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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l 18.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수중전"

폭우속 택배전쟁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물이 쏟아진다. 일명 게릴라성 폭우다. 택배 일을 하기 전에는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 지나갔었는데, 택배 배달을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게릴라성 폭우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어느 정도 대비를 해 두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그것은 도로 침수였다. 급격한 폭우가 하천을 범람시키고 지하차도를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비가 적당히 와야 커버가 되는 듯한데, 급격한 폭우는 그런 방비가 무색하리만큼 퍼붓기 때문에 타격이 큰 듯하다.


급격한 폭우로 직영사원들의 오토바이 배송이 중단되고 계약팀원들에게 그 물량이 분배되었다. 처음에는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비에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후 1시쯤이면 그친다는 예보에 배송 수량이 적어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시점이었기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물론 비가 많이 와서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라 배송하기가 어려운 지역이나 난코스 지역은 내일 날씨가 좀 나아지면 그때 배송하라고 오더가 내려왔다. 물론 당연한 말이기에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되면 무리해서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물건을 싣고 배송을 하기 위해 분류장에서 나왔다. 그런데 빗발은 여전히 강력했으며 홍수라고 할 만큼 비가 오고 있었다. 지하차도를 지나오는데 물이 제법 차기 시작해서 이렇게 비가 계속 온다면 돌아오는 길에는 침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높이가 제법 있었고 차들이 물살을 가르며 지하차도를 빠져나왔다.


나 또한 그 길을 지나면서 혹시 이 길을 좀 있다가 다시 지나간다면 우회해서 다른 곳으로 가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형을 픽업한 후 그 잠길 것 같던 지하차도를 피해 다른 곳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우회한 도로가 엄청나게 막히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늘어진 우회전 차선 도로에는 진입하기 1km 이전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도 우회전을 하기 위해 어거지로 비상등을 켜가며 진입했다. 하지만 설 연휴 귀성길같이 늘어난 행렬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방에서 온 뒤늦은 차들이 앞쪽으로 끼어들기를 마구 시전해 대기시간은 점차 길어져만 갔다. 그렇게 30~40여 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앞쪽 행렬이 전혀 전진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씩 전진하는 것은 기다림에 지쳐 앞차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당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 나는 우회했던 그 길마저 다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이전에 침수될 것 같았던 지하차도를 향해 다시 가게 되었다. 내가 가던 길에서 반대쪽 차선이 차는 많아도 우리가 있는 쪽처럼 아예 멈춰버린 정도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쪽 길로 가기로 선회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침수될 것으로 여겼던 지하차도는 멀쩡했으며 도로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1시간 이상 대기하고 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전 9시를 넘겼고, 점차 도로 상황이 나아졌다. 평소보다 대략 1시간 반 이상을 도로에서 날려 보낸 상황이라 더욱 신중을 기해 배달을 했다.


그렇게 배달을 하던 중 뉴스 속보가 떴다. 하천이 범람하여 그곳 주민들이 초등학교, 고등학교로 대피령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은 내가 우회해서 가려고 했던 길이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길이 엄청나게 막혔던 것이다. 어거지로 무한정 기다리면서 그곳을 뚫고 가려 했다면 오늘의 배송 시간은 더욱 오래 걸렸을 터였다.


순간의 판단이 오늘 하루의 배송 시간을 몇 시간씩 차이나게 결정할 상황이다. 주변 정세를 확인하고 결심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그때만 해도 괜히 우회를 선택해서 시간만 버렸다며 투덜댔는데, 돌아보니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읽었던 책에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위기란 좋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라는 것에 대해 깨우친 순간이었다.


그래도 오후 2시쯤 되니 빗발이 조금 약해져서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오전과 같이 억수로 비가 많이 오면 배송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가끔 집에서 비가 많이 올 때 짜장면을 시켜 먹는데, 그때마다 배달하시는 분들은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건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귀찮다는 이유로 배달을 시키는 거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이 행하는 일은 상당히 위험한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찌되었든 오늘의 배송은 무사히 잘 끝냈다.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택배 배달이기에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에게서 걱정 어린 연락을 많이 받았다. 다행히 오전에만 아수라장이었지 오후에는 조용했다. 장마철이라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


빗속의 택배 배달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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