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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12.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비와 시간 사이"

"택배 기사의 하루 두번째"

택배는 연휴가 끼면 물량이 몰아서 온다. 연휴날 상차 터미널이 쉬기 때문에 그렇다. 물건을 올리는 곳에서 일을 하지 않으니 터미널에 재우는 것이다.


택배가 터미널에서 자고 다음날이 되서야 분류가 시작되고 그 다음날 배송지 터미널로 가게된다. 즉  일요일날 쉬기 때문에 월요일에 물량이 별로 없고 화요일에 물량이 많은 이유다. 이로 인해 기사들은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월요일에 아에 쉬어버리거나 오전에 택배배송을 빨리 끝내버리고 오후에 개인업무를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택배배달이란 쉬는날이 있다고 쉬는게 아니고 하루치를 다다음날에 몰아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일에 원래 100개를 했다면 쉬는날 안한걸 포함해서 200개가 된다. 200개 였다면 400개가 되는 식이다. 물론 몰아서 하는게 이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란 한계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힘든게 사실이다.


나는 배송을 형과함께 둘이서 한다. 물론 수익로 반으로 나뉘지만 물량이 400개씩 나오는날에는 도무지 혼자서는 감당이 안된다. 내 주변 동료들만 봐도 혼자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가족들이 도와준다. 물론 수량이 없을때는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가끔 물량이 많을때가 있다. 그때 만약 혼자 배달을 하려 한다면 하루에 배송을 끝낼수가 없다.


이전글에 물량이 없어서 내부적으로 갈등이 심하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동료가 개인사정으로 쉰다거나 하면 나는 두명이서 하기에 배송좀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온다. 안그래도 수량이 부족한 시국에 그러한 요청은 사실 필요한 상태다. 그 요청을 수락했고 하루 수량 433개를 배달했다.


급격하게 증가한 수량에 다른 형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역시나 급작스런 도움 요청은 거절될때가 많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법이기에 그렇다. 아무튼 처음부터 둘이서 하기로 했으니까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확실히 물건이 많으니까 시작부터 버거웠다. 스캔을 찍고 지역별로 물건을 나누기 위해 주변 공간을 확보해야 했고, 좀 더 빨리 출발하기 위해 차량의 공간까지 이용해서 적재를 시작해야 했다. 수량이 별로 없을때는 대충대충 실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혹여나 물건을 다 싣지 못할까봐 꼼꼼히 쌓았다. 하지만 워낙 물건 크기가 제각각 이다보니 균형 맞추기가 쉽지않았다. 만약 지금 쌓을때 잘못 쌓아서 한두개라도 섞이거나 물건이 넘어가서 누락되면 그 지역을 다시 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지역과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고 물건이 넘어지지 않게 쌓았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더 늦게 출발했고, 주변 동료들은 다 할수 있겠냐고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왔지만 이번 지원구역은 한번 해봤던 곳이기에 조금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겨우 물건을 가득싣고 배달을 시작했다. 기존 코스야 원래 하던데로 하면 되니까 문제될건 없었다. 다만 물건을 가득싣다 보니 물건이 운행중에 흔들려서 서로 섞일까봐 속도를 평소보다 낼수 없었다. 혹여나 쓰러지면 다시 재정리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수가 있기에 감속해서 다녔다. 물건이 별로 없으면 여유를 부리면서 할텐데 오늘은 그럴수 없었다. 또한 오후9시 이전까지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사유서를 써야하기 때문에 틈틈이 시간체크를 하면서 해야 했다. 물론 시계를 본다해서 바뀌는건 없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계산을 하고 있어야 뛰어다닐지 걸어다닐지 판단할수 있다.


서두르면 실수하고 실수하면 다시 되돌아가야 하니까 서두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번개같이 흘러가는 시간속에 마음이 조급해 진다. 또한 배송을 하는 중간에 고객에게서 몇시쯤 오느냐고 연락을 받아서 몇시쯤 간다고 하면 시간을 또 맞춰야 한다. 되도록 연락온곳이 급한곳이라는 생각에 코스도 일부 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이 쉽게 되지 않는다.


