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기억되기 시작한 첫 세계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 때는 삭막하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곳인 줄 알았으니까.
사람들은 수직으로 겹쳐있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 아래에 집이 있고 집 위에 또 집이 있었다. 어디가 끝인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언젠가 나무 위에 있던 작은 벌집을 가지고 논 적이 있었다. 땅으로 떨어진 벌집에서 많은 벌들이 기어 나왔고 집을 공격한 나에게 덤벼들었다. 당황한 나도 앞발로 벌들을 쫒으며, 벌집을 밟아 부셨는데 그때 속의 집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수십 개의 작은 방들이 옆으로, 아래위로 빼곡히 붙어 있었다. 이 작은 덩어리 안에 그렇게 많은 벌들이 살 수 있는 이유를 그 때 알았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벌들이 사는 집과 닮아 있었다. 집만 닮은 것이 아니었다.
생활하는 모습도 어딘가 비슷했다. 가장 큰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것과 그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은 벌들은 보이지도 않는 빠른 날개 짓으로 웅웅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벌집을 드나들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쉬지도 않았다. 먹이를 구해오나 싶었지만 뭔가를 들고 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저렇게 분주히 움직이면, 더 빨리 배가 고플 텐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사람도 비슷했다.
아침이면, 층층이 쌓인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일 먼저 어른들이 나왔고 조금 지나면 꼬마들이 재잘대며 나왔다. 어른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이거나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 대부분이었는데, 밤새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지는 표정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아침과 달리 돌아오는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벌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빈손이었다. 먹이를 구해오는데 실패한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사냥 능력이 현저히 낮은 집단이 벌이나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로 궁금했다. 나는 그 때 혼자였음에도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전쟁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고 이동하는 자동차라는 것이 벌집 같은 집 울타리 안을 거의 다 채우고 있어서 사냥할 것들이 거의 없었고 쓰레기를 뒤지거나 그저 인심 좋은 사람들이 주는 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그 밥을 노리고 있던 고양이가 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인데, 그 놈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고 있으면 그 날은 굶는 날이었다. 덩치도 크고 성질도 더러워서 괜히 주변에 얼쩡거리다가는 몇 대 얻어맞을 것이 뻔하기에 지례 포기하고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놈들은 교태도 부릴 줄 알아서 사람들이 밥을 주면 그 앞에 발라당 눕거나 머리를 비벼댔다. 참 자존심도 없는 놈들이었다. 아니, 자존심이 없다기보다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엄마가 차에 깔려 죽기 전에 내게 자주 해주던 얘기가 있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겁이 많고 의심도 많은 이상한 동물이라고 했다. 겁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모여살고 사람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경계 하며 자신들의 영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끼리는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해서 모여 살아도 혼자 사는 것과 다름없는 동물이 사람이라고 했다. 고양이가 늘 사람의 언저리에 살아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이고 가끔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는 것도 혼자의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니 절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얘기했다.
벌집을 지키고 있는 제복을 입은 사내를 보면,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비쩍 마른 사내였는데,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고양이를 보기만 하면 표변했다. 원수를 만난 듯 적대감이 땀처럼 솟아나왔다.
“저 놈의 웬수들. 야, 이놈들아 딴 동네로 좀 가라. 니들 때문에 내가 잘리게 생겼어.”
라고 소리치며, 빗자루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래봐야 우리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왜 우리로 인해 본인이 잘릴 수 있다는 위기를 느꼈는지 짐작이 가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벌집을 지키는 사내는 특정 여자와 마주치면, 얼굴이 사색이 됐다. 잘 먹어 살집이 있는 여자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늘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 날도 다른 날처럼 덩치 큰 고양이 두 마리가 코를 박고 밥을 먹고 있었고 난 멀리서 입에 침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여자가 지나가다 고양이를 보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과장된 몸짓과 괴성으로 고양이들을 쫓아내더니 제복 입은 사내를 고함쳐 불렀다.
