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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16.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혼란의배달"

온라인 거래에서 숨겨진 진실

오전 9시, 배송 중 보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택배기사: 여보세요? 네, 주소 바꿔 달라고요? 알겠습니다. 새로운 주소는 오늘이나 내일 보내신다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오후 1시경, 받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는 사람: 물건 받아야 하는데 왜 안 오죠?


택배기사: 보낸 사람이 물건을 잘못 보냈다고 주소 바꿔 달라던데요?


받는 사람: 아니에요. 저 그거 꼭 받아야 돼요. 그 사람 사기꾼 같아요. 카페 사이트에서 주문했는데 3일째 연락도 안 되다가 이제야 보내왔어요. 전 입금도 다 했거든요. 제가 책임질게요. 저한테 가져다 주세요. 꼭이요.


택배기사: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보낸 분하고 통화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보낸 분에게 전화를 했다.


택배기사: 받는 분이 꼭 받으셔야 된다던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보낸 분: 아니에요. 그거 물건 잘못 보낸 거라 배송하시면 안 돼요. 제가 통화해볼게요.


택배기사: 그럼 받는 분에게 통화 좀 부탁드려요.


보낸 분: 네.


그렇게 통화를 끊자, 조금 있다가 받는 분에게 문자가 왔다. "보낸 쪽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문자를 받고 해결된 듯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일단 보낸 쪽 말투에서 억양이 조금 이상했기에 이게 말로만 듣던 택배사기인 듯 싶었다. 거기다 받는 쪽에서 사기꾼이라 의심했고, 결정적으로 새로 변경될 주소를 바로 알려주지 않고 오늘이나 내일 알려준다는 것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좀 더 정확한 세부 정보가 필요했기에 받는 분과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택배기사: 고객님,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왜 갑자기 납득하신 거예요?


받는 분: 뭐라고 변명을 하는데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에요. 며칠 동안 연락 안 되다가 지금은 또 연락이 잘 되네요. 그 물건 박스는 큰가요? 자동차 핸들이 맞기는 해요?


택배기사: 박스를 뜯을 수는 없고요. 겉박스만 봤을 때 사이즈는 맞는 것 같아요. 약간 흔들어봐도 핸들인 것 같기는 하네요.


받는 분: 흠. 저 그 물건 받아볼게요. 진위 여부 확인하고 바로 경찰서로 가려구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기사님, 몇 시쯤 오실 수 있으세요?


택배기사: 네, 오후 4시쯤이겠네요.


결국 접선을 하기로 받는 분과 통화를 끝냈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 중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발송인에게는 안 주기로 해놓고 받는 분에게 물건을 주자니 마치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송인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내 섣부른 전화로 인해 발송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잠적하거나 증거인멸을 시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혹여나 내 생각이 틀릴 것을 대비해 우리 팀의 팀장과 실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응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팀장과 실장의 의견이 갈렸다. 팀장은 완벽히 사기라 단정했고, 실장은 사기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쪽이었다. 실장 말로는 발송인이 분명히 주소 변경을 요청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받는 분에게 준다면 훗날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동의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받는 분을 만나기 전에 발송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발송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민하던 찰나, 실장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실장: 그게 정말로 가짜 택배를 보낸 거라면 수취인 입회하에 확인하라. 그리고 그게 사실이면 그때는 경찰서에 가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말에 동의했고, 고객의 집 근처에 도착한 나는 받는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배기사: 고객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물건을 같이 확인할까요?


받는 분: 아니요. 기사님, 그거 그냥 환불받기로 결론 냈어요. 저희 집 앞에 두시거나 하면 제가 반품 처리할게요.


택배기사: 아, 그래요? 그럼 사기는 아닌 거죠? 다행이네요.


받는 분: 네, 아니었습니다. 걱정시켜드려 죄송합니다.


받는 분이 환불 받은 상황에서 더 이상 해야 할 조치는 없었다. 경찰서에 가기 전에 가짜를 확인하고 정의를 부르짖으려 했던 내게는 허탈한 순간이었다.


이게 사기인지 아닌지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12에 물어보고 친구에게 물어보고, 팀장, 실장, 지인에게 이런 사기극이 있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음에도 결말이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 못했다.


물론 받는 분이 발송인에게 경찰서를 가겠다고 언급해서 급하게 환불조치를 했거나, 귀찮게 해서 상황을 종결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변경될 주소지를 그렇게 늦게 알려주는지 의문이었다. 어디로 보내려는 건지 아침부터 오후 7시가 될 때까지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끌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주소지 변경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어야 했는데, 규정을 지키지 않고 고객의 편의만을 생각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끝내 주소지는 받지 못했고, 반송하기로 결정했다. 왜 물건을 잘못 보냈는지, 왜 주소를 바꾸려 했는지, 왜 물건을 늦게 보내고 연락이 안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점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말하며 열변을 토한 사건이었다.


팀장은 내게 사기를 당하지 않게 고객을 도왔기에 내 공을 치하했다. 여러 생각을 하고 분석하고 이야기만 했을 뿐이지만, 그러한 노력 덕에 받는 분이 자신감을 가지고 적절한 조치로 잘 끝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환불한 느낌이 들긴 한다.


이후 저녁에 변경된 주소지를 전산등록해야 하기에 다시 발송인과 통화를 했다. 이때 통화할 때는 또 오전에 느꼈던 느낌과는 다른 매우 친절한 사람의 목소리에 내가 괜히 오버한 건가 싶기도 했다. 억양도 멀쩡한 듯 싶었다. 원래 사기꾼이 더 친절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생사람을 잡았던 건가 싶어 머쓱했다.

이런 저런 나의 추리 속에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고객이 환불 받은 시점에서 방향만큼은 잘 간 것 같다 결론지었다.


끝으로 여러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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