쨌거나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면역세포에 의해 그 세포는 즉시 제거된다. 샘플이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된다. 세포가 단백질을 많이 생산해도 이상한 것이고 적게 생산해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쪽 지역에 공습경보가 내려졌데! 이상한 놈이 침입했나 봐. 면역세포들이 전부 그쪽으로 출동하고 있어.』

     

『불심검문에 걸릴지 모르니까 신분증 제대로 달아놨나 모두들 확인해 봐! 여기도 순찰대가 들이닥칠지 몰라.』  

   

『그러게 말이야. 건너편 세포는 늦잠 자느라고 신분증 달아 놓는 걸 깜박해서 그만 저 세상으로 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어수선해? 팬데믹인가? 툭하면 사이렌이 울리니 정신 사나워서 맘 편히 살 수 있겠어?』     

세상의 모든 것은 소통한다. 언어가 다를 뿐이다. 새의 언어와 나무의 언어가 다르고, 나무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다르다. 인간 안에서도 언어는 제각각이다.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도 문제가 발생한다. 씨앗도 외부와 소통이 단절되면 싹을 틔울 수 없다. 원자들도 소통이 단절되면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없다. 하물며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소통은 생물과 무생물의 공통점이지만 차이는 감정이다. 감정이 없다면 무생물이다. 무감각한 사람을 “돌 같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극히 과학적인 표현이다.

돌덩이도 그 내부에는 원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단지 그 덩어리에 신경계가 없어 무감각할 뿐이다. 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도 그 덩어리에 감정이 없다면, 그것이 돌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결국 삶은 감정의 문제다. 느낌은 살아 있다는 표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빛을 흡수하는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면 광합성 작용도 없을 것이다. 감정이 사라질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언어가 다르다고 감정도 다를까? 언어는 곧 감정이다. 언어는 분리할 수 없는 생명의 신경과도 같다. 때문에 생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한 모든 생물의 감정은 같다. 단지 언어가 다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본능은 충돌하고 생물들은 서로가 다투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그렇다. 때문에 자신의 생존과 상관없는 폭력과 감정은 자연에 대한 반역이다. 이것은 곧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른 어머니에 대한 도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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