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하고 무대가 밝아졌다.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한 곳을 비추고 있다. 그곳엔 지저분한 모습의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다. 자는 건가? 아닌 것 같다. 잠을 자는 모양새가 아니다. 한 발을 앞으로 쭉 뻗고 있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다. 뒷발은 바닥에 질질 끌린 모양새로 늘어져 있고 몸통도 비틀려 있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제복 입은 사내가 서 있다. 조명에서 살짝 물러나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흰색 이빨이 가끔 빛났다. 그가 독백을 하듯 얘기했다.
“한 놈씩 처리하기로 한 건 잘한 선택이었어. 누가 봐도 자연스럽잖아? 그냥 추운 날에 동사한 걸로 생각하겠지. 그나저나 저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땅이 얼어서 묻는 것은 힘들 테고. 검은 비닐에 싸서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래. 그 방법이 제일 쉽겠어.”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나의 조명이 꺼질 때 분명 제복 입은 사내를 봤었다. 그리고 저 누워있는 고양이가 있던 자리는 내가 있던 곳이 맞다.
그럼 저 고양이는 누구지? 설마 나라고?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꽤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내 주변으로는 나무도 없고 발 디딜 어떤 것도 없는데, 나의 시선은 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땅과 하늘 사이의 어디쯤이었다.
‘내가 지금 새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건가?’
일단 몸을 끌고 다닌다고 느낄 만큼 무겁던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춥거나 덥거나 하는 느낌 자체가 없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보이는 장면도 신기했다. 마치 내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주위의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유독 내 몸만은 보이지 않았다. 하얗고 탐스럽던 발도 보이지 않았다. 누워있는 고양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니 저절로 다가가졌다. 고양이의 발을 살폈다. 익숙한 모양의 하얀색 발이었다. 내가 매일 핥던 발이니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저건 나의 발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생각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난 나무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다가 제복 입은 남자가 놓고 간 음식을 먹었고. 다시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를 기다리다가 아마 깜빡 잠이 들었을 거야. 그러다 깼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나무 위에서 떨어졌지. 숨도 못 쉴 정도로 아프다가 아~ 그래, 그를 봤지. 그에게 다가가려고 기어 가다가 세상이 깜깜해졌는데, 눈을 떠보니 지금 내가 여기 하늘을 날고 있는 거잖아. 저 누워 있는 고양이를 보면 고통스러운 중에도 어딘가로 가려 했어. 그렇다면 저 고양이는 세상이 깜깜해지기 전의 내가 분명해. 움직이지 않는 저 고양이는 그러면 나의 껍데기인 건가? 이런 걸 죽음이라고 하는 걸까?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어. 예전에 단지 앞에서 차에 깔린 고양이가 움직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지. 다른 고양이들이 안타깝게 죽었다며 혀를 찼고...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난 죽은 게 틀림없어.
죽음을 맞이하면 몸이라는 껍데기와 영혼이 분리된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증명하는 것이고.’
나름대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보통의 고양이가 아님이 분명하다. 너무 똑똑하지 않은가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정리되니 그럼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물음이 생겼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멍하니 공중에 떠 있다가 문득 지금의 내 모습이 궁금해졌다. 불이 켜져 있는 아파트의 어느 집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창 앞쪽에 이르자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난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발과 몸이 보이지 않아 많이 다른 모습일 거라 짐작은 했지만 모양은 예상 밖이었다. 흡사 꼬마들이 들고 다니며 먹던 작은 구름과 닮아 있었다.
‘아~ 내가 보던 하늘의 구름이 나처럼 죽은 고양이의 영혼이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죽어야 그렇게 넓고 높은 구름이 되는 걸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나같이 생긴 하얀 물체가 쑥 하고 솟아올랐다.
‘아~ 또 어떤 고양이가 죽었나보군’
먼저 죽은 선배 고양이의 입장에서 혼란스러울 저 영혼에게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는데, 그 하얀 물체가 하늘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어? 뭐야. 뭘 알고 위로 움직이는 거야?’
