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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23.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긴급상황"

예기치못한 사고와 택배기사의 일상

내 옆의 동료가 출근을 못했다. 자신의 아이가 다쳤기 때문이라 했다. 이제 세 살 된 아이인데, 미끄럼틀을 아빠와 같이 타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얼마나 큰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해서 정신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동료의 배송 구역을 나눠서 배송하기로 했다. 낯선 구역은 처음 하면 힘들다. 아무리 아파트여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면 뇌가 긴장을 하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연신 두리번거려야 했으며 주소가 맞는지 한 번 더 보게 된다.


내가 맡은 곳은 아파트 세 단지였다. 두 단지는 저번에 한 번 해봐서 별 무리 없었지만, 새로운 곳 한 단지는 고비였다. 이곳은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이 한창이라 계단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13층은 되어 보이는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되지 않는 건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노후로 인한 교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무리다.


다른 택배사들은 물건을 그냥 1층에 두고 갔다. 도저히 가지고 갈 수는 없었나 보다. 나도 그냥 1층에 둘까 하다가 몇 개 안 되서 그냥 다 올려줬다. 다른 형님들 말로는 그냥 통화 후 경비실에 맡기거나 우편함에 꽂으라고 했지만, 혹시나 클레임이 들어오면 번거로울 것 같아서 7층이고 10층이고 다 배송했다.


그렇게 평소 물량보다 그 동료의 물건을 배송하자 100개 정도 더 배송을 했다. 안 그래도 물량이 없는 시국에 나로서는 득이 되는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수익을 얻지 못하는 건 수량 떼기라는 단점이 가져오는 현상인 듯싶었다.


많이 하면 할수록 벌지만, 적게 할수록 돈도 적다. 하는 만큼 가져가지만 가끔 쉬어야 할 때는 한 푼도 못 받는 현실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다.


다음 날이 되자 그 친구는 원래대로 다시 일을 시작했고, 아이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했다. 평소에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쉬엄쉬엄 일하는 친구인데 확실히 뭔가 고민이 많아 보였다.


그러던 중 팀장이 구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구역을 아무래도 좀 빼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팀장의 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셨는데 조만간 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명이서 하다가 혼자서 하려면 당연히 버겁기 때문이다.


회사의 직영 투입으로 계약기사들의 수입이 적어졌고, 그로 인해 점차 사람들이 최적화를 시도하는 것 같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점차 다른 일을 하러 가고, 좋은 구역만 남기고 나머지는 빼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나름대로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빼는 거지만, 좋지 않은 구역을 뺄 때는 고개가 갸웃거렸다. 나도 하기 싫은 지역을 누가 하고 싶어할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물량을 받을 수 있지만, 배송 기피 지역을 주려 한다면 나 또한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다른 팀에서 좋은 지역을 줄 테니 오라고 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어지기에 그렇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더라도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역을 하라 하면 그 사람은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었다.


이미 좋은 지역은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선점해버리는 행동은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반감을 가지게 할 구실이 된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형평성에 맞게 해야 같은 팀으로서 유지가 된다고 본다.


아무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물량 통제에 따른 파업이 시작된 곳도 있다. 물가는 오르고 수수료는 동결이니 사실상 깎인 거나 다름없다. 그러한 상황에 물량까지 줄여버리니 파업을 하는 것이다. 아직 크게 파업이 시작된 건 아니지만, 한두 곳이 시작함으로써 불길처럼 번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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