“아니, 아저씨. 제가 계속 얘기했잖아요. 주민들 민원 때문에 죽겠다니까요. 저 놈들 때문에 강아지 산책을 못 시키겠다는 둥, 아이들이 더러운 저 새끼들을 만지고 들어와서 걱정이라는 둥, 주차할 때 걸치적거린다는 둥, 별의별 얘기가 다 들어와요. 저 놈들이 단지에서 새끼라도 싸지르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제발 좀 어떻게 해보세요, 이거 해결 안 되면, 경비반장님한테 직접 따질 거예요”
총알 같이 쏟아 내니, 사내가 당황해서 얼굴이 벌개진 채 아무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암사자 같은 고양이 얼굴의 여자에게 한참을 혼나더니 혼이 빠져서는
“씨팔,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중얼 거렸다.
어쨌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같은 여자에게 종종 혼나고선 제복 입은 사내는 악에 받힌 듯 했다. 그 사내 때문에 밥 먹는 것이 더 힘들어졌고 움직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곳의 벌집을 사람들은 아파트라고 불렀다. 아파트라는 이름의 삭막한 곳에서 사는 것은 전쟁과도 같았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타이밍을 놓치면 배를 곯아야 했다. 사람들이 밥을 주니 고맙기도 하면서도 사람들 때문에 못살 것 같은 이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래봐야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똑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벌집에서 살았다. 난 하루하루 말라갔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화단 속에 숨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무료함을 달래던, 벚꽃 잎이 날리는 어느 봄 날 오후였다.
그 때 그를 처음 봤다.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라서 그에게 시선이 확 꽂혔다. 그는 있어야 할 곳에 털이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었든 간에 사람들 머리에는 털이 있었다. 다른 곳은 없는데 유독 머리에만 털이 나 있었다. 길거나 짧거나 검은색이거나 다른 색깔의 털이거나 모두 머리에 털이 있는데, 그는 없었다. 병이 있는 걸까? 그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밝았다. 아파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머리에 털이 없을까? 궁금해서 계속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 때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파란색 새를 발견했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어깨 쪽으로 돌려 새에게 말을 걸었다.
“완두(새의 이름 같았다)야, 날씨가 정말 좋네. 오랜만에 밖에 나왔지?”
새는 대답대신 그의 볼에 머리를 비벼댔다. 그의 얼굴이 벚꽃 같이 환해졌다. 아파트의 사람들에게서 잘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아! 사람이 저런 얼굴을 하기도 하는구나, 나의 경계하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고 그에게 가서 나도 머리를 부비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다. 그가 손을 어깨 위로 올리니 작은 새는 옆 걸음으로 손 위에 올라갔다. 그러자 그가 손을 앞으로 쭉 내밀면서
“완두야, 너도 산책하자”
하니 새가 파르르 날아올랐다. 높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를 떠난 새는 자유롭게 날았다. 그렇게 새는 자유를 찾아 그를 떠나는구나 싶을 때, 방향을 틀어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돌아와 다시 그의 손에 앉으면, 그는 다시 새를 날려 보냈다. 보이지 않는 실이 서로를 연결한 듯, 그렇게 날아갔다 돌아오고 또 날아갔다 돌아왔다. 둘 만의 재미있는 놀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내 마음에는 파문이 일었다. 신기해하던 마음이 지나가자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일었고 미치도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둘을 물어뜯어 죽이고 싶었다. 내가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 옆을 지나칠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제복을 입은 남자 따위는 비교도 안 되게 미워서 어떻게 저 행복해 보이는 커플을 찢어 놓을까 골몰했다. 잠시 잊고 있던 허기도 몰려오니 비참한 내 모습이 겹쳐져 더 제정신이 아니었던 듯싶다. 생각으로 그칠 것 같던 행동을 순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그가 새를 손에서 떠나보내는 순간, 난 화단을 뛰쳐나와 새처럼 날아올랐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내 등에 날개라도 돋은 것인지 높고 빠르게 날아서 새를 잽싸게 입으로 낚아챘다. 놀란 새가 ‘짹’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땅에 내려선 순간 난 내가 벌인 일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주저할 틈도 없이 새를 입에 문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를 멍하니 보고 있던 그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 왔다.