거침없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 물체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확신에 찬 듯 오르는 저 영혼을 따라가면 뭔가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했다. 초점이 흐려지는 눈처럼 머릿속도 흐려지고 있었다. 앞서 오르는 영혼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나도 흐려지는 정신에 비례해 오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 영혼마저 죽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정신이 다 흩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오르는 것을 멈춰야 했다. 내려가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조금 속도가 줄었을 뿐 멈출 수 없었다. 좀 더 강력한 동인이 필요했다.
‘난 왜 영혼을 지키고 싶은 거지? 그저 나란 존재가 무화 되는 게 두려워서? 아니야. 더 큰 이유가 있을 거야. 영혼을 지키고 아래로 내려가야만 되는 더 절실한 이유’
‘그래. 그다. 그를 만나서 물어봐야 한다. 집과 가족이 생기면 내 삶은 정말 평온해지는 거냐고. 아! 근데 난 지금 죽었는데. 평온한 삶이라는 건 살아있을 때 가능한 거잖아. 다시, 다시 처음부터.
그래. 그다. 난 그를 만나서 눈과 눈의 통로를 다시 한 번 만들고 싶어. 고양이와 사람이 아닌 영혼과 사람이라면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할지도 몰라. 내가 그에게 느꼈던 따뜻함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어. 영혼의 존재라면 언제까지나 그의 옆에서 평온할 수 있을 거야’
이 순간 내 영혼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밖에 없었다. 나처럼 영혼이 가난한 고양이에게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1004호 여자와 꼬맹이들이 보고 싶기는 해도 내 영혼을 지켜서까지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내 영혼이 사라지면 춥고 배고프고 멸시받던 기억마저 사라질 테니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첫 삶을 시작하는 고양이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영혼을 지키고 싶은 까닭은 그렇게 처음부터 시작해봐야 도돌이표일 것만 같아서다.
비루한 삶을 반복하는 건 정말 끔찍하니까.
그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올라가는 속도가 현저히 줄기 시작하더니 조만간 멈출 수 있었다. 흩어졌던 정신도 다시 돌아왔다. 앞서 올라가던 영혼은 반짝거리는 별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영혼은 소멸되거나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속으로 행운을 빌어줬다.
내려가겠다는 마음을 먹자 내 영혼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가니 내가 살던 단지가 보였다. 아파트의 불빛은 거의 꺼져 있었고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처음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었다. 돌아와 보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죽은 나의 몸이 사라졌다. 추측하건데 제복 입은 남자가 범행의 흔적을 지웠을 것이다. 가짜 친절로 속이고 내게 죽음에 이르는 음식을 먹인 그 사람에 대한 복수심이 불 같이 일었다.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겠지만 기필코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다.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일을 겪었다.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춥지도 배고프지도 졸리지도 않는 영혼이지만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해봐야 했다. 영혼을 띄워 아파트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난간 위에 영혼을 걸쳐놓고 주변을 돌아봤다. 비슷한 아파트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세상은 온통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네. 이 삭막한 곳에서 내가 살았던 거구나.’
참 용케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영혼의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춘 채 휴식에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뭔가가 옆에서 나를 툭 건드렸다. 뭘까 싶어 눈을 떠 보니 나와 똑같이 생긴 영혼이었다.
나처럼 난간 위에 걸터앉은 채였다. 동료를 본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
“안녕. 고양아. 같은 영혼을 보니 반갑네. 넌 죽은 지 얼마나 됐어?”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혹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걸까? 아니면 과묵한 성격인가? 답이 없어서 관심을 거두려는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녕. 고양아. 안타깝게도 난 고양이가 아니야. 사람이야. 고양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얼른 답을 못했네. 미안.”
“사람이라고? 저 밑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음,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영혼끼리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야. 난 그동안 외로웠거든. 외로워서 죽었어. 죽으니 얘기할 수도 있고 좋네.”
“난 늘 혼자였고 외로웠지만 죽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런데 고작 외롭다고 죽는다고?”
“혼자였으니, 외로움의 무서움을 모르는 거지. 함께여서 행복했던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외로움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
“함께여서 행복했던 적이라.. 난 함께였던 적이 없었어.”
“아~ 비극적이군. 너에겐 가족이 없었어? 돌아갈 집은?”
“엄마의 기억은 스치듯 있어.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죽었거든. 집은 없어.”