감속하고 다닌 탓과 애초에 출발 속도가 늦었기에 내 구역의 평소 배달 시간이 예정보다 1시간이 늦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지원받은곳을 하려는 찰나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움직임이 당연히 느려진다. 아침에 강풍이 불더니 오후가 되니 비가 왔다. 강풍이야 차에 타면 모르니까 크게 지장은 없지만 비는 다르다. 고객의 물건이 젖고 내 몸도 젖기때문이며 결정적으로 나는 우산을 쓰기에 그렇다. 거의 대부분은 우의를 입고 배송하지만 난 우산을 쓴다. 이유는 우산을쓰면 고객의 물건이 그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덜 젖으며 나또한 비를 덜 맞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우의를 입고 하다가 온몸이 젖어서 감기에 걸린적이 있다. 물론 우의를 아주 꽁꽁 싸메거나 잘 새지 않는것을 입으면 덜 할테지만 내가 착용했던 것은 거의 비를 맞고 했던거 같다.


손을 타고 몸안으로 흘러 들어오면 내의가 모두 젖고 신발도 다 젖는다. 온몸을 젖은것으로 돌돌 말아서 배송을 하게 되면 체온이 떨어지고 몸이 무거워 진다. 그렇게 한번 고생을 한 이유 같이 일하는 형이 우산을 쓰고 해보자고 해서 한번 해봤다. 그랬더니 물건 정리하는 것은 곤욕이지만 내 몸이 비를 덜 맞아 괜찮았다. 차에 탔을때도 우의를 입었을때면 차가 물바다 였는데 우산을 쓰니 그렇지 않았다.


우산이라는 도구의 발명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또한 우산을 쓰니 고객의 물건도 같이 젖지 않았다. 일전에 우의를 입고 할때 고객의 물건은 거의 비를 맞고 가는걸 봤다. 물론 안에 비닐로 쌓여 있어 괜찮을수도 있지만 분명히 없는것도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 택배 물건도 비를 맞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비닐 포장 되어 있다 하더라도 물속에 빠친거 같은 택배를 전달하면 고객의 마음은 어떨지 고민했다.


물론 나도 우산을 쓰면 택배 정리하는게 당연히 귀찮다. 시간도 없는데 우산까지 쓰며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날씨란 즉흥적으로 바뀌는 요소 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우의와 장화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일이 쉬운일이 아니다. 물량이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야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기에 덜 할수 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우의는 대부분 물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불쾌지수 또한 높아진다.


어째뜬 비가 오는 상태에서 지원을 간 곳의 배송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27개동이라는 아파트 단지의 위엄을 맛볼수 있었다. 동이 워낙 많아서 9개동으로 나눠서 돌렸다. 또한 그곳은 동 표시가 큼직하게 되어 있지 않아 외관상으로 어떤동인지 찾기 힘들며 결정적으로 비까지 오니 더욱 동의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핸드폰 지도만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정확한 단지내 동끼리의 연결된 길을 알수가 없어 그냥 101~109동으로 순서대로 배송했다.


평소 내가 하는 아파트야 물량이 별로 없어서 정리를 대충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동 안에 라인이 1~2호 3,4,5호 식으로 두 라인이 존재했다. 문제는 이 두 라인을 미리 정리해서 놓았다면 조금 수월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더니 갈때마다 정리를 해야만 했다. 예전에 아파트 물량이 많았던 동료가 라인별로 구분하고 매직으로 동과 호수 표시를 미리 하는걸 보고 아침에 바쁜데 저걸 언제하나 하고 본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는 그 행동이 아파트 배송을 할때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101~109, 110~117, 118~127 이렇게 3번에 나눠서 정리를 해서 배송했다. 정리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첫번째가 끝났을때 이 똑같은걸 2번은 더해야 끝날것을 생각하니 곤욕이었다. 물론 일반 번지대를 돌리것과는 천지 차이 이지만, 이정도의 물량은 해본적이 없기에 힘들었던거 같다.


그렇게 비와의 사투를 벌이고 오후9시가 되기전 간신히 배송이 끝났다. 조금이라도 지연되는 일이 발생했다면 자칫 시간을 넘길뻔했다. 초기때 사유서를 쓴 기억이 아직도 생각난다.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 쓰는란이 있는데 거기에 구역을 잘 몰라서 배달미숙이라고 적을수밖에 없었다. 오자마자 신입이 배달구역이 애초에 오래 걸리는 구역이라 쓰는게 변명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진짜로 그 구역이 어려운곳인지 쉬운곳인지 분별이 잘 안간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정말로 잘 모르는 구역이었기에 납득했다. 또한 배송이 늦어서 무언가를 써서 제출하는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배송이 끝나고 그야말로 넉다운 당했다. 택배배달한지 이제 7개월이라 완벽히 적응한줄 알았더니 많은 물량앞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큰 사고 없이 택배배달이 완료되어 다행이었다.


물건만 가져다 주면 끝이라는 택배일도 그 안에 여러과정이 있다는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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