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지배하는 공간의 색
좋은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이란 살기 좋은 공간이고, 살기 좋은 공간이란 나에게 있어 편한 공간이다.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형태부터 작은 소품까지 정말 많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요소, ‘색상’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거 같다.
*요하네스 이텐은 말했다.
"색(色)은 힘이고 빛나는 에너지로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Colors are forces, radiant energies that affect us positively or negatively, whether we are aware of it or not.)"
한마디로 색상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풍수에서 색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맥 상통한다. 놀랍지 않은가?
물론 서양의 색상, 그것은 동양의 그것 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다룬다. 하지만, 그 안에 깔리 기본적인 신념은 같은 것이다. 색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에너지체라는 사실.
일본의 유명 설치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한 번 쯤은 본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온통 노란색으로 뒤 덮힌 공간의 검정색 도트 호박이 가장 유명한 작품중 하나이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상하는 평범한 관중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어림, 유치함, 밝음 그리고 활발함… 정신이상? 혹은 제주도의 유채꽃 밭 (우린 한국인이니까.) 황금빛 태양, 바나나, 가벼움 등… 실제로 노란색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선호하는 색이라고 한다.
괴테는 그의 색채론에서 노란색은 순수하고 밝고, 명랑하고 다채로우며 부드러운 자극을 주는 특성을 지닌다고 했다. 반면 간딘스키는 노란색을 광기의 색으로 정의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풍수에서 노란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랑은 ‘황색’이라고 불리우며 4개의 방향의 중앙에 위치한 색으로 토(土)를 상징한다. 노란색은 중국에서는 황제의 도포색으로 사용되었고, 황금빛을 연상케하기 때문에 흔히 재물과 금전운을 상징한다. 해바라기가 ‘돈’을 부르는 꽃이 된 것은 해바라기 자체의 상징성 때문이 아니라 꽃의 ‘색상’때문이다.
그렇다면, 각 문화권에서 색상이 가지는 의미나 상징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음은 풍수상의 오방색을 기준으로 서양과 고대인도인의 색상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비슷한 부분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면, 색상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을 고대에서부터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요하네스 이텐의 말처럼 말이다. 서양문화의 많은 부분이 실상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의 별자리가 12개인것에 반해 동양의 별자리는 3월 28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때문에 오방색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색상을 별자리에 대입하는 것도 동양권과 인도문화권의 닮은 점이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비슷한 심리적 원칙위에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항상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왜 병원 건물은 죄다 흰색인가이다. 물론 요즘엔 병원의 목적이나 전문분야 (ex. 소아과, 산부인과 등)에 따라 예전에 비해 건물의 색채가 다소 다양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에 튀는 화려한 색상은 사실상 본적이 없다. 여전히 흰색이거나 무채색의 채도가 낮고 명도가 높은 색상을 주로 사용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병원 건물이 흰색인 이유! 청결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회적 관습으로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는 흰색의 ‘신성한 힘’ 그것이 주요 원인이지 않을까?
요사이 주거의 인테리어 공사에도 흰색의 사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넓어 보이는 효과도 있기에 아파트가 주된 주거인 한국의 실정에 안타깝지만 가장 들어맞는 색상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지나친 무채색의 향연은 정말 병원처럼 소독되어 아무 감성이라곤 남아 있지 않은 공간처럼 보인다. 흰색의 인테리어가 각광받는 이유도 깨끗함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흰색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 혹은 선입견. 무표정한 공간, 사람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될 거 같은 백색의 공간은 기능성은 높을지 몰라도, 지금 이야기하는 편안하고 좋은 공간을 만들기위한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편안한 공간은 언제나 사람의 감성을 담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풍수상의 색상은 현대 실내디자인에서 사용되는 색상에 비해 종류가 다소 빈약하다는 점이 좀 아쉽다. 기껏해야 적, 황, 청 정도의 색상이 풍수의 의미를 얹혀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고, 오히려 색채학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공간적으론 실효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과감하게 색상을 사용하여 인테리어 디자인을 진행하기에는 우리는 대부분 소심하다. 순간적인 만족은 클지 몰라도, 후폭풍은 정말이지 두렵다. 따라서 밝은 저채도의 색상을 사용하여 무난한 느낌을 연출한 후 포인트 칼라를 사용하거나 혹은 소품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가장 좋은 포인트 칼라는 내가 느끼기에 편안한 컬러가 정답이다. 어떠한 색상이 끌린다는 것은 그 색상이 주는 에너지가 당신에게 모자라거나, 당신이 바라는 에너지를 선택한 색상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이 지쳐 있는 날 서점에 들리면, 유달리 시원한 느낌의 푸른계열이나 녹색계열의 표지를 가진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자신의 일상생활의 특징과 연관지어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컬러를 사용하면 심미성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부분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그것도 가성비 만점의… ^^
내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공간이고, 좋은 공간은 나를 변화시키고, 마침내 생활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간다.
*요하네스 이텐 (Johanness Itten 1888.11.11~1967.03.25) : 스위스 출신의 표현주의 작가이자 이론가. 바우하우스운동의 대표자인 독일의 유명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
1883.05.18~1969.07.05 )와 함께 작업하였으며,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