“사람이 기억하는 함께여서 행복했던 때는 가족과 함께였던 집에서의 어느 날, 어느 때가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행복했던 최초의 추억은 비 오는 날에 집 마루에서 할머니가 강판에 감자를 갈아 부침개를 부쳐주셨을 때야. 비가 와서 날은 을씨년스러운데 할머니가 막 부친 부침개를 찢어서 입에 넣어주셨거든. 우리 강아지 잘 먹네 하시면서. 참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이지”
“너 강아지였어? 사람이라며?”
“아니, 난 사람이지. 사람들은 보통 사랑하는 아이들을 애칭으로 ‘강아지’라고 해”
“그렇게 행복했는데, 지금은 왜 외로운 거야?”
“내가 수 십 년을 살면서 점점 외롭게 된 긴 사연을 다 얘기해줄 수는 없고 결국 내가 사는 것을 멈추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사라졌기 때문이야”
“최후의 보루? 그게 뭔데?”
“가족과 집. 가족에게는 버림받았고 집은 경매로 나라갔지. 완벽히 혼자가 됐을 때 그만 살기로 결심했어.”
“저기 앞에 펼쳐진 아파트들이 보이지? 아파트가 왜 저렇게나 많겠어. 사람들은 살아가려면 꼭 집이 필요하거든. 비싼 집이든 싼 집이든,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내 집이든 빌린 집이든, 모든 사람은 돌아갈 집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어. 그래서 저렇게 집이 많은 거지. 그런데 저 많은 집중에 내가 돌아갈 집이 없어진 거야. 그래서 죽기로 한 거지.”
“난 집이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이라고 생각했거든. 비극적이게도 그 밥 때문에 죽었지만.”
“굶어 죽은 거야?”
“아니. 나도 사연이 길어.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이렇게 누군가와 긴 대화를 이어간 것은 내 삶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람이었던 영혼에게 친근한 마음이 들어 그동안 벌어진 일들과 그에 대한 얘기와 내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얘기했다.
“너도 참 험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구나. 너 같은 고양이를 우리 사람들은 집 없이 길 위에서 산다고 길고양이라고 부르거든. 어떤 사람들은 가엽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경멸하고 미워해.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지. 왜 그런 줄 알아? 집이 없기 때문이야. 너처럼 집 없이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거든. 노숙자라고 하는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노숙자들을 피해 다니고 경멸하지. 더럽고 위험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거든. 집이 없다는 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너한테 만약 집이 있었다면, 너의 삶은 완벽하게 달랐을 거야.”
‘그랬을까? 나에게 집이 있었다면, 난 행복한 고양이가 됐을까? 한 번도 집이 있어본 적이 없으니 상상도 안 되네.’
“네가 그 사람에게 왜 꽂혔는지 짐작되는 게 있어”
“그래? 왜 그런 거 같아? 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
“너는 그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본 거야. 너의 가족이 되어 줄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네게 없는 집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난 사람이랑 살아본 적도 없는데.”
“고양이는 영적인 능력이 있고 감각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라고 해. 넌 아마 본능적으로 알았을 거야. 가족이 된 그 사람과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경비아저씨 때문에 다 물거품이 됐네. 많이 아쉽겠다.”
“아쉽다고? 아니 나는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나고 억울해. 그 제복 입은 남자(이 영혼은 그를 경비라고 했다)에게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 생각뿐이야.”
“복수라고? 하하하. 넌 이미 죽었어. 복수는 살아 있을 때나 꿈꿀 수 있는 거지. 자~ 이제 나는 가야겠다. 어쨌든 너랑 얘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
“하늘로 올라 갈 셈이야?”
“아마도 그래야겠지? 우리 같은 영혼은 모두 위로 올라가던데. 이 곳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서 빨리 떠나고 싶어.”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비밀? 뭔데?”
“저 위로 올라가면, 너의 영혼은 소멸될지 몰라. 영혼마저 죽는 거지. 나도 올라가다 가까스로 돌아왔어.”
“그래? 그거 나쁘지 않은데. 돌아갈 장소가 없어졌는데 추억만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건지 넌 몰라. 추억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무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겠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것도 좋고.”
