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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Aug 23. 2024

택배업의 현실

과도한 경쟁 속의 고충과 공공성의 필요성

최근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진 영향 때문인지 동료들의 상가집 방문 사례가 늘어났다. 그들의 이탈로 인해 그 구역들을 대신 맡아야만 했다. 폭염으로 배달량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배달 수량이 곧 수익이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에 물량을 인계받았을 때만 해도 생각보다 많지 않은 수량이라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폭염으로 인해 몸이 느려졌고, 급작스러운 호우로 우의를 입고 정비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게다가 지원 나간 곳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지도가 아무리 잘 되어 있어도,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어디서나 처음은 어렵다.


신축 아파트 대단지는 겉보기에는 좋아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에어컨이 나와 시원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신축 대단지가 좋다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신축 대단지의 가장 큰 단점은 동호수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구형 아파트처럼 짝수 단위로 동호수가 구분되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신축 아파트는 동호수가 묶여 있거나 섞여 있어 물건을 분류할 때마다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또한, 라인이 다른 동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거나, 지하로만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몇 번 가다 보면 익숙해지겠지만, 지원을 나와 처음 경험한 내게 이곳은 구형 아파트보다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곳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아파트 평형수가 넓어 동과 동 사이의 간격이 멀었다. 두 명이서 배달할 때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도보 배달이 너무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달을 마무리하려던 찰나, 고객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동 몇 호에 사는 사람인데, 왜 택배가 이렇게 늦게 오냐며 따졌다.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반찬이라는데, 이렇게 더운 날 이 시간에 가져다주면 물건이 상하지 않겠냐며 화를 냈다. 나는 고객님의 물건만을 위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후순위로 둘 수 없으며, 모두가 빨리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객은 내 말을 무시하고, 다른 택배사는 모두 빨리 오는데 왜 너희만 늦냐며 질책했다. 신선식품은 전담팀을 따로 구성해 배송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우리 택배사에는 그런 팀이 없고, 배송 규정에 따라 신선식품은 당일 배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더 빠르게 받고 싶으시면 쿠팡 로켓배송을 이용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고객은 여전히 불만을 토로하며, 늦게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몹시 불만인 듯했다. 나는 오늘 지원을 나와서 이 지역을 늦게 돌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며, 더 빨리 받고 싶으시면 이곳 전담 기사님과 통화를 하시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불만이 가라앉지 않았고, 통화를 끝내려 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곳에 배달이 남아 있어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으니 통화를 종료하겠다고 말하며 죄송하다고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통화가 클레임으로 이어지면 계속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 반사적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택배 일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배달이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었기에 그 감정을 털어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고객의 입장에서 분명 분노가 쌓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물건이 빨리 도착하는 시대가 되어버리다 보니 이제 그러한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택배 규정이 72시간으로 되어 있어도 고객은 그런 사실을 모르며, 이제는 빠른 배송에 적응되었으므로 규정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빠른 배송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빨리 가져다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의 욕심으로 인해 배송기사들이 고통받고 있다. 나도 소비자 입장에서 물건이 빨리 오기를 원한다. 하지만 무더위에 반찬이 상할까 걱정하는 대신, 그 무더위 속에서 고객의 물건을 위해 배송하는 기사들의 입장도 한 번쯤은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 곧 CJ대한통운에서 주 7일 근무를 시행한다고 하는데, 잘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그들도 생존하기 위한 전략임이 틀림없다. 물론 자영업이라는 것이 쉬는 날도 없이 하는 개념이지만, 이번 결정은 너무한 것 같다. 휴일 물량을 외주 인력을 써서 해결하려 하면 기사들의 수익 악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발이 예상된다. 하지만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면 그들도 동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얼마나 편하게 살고 싶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처럼, 자본주의 체제가 단순히 돈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관리하는 체제라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편의만을 위한 독주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철도, 공항, 수자원, 전력과 마찬가지로, 이제 택배도 공적인 요소로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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