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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19.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저탑vs정탑"

택배 노동자의 현실: 햇빛 아래에서의 고충과 선택

엊그제 비가 한바탕 내리더니 요새는 날씨가 좋다. 바람이 시원하니 택배 배달하기 최상의 날씨로 보인다. 이는 택배 일을 하지 않는 일반인의 기준에서 그렇다. 하지만 직접 배달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사실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날씨가 좋다는 것은 햇빛이 강하다는 뜻이다. 물론 한여름은 아니라서 무덥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햇빛은 뜨겁다.


강렬한 햇살 아래 택배 배달을 하다 보니 문득 '택배 배달하기 좋은 자리는 배송도 빨리 끝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생각은 여러 가지 상념으로 이어졌다.


'배송이 빨리 끝나는 곳은 어디지? -> 신축 아파트가 지어진 신규 지역을 담당해야겠지? -> 그러한 곳에서 배송을 하기 위해서는 저탑으로 들어가야 하나?'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현재 내가 운행하는 차량은 정탑이다. 신축 아파트 주차장에는 들어갈 수 없는 차량이지만, 최근에는 정탑 차량도 개방을 해주기에 배달이 가능한 곳이 많다. 하지만 저탑으로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간다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주차장에서 배송을 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팀장은 저탑 차량을 사용한다. 당연히 신축 아파트 대단지의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저탑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상은 차가 없는 도로이기에 아이들이나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다. 그런 곳에 택배 차량이 활발히 움직인다면 사고가 예견될지도 모른다. 그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차가 없는 도로라는 얘기를 듣고 입주했기에 아파트 측은 그 견해를 지켜야만 하는 입장일 것이다.


그럼에도 개방을 하는 이유는 택배 차량 중에 정탑이 많기 때문이다. 정탑이 많은 이유는 하나라도 물건을 더 싣고 나와야 수익이 나며, 낮은 높이의 차는 기사의 건강에 위험을 가하기 때문이다. 낮은 차량은 허리를 더 굽혀야 하고, 무릎을 꿇게 되면 무게의 하중을 무릎이 받기 때문에 다칠 수 있다.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내 건강을 상해야만 한다면 과연 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택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몸을 갈아넣어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저탑 운행으로 인한 피해는 일반 택배 배달보다 두 배 이상 충격이 가해진다니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


정탑으로만 택배 배달을 하던 내게는 저탑 운행이 신축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차장에서 배송한다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사이트의 글이나 후기들을 읽어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배송하기 좋은 여건이라 할지라도 내 건강이 상한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직 내 구역에는 저탑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못 박은 곳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못 들어오게 차단한 것 같은데, 택배 노조나 입주민들, 그리고 회사 측의 협의하에 개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일단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공원도로에 진입하는 택배차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부터 높이를 높여서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어진 건물이라 방법이 없다.


저탑을 운행하면 수익성도 떨어지고 허리도 아프다. 또한 날이 갈수록 고객이 주문하는 물건은 커지고 적재 효율성은 떨어진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자선사업을 하라 하면 누가 할지 모르겠다. 물론 저탑에 적응해서 배송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저탑을 운행하는 사람과 정탑을 운행하는 사람을 보면 차이가 보인다. 저탑은 항상 무릎을 꿇고 물건을 싣기에 무릎에 부담이 많이 간다. 그걸 몇 년씩이나 했으니 고장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처음에는 신축 아파트를 들어가기 위해 저탑을 타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철회했다. 차라리 안 들어가는 게 내 건강에 도움이 되며, 그 작은 차에 물건을 끼워 맞출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무릎 꿇고 김치나 무거운 물건 같은 걸 옮길 생각하니 벌써부터 몸이 아파온다. 운동을 할 때도 항상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그렇게 많은 트레이너들이 외치던 게 생각난다.


햇빛이 강렬하여 몸이 피곤해지니 자꾸만 쉬운 길을 찾고 싶어하는 본성을 느꼈다.


나만 오늘 힘든가 했더니 다음 날 분류장에 가보니 너도나도 죽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팀장은 저탑이라 그런지 더욱 힘들다고 푸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탑, 정탑을 신경 쓰기 전에는 그냥 힘든가 보다 생각했지만 관련 자료를 읽어서인지 더욱 힘들게 보였다.


결국, 신축 아파트에서는 안전운전만이 답이다. 아이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항상 사주경계를 하며 운전하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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