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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황도 경험도 없는 상주
확정적 초보를 대하는 세상의 자세
by
NH
Dec 18. 2024
상주는 경황이 없고 경험도 없다.
병원과 상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확정적
초보를 대할 때
선의를 베푸는 이도 있겠으나,
초보자가 들고 있기엔 큰 보따리를
나눠지는 척 가져가려는 이도 있을 터
장례라는
갑작스러운
3일 동안의
폭탄 같은
감정의 교차와
떨어지는 낙엽처럼 돈이 쉬이 오가는 행사에서
이
흐름을
좌우하는
초보인
상주를
돕는
병원과 상조는
순수한 의도의
도움이
아닌
본업에 기반한 도움에 임할 뿐
적극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이도 있겠으나
,
대부분은
소극적인 이기심을 발동한다. 그저 덜 성실한 조언으로 초심자의 실수를 방관해 간다, 자신들의 이기심을 세심히 가리면서.
상주가 된 순간의 나는,
모두가 오열에 빠진 그 순간,
정신을 부여잡고
사망진단을 확인하고
장례식장과 방 크기를 정하고, 사망신고서 사본을 잔뜩 발급받아 운구를 어디에 맡길지 정해야 했다.
결정해야 할 것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정신을 부여잡고 기도하며 수능을 찍는 심정으로 내 선택과 결정이 최선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오열할 여유도,
알아볼 시간 따위도 나에겐 없었다.
회사의
복지로 상조서비스가 지원되었으나
운구까지 포함된 비용임을 사후에 안내해 줘
다른 업체로 이미 이동해 버린 나는 운구비를 두 번 낼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계속 병원과 상조, 화장장에서의 중복 서비스를 잡아내야만 했다.
조문객 음식
종류와
가짓수를 정하고,
방 내 슬리퍼와 주방도구도 모두 구매(라 적지만 사실상 강매) 하며,
그곳에서 상주와 조문객, 주방이모와 상조직원들이 사용할 모든 물품류를 구매 결정 해야 한다. 방명록과 플러스펜과 봉투와 휴지, 고무장갑까지도..
당연히 이런 것까지 일일이 비교해서 결정할 정신이 없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꽤나 높게 책정된 장례식장의 집기 구매에 서명하게 된다.
상조회사는 기본 백만 원 이상의 제단 꽃장식부터
수십수백의
비단/삼베
수의,
오동나무 관, 관 생화장식, 이중진공 도자기 유골함
등을 차례로 권한다.
울음 가득한 공간의 압박 속에서
부모 가시는 길에
고
급 장례 용품으로
효를 이루길 바라는 상조 직원의 도움 속에서
허례허식을 줄이고 대소사를 합리화 하자는 캠페인들은 다른 차원에서의 외침일 뿐이다.
기본형을 선택하면 불효자가 되는 느낌,
들어온 부의금으로 어떻게든 지불될 거라는 느낌으로 갖은 용품들을 고
급으로 결정하고 나면
또 다
른 돌봄 거리와
선택의 연속이 나를 기다린다.
임종 직전
환자를 받기 거부하는 병원들과,
콧대 높은 서울 병원의 거부에 산골짜기 병원이라도 모셔가려 고군분투하는 구급대와,
오열과 실신 속에 갇힌 어머니와,
나보다 더 경황이 없는 동생과,
아버지가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하신 소규모 사업체와,
공장 설비를 헐값에 챙겨가려는 아버지 후배와,
아버지가
받을 돈을 숨기려는 거래처들과,
아버지에게 받아야 할 돈을 부풀리려는 거래처들,
거기에 딸린 직원들의 근로와 급여와,
아버지가 챙겨 왔던 고모들의 군침과,
밀린 업무와 누적된 휴가로 인한 회사 내 입지와,
이혼 소송의 변론 기일과 아이 양육 문제들 속에서
상주가 되는 순간 나는
최선의 아니
차선의 선택도 하기
어려웠다.
살면서
여
러 번 겪을 일도 아니기에
그리고 차마 입에 담거나 떠올리면
안될 것만 같기에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것도 통상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래서 상조회사는 아마
내가 미리 남사스러운 계획을 세우지 않을 권리를
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내 일이 아닌 일을
내
일처럼 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일일수록 나의 관여도는 높아져야 한다.
결혼식의 소품 하나하나에도 내가 직접 챙기는 이들의 결혼식이 풍성하고 아름답듯,
장례식도 내가 직접 미리 챙겨둬야 한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더라면,
조금 더 준비된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 경황없는 모습까지 사랑해 주실 아버지이나,
내 마음속에 남은 아쉬움일 뿐
.
아버지가 일궈온 집안의
의연하고 장성한 기둥의 모습으로
가시는 걸음걸음 따뜻하게 비춰 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
장례라는 걸 덮어두고 외주로 맡기기보다
가족들이 직접
계획해 두고 가꿔나가는
문화
내 장례에 대한 의견을
가족들에게 제안하고
협의해서
우리
집이 직접 가꾼
우리가 준비한 장례식으로
조문해 줄 은인들을 맞이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보는 요즘이다.
keyword
상조
병원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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