“야, 이놈아. 안 돼~ 완두야~ 저 새끼. 기다려, 아빠가 구해줄게. 야이, 죽일 놈아”
두서없는 욕과 비명이 뒷덜미를 잡는듯하다가 점점 멀어졌다. 이를 악물고 뛰었더니 새의 몸으로 이빨이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새는 “짹‘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따뜻한 피가 새어 나왔다. 비릿한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데 목이 찌릿했다. 피가 살아서 고통과 두려움으로 아우성치며 목을 할퀴는 것 같았다. 나로 인해 살거나 죽을 수 있는 생명이 존재하는 구나라는 자각이 나를 더 흥분시켰고 그 에너지로 죽어라 달렸다.
달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어떤 존재에게 절대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벌집 같은 곳에 붙들려 살고 있는 내게 아파트라고 불리는 세상은 절대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었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완벽하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에게.
내 통제 하에 어떤 일이 결정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그 상황을 통제하기보단 본능에 내맡기고 있었다.
뒤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점점 흐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마도 내게서 새를 구해낼 수 없겠다는 절망이 그를 울게 만들고 있을 것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그의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싶었을 때 그가 “제발, 놔줘” 라고 신음처럼 내뱉었다. 충분히 고통스러운 마음일 것이라 짐작은 됐지만 그 짧은 말이 어떤 의미지인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의 모습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달려온 나는 회양목이 우거진 화단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리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기 위해 물었던 새를 내려놓았다. 파랑색이었던 새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날개를 퍼덕거리니 몸이 빙빙 돌았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울음소리도 처량했다. 새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애초에 새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본능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을 뿐이었다. 새는 상처가 깊어보였다. 이대로 두면 얼마안가 죽을 것이고 그 때까지 고통에 신음할 것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고통의 냄새를 킁킁 거리며 나도 신음 같은 울음을 우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깜짝 놀라서 난 얼결에 새의 목을 콱 하고 물어버렸다. 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그는 정말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이 새끼, 내가 정말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
“완두야, 미안해. 흑흑”
증오와 비애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는 말을 중얼거렸다. 회양목 아래에 숨어있던 나는 “야옹”하는 신음소리가 나올까봐 앞발로 주둥이를 꾹 눌렀다. 그가 휘적휘적 우리를 지나쳐 가고서야 겨우 한 숨을 돌렸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고 당장에 뭐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달릴 때 목구멍으로 넘어오던 피 맛이 생각났다. 따뜻하고 짭쪼름 하던, 달리기에 힘을 실어주던 그 피를 조금 더 마시면 이 허기를 모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잠자 듯 누워 있는 새의 가슴팍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심장에 정확히 찔러 넣었는지 아까보다 많은 피가 입으로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를 메아리처럼 채우던 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숨어있던 회양목 아래는 캄캄해졌고 벌집에는 하나 둘씩 환한 빛이 켜졌다. 벌집에 불이 켜지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낮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던 집이 밤이 되면 대낮처럼 밝게 불이 들어왔고 간간히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람들은 밝은 곳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녔다고 짐작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어두운 집을 나서고 밤이 되면 밝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리라. 새도 죽은 마당에 한껏 쓸쓸해져 멍하니 벌집들을 바라봤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비교적 큰 방에 불이 제일 많이 켜져 있었는데, 대부분 움직이는 그림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밤이 늦도록 그렇게 움직이는 그림만 바라보고 있는 걸 당체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도 있을 터인데 가족이라도 핥아주지 혼자서 외롭게 앉아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나만큼 처량해 보였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나는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사람을 보고.
