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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Jan 09. 2024

침수


    세상이 바다 같다 모두가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여기에는 아이가 납작 엎드려 있고 나는 그를 끌어안고 너는 대체 왜 여기에 있냐고 화를 낸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물이 차오른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도 이제 그다지 나쁘지 않다 새벽이 긴 나날도 견딜만하다 온 세계가 푸른빛으로 가득 차서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처음에는 숨이 막혀서 울었던 것도 같은데 그 뒤는 잘 모르겠다 손이 떨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나의 기억은 상실로 가득 차 있어서 넘실거리는 마음을 삼킨다


    가끔 취할 것이 필요할 때 신을 찾는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 따위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 이제 왜 그렇게 울어 아프니 차오르는 물이 말을 건넨다 따스하다 너는 신일까


    언제나 내가 택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꼭 잘하려고 하면 안 돼 잃은 것이 없는데 자꾸 상실감에 빠진다 어제는 꿈을 꾸다 오른손을 잃었다


    너무 많은 물을 마셨다 이제 그만 가라앉고 싶은데 자꾸만 뜬다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슬픔인지 기쁨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쪽이어도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이 물이 되어 흘러온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데 나는 자꾸 영원히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반짝이는 비늘을 세다가 가시를 삼키는 새벽이 찾아온다


    나는 자꾸만 나를 울게 만들고 내일은 멸종된 자들의 환각이나 환청 따위를 겪게 될 것이다 자꾸만 행복하냐고 묻고 싶다 언젠가 한없이 가라앉는 법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파도가 바람이 되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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