“난 결심 했어. 올라 갈 거야. 네게 행운이 있길 바랄게. 그럼, 안녕”
사람이었던 그 영혼은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맹렬한 속도로 하늘로 솟구치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곳에서 별이 반짝거렸다. 별이라는 새로운 집을 구해서 부디 영혼의 안식을 얻기를 마음으로 바랐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구름 같은 내 영혼의 속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영혼은 내게 집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남겨놓고 가버렸다. 추억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에는 화가 났다.
별이 보이는 밤인 걸 보면 내가 죽은 지 하루 정도가 지난 것일까? 아니다. 내가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던 그 시간이 잠깐이었을지 며칠이었을지 알 수 없다. 배가 고프지 않으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문득 그 경비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껍데기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웃던 그가 떠올랐다. 그 나쁜 놈은 나 하나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경비에게 눈에 띄게 잘 못한 것이 없음에도 나를 목표로 삼았던 건, 우연히 내가 거기에 있어서가 아닐까? 그 놈은 나를 노린 것이 아니라 아파트의 고양이 모두를 노린 건지도 모른다. 이 단지에는 나 말고도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친밀한 관계의 동료도 아니고 오히려 밥을 두고 경쟁하는 적대적 관계에 가깝지만 그래도 같은 고양이였다. 이유도 모르고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아파트 꼭대기에서 내려와 경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자리에 없었다. 불길했다.
경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자기가 있던 아파트 주변만 맴돌던 사람이었으니까. 화단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키 큰 벚나무가 있는 모퉁이에 그가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를 향해 빠르게 날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의 손에 들려있는 그릇이 보였다. 내게 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놈이 또 고양이를 죽이러 왔구나.’
그가 그릇을 내려놓으며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맙소사, 세 마리의 고양이가 회양목 아래에 숨어 있었다. 처음 보는 고양이들이었다. 한 마리는 컸고 나머지 두 마리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끼였다. 큰 고양이는 아마도 어미인 듯싶었다. 분명 이곳에 살던 고양이는 아닌 듯싶은데, 참 운도 없었다. 오자마자 이런 놈을 만났으니. 이 곳으로 오기 전에도 사는 게 힘들었는지 어미는 비쩍 말라 있었다. 새끼들의 영양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곧 그의 가증스러운 연극이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최대한 따뜻하고 친절한 음성으로 고양이들에게 얘기했다.
“아이고. 불쌍한 것들. 많이 춥고 배고프지? 여기 따뜻하고 맛있는 밥이 있으니까 어여 와서 먹어라.”
그의 일그러진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저, 나쁜 놈. 네 놈이 저 밥에 독을 탄 거지? 밥으로 목숨을 뺏다니 정말 질이 나쁜 놈이야’
고양이들은 다행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움직일 기색이 없자 그는 조바심이 났는지 빨리 와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본인이 그릇 근처에 입을 대고 먹는 시늉까지 했다. 저 놈의 머리통을 그릇에 콱 처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니, 실제로 다가가 머리를 내 몸으로 누르려 했으나 머리를 통과 해버렸다. 살아있는 것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옆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해도 그는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경계의 이유가 자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그릇에서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러고는 커다란 벚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나한테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 난 그가 돌아갔을 거라 확신하고 그릇으로 다가갔었다. 그렇다면, 저 고양이들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이런 제길, 고양이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먼저 앞서고 아기고양이가 뒤뚱뒤뚱 따라갔다. 어떻게든 못 먹게 해야 했다. 어미 고양이에게 돌진을 해보고 아기 고양이의 귀에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고양이들이 그릇 가까이 까지 와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럴 때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좋으련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 차가운 적막뿐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더 못 참겠는지 그릇으로 다가갔다. 지금 기대할 수 있는 건 어미가 본능적으로 음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는 것이었다. 어미라면, 자기보다 새끼를 챙기는 것이 어미의 본능이라면 음식에 독이 있음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가 그릇에 코를 대고 킁킁 거렸다. 어미 고양이가 살짝 멈칫한 것도 같다.
‘알아챈 것일까? 제발...’