그들이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다...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벌집일지언정 집이 있었고 난 집이 없었다. 그들은 핥아주지 않았지만 가족이 있었고 난 없었다. 오늘따라 그 현실이 차갑게 다가왔다. 차갑게 식어버린 새가 비웃는 듯했다. 콱 물어서 콘크리트 벽에 던져 버렸다.
날이 밝았고 세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어젯밤,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면 고양이가 새를 물어갔다는 소식에 벌집을 쑤신 듯 단지 안이 난리가 날 것이라 예상했다. 가여운 새를 죽인 못된 고양이를 잡겠다고 벌집의 모든 사람들이 나설 것만 같았다. 두려움에 떨며 밤을 보냈건만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다. 다시 저녁이 오고 또 날이 밝아도 전날과 같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곳에서 밥 먹을 때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여자 사람이 때가 되면 챙겨주는 밥은 늘 경쟁이 치열해서 조금만 늦어도 빈 그릇을 마주할 때가 태반이었다. 용케 사료가 남아 있어도 제복을 입은 사내라도 마주치면 그 마저도 못 먹게 되니 늘 때를 잘 노려야 했다. 그런데 머릿속이 온통 그가 혹시라도 벌일 복수에 대한 걱정뿐이라 빈 그릇을 핥을 때가 많았다.
단지에는 나를 포함한 암컷이 두 마리, 수컷이 세 마리 정도였다. 확실치는 않다. 단지를 오가는 고양이들도 있었고 모르는 새에 죽는 고양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고양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적은 밥을 두고 경쟁하고 다투니 신경질적이었고 서로 말도 섞지 않았다. 덩치가 컸던 다른 암컷은 나를 특히 경계했지만 밥 주는 여자와 다른 수컷 고양이에게는 교태를 부렸다. 욕심도 많아서 밥도 제일 많이 먹었다. 밥 주는 여자도 이 암컷이 마음에 들었던지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쓰다듬어 주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암컷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기위한 나름의 생존 전략을 따르는 것이겠지만 난 그 암컷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까지 했다.
‘밤에 저 고양이를 습격할까? 소리도 없이 다가가서 자는 저 놈의 목을 새에게 했던 것처럼 콱 물어버리는 거야’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고작 새 한 마리를 죽이고서 두려움에 잠도 못 자는데, 동족을 죽일 자신은 없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동족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웠다.
단지에 사는 사람 중에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밥 주는 여자만은 아니었다. 길을 가다 우리를 보고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를 좋아하고 예뻐해 줬다. 그런 사람들이 밥 주는 여자처럼 우리에게 밥을 주면, 부족한 밥은 해결될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고양이들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말고는 아무도 우리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가져온 장점도 있기는 했다. 단지의 고양이 수는 늘 네다섯 마리를 넘지 않았다. 먹을 것이 많았다면, 아무래도 단지의 고양이 숫자는 더 늘어났을 것이고 먹을 것은 또 부족했을 것이다. 불행한 삶 속에서 다행함을 찾는 내 자신이 좀 비참했다.
뜨거운 여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단지는 아스팔트의 열기로 가득차서 낮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제복 입은 남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성질 더러운 고양이들도 낮 시간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얼굴에 달려드는 파리만 쫓고 있었다. 그 덕에 한 낮의 벌집 단지는 내 차지가 되었다. 여자 사람이 밥을 주는 근처 차 밑에 숨어 기다리다 여자가 밥을 그릇에 담으면, 제일 먼저 뛰어가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여자가 뭐라 말을 걸어도 들은 채 만 채하고 밥만 먹었다. 그러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고양이들이 보이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허기는 면했다.
