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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비 Sep 18. 2022

[5번째 월요일]
‘노력’은 길고 ‘행복’은 짧다

오늘 아침 호프가 자신의 두 앞발로 자고 있는 나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내 목에 파묻는다.

호프, 13+ 살 일거라고 추정되는 유기견 출신의 푸들 강아지. 나와 10년째 살고 있다.

산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달자는, ‘응가하고 오면 놀러 갈 거야.’라는 나의 말에 눈치를 보더니, 화장실로 가 똥을 싸고 온다. 그리곤 내 다리를 잡고 긁어 댄다. 산책 가자는 이야기이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이다.


|늙은 반려견들과 나

사람들과 오래 산 강아지들은 주인의 분위기를 닮아 간다. 키우는 사람들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가진 눈빛이 예전과 다르고, 심지어는 얼굴도 사람같이 보인다. 더 재미난 것은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나도 절로 알아 지는 것이다. 이런 게 TV에서 듣던 주인과 반려견 사이의 ‘공감’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나의 달자와 호프는 13살 이상의 나이 든 강아지이다. 우린 참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그들이 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은 않았다. 매번 미용시킨다고 없는 시간 쪼개어서 미용실 데리고 가고, 두 마리를 목욕시키는 날은 큰 행사를 치른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호프의 불안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도 엄청 다녔었지. 그리고 이제, 우리는 종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아야만 한다. 호프는 이빨 하나 남지 않았고, 달자의 눈은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나를 맞아주는 대신, 내가 이름을 불러야 그제서 주인이 온 줄 알 만큼 귀도 어두워졌다. 우리의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이제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재밌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곳에서 아빠를 보았다


얼마 전 호수 공원을 산책 갔을 때, 멀리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어느 낯선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모자를 쓴 왜소한 두 모습. 부모님이셨다. 어느 날 갑자기 집 안이 아닌 밖에서 마주친 그들의 모습은 내가 아는 부모님이 아니었다. 만일 두 분이 내게 손을 흔들지 않으셨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두 분의 어깨가 저렇게 가녀려지셨을까? 더 이상 나를 지켜주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고 대신 내가 보살펴 드려야만 하는 두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주관과 선호가 분명했던 나는, 참 속 섞이는 딸이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조금은 자식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이 나에 대한 기대와 집착을 내려놓고 내가 살아가는 삶을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이 오자, 우리는 현실을 직면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하나의 소중한 관계가 탄생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을 있고, 이제 서로를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잔망스러운 운명은 ‘타임아웃’을 외친다. 부모님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우연한 만남이든 모든 소중한 것들엔 유효기간이 있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깨우침은 항상 한발 늦다.


당신과 나,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한 행복의 순간은 단지 지금 뿐이다. 그리고, 아주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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