바람이 무색하게 어미 고양이는 코를 박고 정신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새끼들도 어미와 합세하기 위해 그릇에 머리를 디밀었다. 새끼들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 중 뒤처진 새끼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이내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눈앞에 뭔가가 흐릿하게 보였다. 밥그릇이었다. 밥그릇 속에 머리를 박은 고양이 두 마리도 보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이상하네. 다시 아픈 것이 느껴져’
아픔을 털어내려고 머리를 흔들고 귀와 주둥이를 훑었는데 눈앞에 귀여운 발이 보였다.
‘뭐지? 이 발은?’
내 의지를 담아 발에 신호를 보내니 발은 그대로 움직였다. 내 발이 맞는 듯했다.
‘난 분명 죽었는데, 내 껍데기는 사라지고 그저 구름 같은 영혼 덩어리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발을 다시 들여다봤다. 분명 전보다는 작아졌지만 하얗고 털이 복실한 발이 몸에 달려 있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꼬리를 당겨 발로 꼬리를 움켜줬다. 노랗고 탐스런 꼬리를 흔들었더니 발랄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몸도 덜덜 떨렸다. 세상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할 정도의 추위가 느껴졌다.
‘예전처럼 예민한 감각이 돌아왔고 발도 있고 몸도 있고 꼬리도 있어. 다시 고양이로 돌아온 건가?’
이해되지 않지만 이건 분명한 실제 상황이었다. 조금 냉정해지기로 했다. 일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영혼으로 있을 때는 보려고 하면 모든 걸 다 볼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고개를 돌려야 시야에 들어왔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가 막 식사를 끝낸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발을 핥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늦었구나.’
나름 애를 썼는데, 결국 막지 못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내가 그 새끼 고양이 몸으로 들어온 거야?’
보이는 내 몸의 일부분으로 유추해보면 돌진했던 새끼 고양이와 많이 닮아있기는 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지? 이렇게 불쑥 남의 몸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난 그저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남의 몸을 차지하게 돼 버렸다. 남을 살리려다 내가 산 꼴이 되었다.
‘아~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이 몸에서 쫓겨나갔을 영혼에게 미안해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몸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어차피 고양이는 독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었을 거야. 오히려 내 덕분에 편안하게 영혼이 된 것일 수도 있어’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기로 했다. 난 다시 살아난 것이고, 다시 살아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일단 저 고양이들이 그릇을 싹 비운 것을 보면 나와 같은 결말을 맞게 될 것은 분명해보였다.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좀 더 일찍 새끼의 몸으로 들어왔더라면 온 힘을 다해 막아섰겠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어미 고양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먹은 음식에 독이 들었어요. 지금이라도 빨리 토해내야해요”
어미는 지 새끼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다시 혀로 털을 골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이러다 둘 다 죽어요. 내가 죽어봐서 알아요.”
어이가 없다는 듯, 어미가 발로 내 머리를 툭 쳤다.
“얘기야. 내가 너를 먼저 챙기지 못한 건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단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먹었네. 그래도 엄마한테 그러면 못써. 다음에는 너부터 먹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줄게.”
하긴 나도 새끼 고양이의 몸을 빌려 다시 살아난 것이 믿기지 않는데, 어미 고양이는 말해 뭐하겠는가. 그냥 토해낸 것이라도 먹고 싶어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제가 독이 든 음식을 먹어봐서 안다고요. 조금 있으면 몸이 굳고 열도 나고 숨도 찰 거예요. 그 때는 이미 늦는다고요.”
새끼가 칭얼거리는 것이 귀찮았는지 어미는 날카롭게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어미와 옥신각신 하고 있는 사이 경비가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이고. 두 놈이 이 많은 걸 싹 비웠네. 맛있었어?”
목소리가 들리니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서 자리를 피했다. 잡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네 개의 눈동자가 경비를 경계하듯 지켜봤다. 난 도망가지 않았다. 속에서부터 적개심이 끓어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나쁜 놈. 내가 너를 기필코 물어뜯어 죽일 테다”
영혼의 대화가 아니니 당연히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파 울고 있는 고양이로 보였는지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내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맛있는 생선에 약도 진하게 말아올 테....”