더위에 짜증이 난 탓인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주 싸웠다. 내가 빠진 싸움은 보는 재미가 있어 갑갑한 단지에서 몇 안 되는 즐길거리였다. 그 날도 밥을 먹다가 등장하는 고양이들을 피해 풀숲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자꾸 밥을 주냐고. 당신 때문에 우리 단지에 길냥이 들이 더 많아진 거 알아요? 거 보니까 새끼 밴 놈도 보이고. 이러다가 단지가 고양이들로 꽉 차겠어”
“몇 호라고 했지? 아~ 1004호. 1004호, 그러지 마요. 불쌍한 건 알겠는데, 그거 애들 위한 거 아냐. 며칠 전에 보니까 또 한 마리 차에 치여 죽었더만. 밥 주고 그러니까 애들이 자꾸 우리 단지로 모이는데, 그거 애들 잡는 거야”
“여기 1004호 혼자 살아? 고양이 좋으면, 마당 있는 집에 가서 살던가. 주민들이 다 싫다고 하는데, 혼자서 왜 그래요? 사람이 먼저 살아야지. 냄새나고 더러워 죽겠어”
여럿이서 한 사람을 다그치고 있었다. 빼꼼 머리를 내밀고 보니 밥 주는 여자였다. 억울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의 여자가 말했다.
“이 아이들 다 사람이 버린 애들이에요. 우리가 버렸으니까 우리가 책임져야죠. 이 아이들이 뭘 그렇게 피해를 줬다고 그러세요. 사나운 개도 아니고. 목줄 안하고 강아지 산책시키는 아주머니 개가 더 위험한 거 아녀요? 동네 애들이 고양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 아이들이 사료도 챙겨주고 츄르도 주고 그래요. 왜 저만 갖고 그러세요”
“아니, 이 아줌마가. 우리 가을이는 사람 안 물어요. 애가 얼마나 순한데, 어디다 길냥이를 비교해”
목소리의 톤이 점점 높아지자 한 동안 안보이던 제복 입은 남자가 뛰어 왔다.
“아이구. 사모님들 날도 더운데 왜 싸우세요. 진정 좀 하시고”
“아저씨는 대체 뭐 하시는 분이예요? 동대표가 얘기 안해요? 우리 회의 때 다 결론 내렸어요. 저놈들 단지에서 다 몰아내자고”
밥 주는 여자가 놀라서 볼맨 소리를 했다.
“아니, 전 동의한 적 없어요. 여기 단지 분들 중에도 반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그렇게 결정하시는 게 어디 있어요?”
“아저씨, 올 해 가기 전에 저놈들 꼭 해결하세요. 알았죠?”
“무슨 소리예요. 저 아이들을 뭐 죽이기라도 하라는 거예요? 아저씨, 그러시면 안돼요”
제복 입은 사내는 여자들 사이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수컷이 참 변변치 못 했다. 말로 저렇게 물어뜯기고 있는데, 한 마디 대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 사는 암컷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저 밥 주는 여자를 빼고는. 사는 게 더 힘들어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저절로 한 숨이 나왔다.
날이 선선해지니 제복 입은 사내의 순찰이 더 빈번해졌다. 우리를 보기만 하면 작대기를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봐야 늙고 뚱뚱해서 고양이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평소 보다 조금 빠른 몸짓으로 피하고 멀찍이서 비웃듯이 바라봤다. 그는 약이 오르는지 꽥꽥 소리만 질러댔다. 밥을 주는 여자도 밥 주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매일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놓고 갔다. 난 가급적 밥을 주는 장소에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제일 먼저 밥을 먹었다. 그녀는 점점 더 친근함을 표시했고 난 마지못해 등을 만지는 것을 허락했다.
어느새 다른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면 먹는 것을 멈추고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앞발로 입 주위를 닦았다. 요 근래에 들어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잎이 떨어지고 나무가 성기게 되니 땅에는 숨을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속 편하게 나무 위에서 단지 바깥의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편이 좋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단지 안보다 구경할 것이 많았다. 내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을 눈치 챈 사람 중에는 반가워하는 이도 있었다. 단지 밖은 사람보다 빠르고 거칠게 달리는 차가 더 많았다. 비교할 수도 없었다. 차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흘렀다. 차량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살이 너무나 세고 무서워서 건널 마음은 진작에 버린 지 오래였다. 가끔 차의 강을 건너다 강에 제물로 바쳐진 고양이 얘기가 들려오니 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