말이 끝나기 전에 닿을 듯 가까워진 그의 얼굴로 날아올랐다. 앞발의 발톱을 최대한 세우고 발을 쭉 펴서 그의 코를 노렸다.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땅에 사푼히 착지했다.
“악~ 뭐야”
그가 지른 비명에 난 그의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된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말짱했다. 단지 붉게 상기됐을 뿐이고 화가 많이 났을 뿐이었다.
‘아~ 내 몸이 너무 작아졌구나’
타격을 주지 못해서 분했지만 다시 달려들 상황은 아니었다. 그랬다가는 저 놈의 발길질 한방에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노려봤다. 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약은 무슨 개뿔. 너는 내가 오늘 당장에 죽여 버린다.”
그가 한 발을 내딛었고 난 도망가지 않고 버텼다.
그때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무슨 일 있으세요?”
경비원 뒤쪽에 남자가 서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보고 싶던 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뇨. 별 일 아닙니다. 고양이를 쫓고 있었어요.”
“퇴근하고 오는데, 고양이 소리가 크게 들려서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그런데 이 야밤에 고양이는 왜 쫓고 계세요?”
“주민들이 고양이 문제로 민원이 많아요. 아파트에서 좀 내쫓아달라고”
“아저씨. 고양이들 그냥 여기서 살게 하면 안 될까요? 여기 단지에서 쫓겨나가면 어디로 가겠어요.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아저씨 입장도 이해가 가요. 동대표 압박이 심하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동대표 생각에 반대하는 입주자분들이 더 많을 걸요?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세요. 애들한테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선생님도 참 딱하십니다. 댁에서 키우는 앵무새를 여기 고양이가 물고 갔다면서요. 애네 들이 뭐가 이뻐서 편을 들고 그러세요.”
“이뻐서가 아니라 가여워서 그렇죠. 집도 없는 것들이 그나마 여기서라도 겨우 살아가고 있는데”
그의 목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나보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는 안쓰럽다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니, 고작 요 새끼고양이를 내쫓으려고 그러신 거예요?”
경비는 억울하다는 듯 변명을 늘어놨다.
“그게 아니라, 좀 전에 요놈 어미하고 새끼가 한 마리 더 있었어요. 이 놈들이 자꾸 새끼를 낳으니 아파트에 고양이가 넘쳐나는 거라고요.”
그는 경비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고 내게 머리를 숙이며 말을 걸어왔다.
“애기야. 너한테 엄마가 있었구나. 얼른 엄마한테 가야지. 기다리겠다.”
나는 그에게 살금살금 기어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발을 뻗어서 그에게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미안해. 너를 만지면 엄마가 너를 버릴지도 몰라.”
그는 나를 안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건만 그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아저씨. 추운데 그만 들어가시죠. 애도 지 엄마 찾아서 가겠죠.”
“아~ 예. 저도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와 경비는 나에게서 몸을 돌려 아파트로 향했다. 경비는 힐끔힐끔 나를 돌아봤고 난 그 경비를 사라질 때까지 노려봤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좀 전에 달아난 어미와 새끼고양이를 찾아볼까도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내가 겪었던 그 끔찍한 말로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 둘의 끝은 혼자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일까? 아니다. 서로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니 그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끔찍한 추위에 몸이 떨렸다. 일단 찬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아파트 안의 차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 중에 이제 막 돌아왔는지 불이 켜진 차가 보였다. 사람이 내리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차 밑으로 달려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차 밑은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잠깐은 여기서 몸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아파트 생활에 터득한 생존 방법이었다. 영혼으로 있을 때는 추위도 배고픔도 몰랐는데, 다시 살아나니 고단했다.
난 두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한 사람은 나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내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한 사람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고 또 한사람에게는 돌아갈 집(아파트)을 뺏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그를 만나면 나의 삶도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의 다정했던 시선은 보이지 않는 끈이었고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했었다. 그런데 몸이 바뀌면서 끈은 끊어져버렸다.
내 몸이 바뀌면서, 나의 커다랗던 몸은 작아졌고 발톱마저 연약해졌다. 이래서는 경비에게 복수할 길도 요원하다.
다시 살아났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저 나란 존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고양이란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