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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Aug 28. 2024

직영 이탈 공백 메꾸기

무더위 속 실수와 책임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닥친 여름, 직영사원들이 갑작스레 이탈하자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사고와 휴가로 인해 남겨진 빈자리는 물량을 두 배로 늘렸고, 수익이 저조했던 김기사에게는 이 상황이 오히려 기회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회사의 결정이 옳았는지 그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 박팀장이 말했다. 


"이번에 빠진 구역을 우리가 맡아야 해. 너무 많으면 신선식품은 내일 배송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도록."


김기사는 묵묵히 대답했다. 

"네... (하지만 내일로 미루면 고객들 항의가 쏟아지겠지...)" 


그는 속으로 걱정이 밀려왔다. 고객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기다려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박팀장의 조언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김기사는 결국 모든 물량을 오늘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두 배로 늘어난 물량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동료들이 먼저 출발할 때도 김기사는 묵묵히 물건을 코스별로 정리했다. 


그때, 동료 박기사가 먼저 정리를 끝내고 나가며 물었다. 


"수량 몇 개예요?" 


"432개요." 


"많네요. 저는 120개는 내일로 미뤘어요."


"그래도 300개 넘네요."


 "300개도 많지. 수고하세요." 


박기사를 보며 김기사도 신선식품을 제외하고 배송할까 고민했다. 너무 무리하면 몸이 견디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한 바, 그는 다시 정리에 집중했다.


잠시 후, 박팀장이 나가면서 물었다. 


"몇 개나 되나?"


"432개요."


박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우, 나는 480개야. 그래도 시간이 안될 것 같아 20개는 빼놨어."


김기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만 고생하자고. 수고해." 


"네, 수고하세요." 


팀장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되었지만, 그는 베테랑이니 잘 해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점점 야위어 가는 그의 모습에 건강을 잃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김기사는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출발을 준비했다. 물건을 다 싣고, 김기사는 배달을 시작했다. 

"배송 출발" 메시지가 고객들에게 전해지고, 그에 대한 회신이 이어졌다. 무인택배보관함 배송요청, 공구함 배송요청, 문앞 배송 요청 등. 늘어난 수량만큼 전화통화도 많아졌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배송할 텐데, 못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구나..." 김기사는 혼잣말을 했지만, 자신이 고객이었어도 언제 오는지 궁금해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배달을 시작했다.


늘 다니던 구역이라 지리적 부담은 없었지만, 운이 나쁘게도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은 택배 일이 더 힘들다. 우의를 입어도 안은 습하고,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우의 안쪽이 끓는 듯 더웠다. 고객의 물건을 비에 맞출 수 없기에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고, 적재함에서 물건을 정리하며 피로감은 배가 되었다. 


비와 폭염, 많아진 물량, 고객의 전화, 운전,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까지 주시하며 긴장을 놓지 않고 배달을 이어갔다. 며칠 전 뉴스에서 배달기사가 신호 위반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터라, 그 역시 자신이 그럴 수 있음을 유념하며 더욱 조심했다. 


엊그제 읽은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내 입에서 나온 말에서 시작된다." 그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을 머리에 새기며 자신을 다잡았다. 


택배 일이 싫진 않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영업 압박이나 수직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물건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간섭받지 않고, 일을 내 방식대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평소보다 많은 물량에 더 많은 지역을 오가야만 했고. 비와 폭염으로 인해 지연도 되고 많은 통화도 하면서 결국 저녁8시가 되서야 배송이 끝났다. 물론 혼자서 배송했다면 절대로 그 시간에도 끝낼수 없었다. 처음부터 형과 함께 일하기에 배송하려고 마음먹은 일이었다.  


김기사는 그렇게 다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김기사 : 여보세요? 


고객: 물건 못받았어요. (퉁명한 목소리의 고객. 물건이 없다고 확신해 찬듯한 목소리였다.) 


김기사 : 아 제가 배송완료한 사진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확인후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객 : 그래요? 알겠어요(조금은 화가 풀린듯한 목소리) 


김기사는 재빨리 배송사진을 확인했다. 확인결과 옆동으로 잘못 놓은것이었다. 실수를 한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현재의 상황부터 해결하는게 급선무였다. 이미 배송을 끝내고 온시점이라 거리가 너무 멀었다.


김기사는 고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바로 옆동이니 고객님이 직접 가지러 가시는게 어떻겠냐며 부탁했다. 고객은 처음에는 제대로 배송하지 못했다며 나무랐지만 바로 옆동이니 직접 찾으러 가는것에 수긍했다. 고객이 잘 찾을수 있도록 배송사진을 보내줬다. 잘찾았는지 답신을 기다렸지만 워낙 시크한 고객성향 탓인지 회신은 없었다. 그래도 매번 배송사진을 찍어두었기에 망정이지 이번에도 사진이 활약을 했다. 사진이 없었으면 어디다 잘못두었는지도 모른채 해당 아파트를 휘저으며 다녔어야 할터였다. 사람인지라 실수할수 있고 많은 물량에 정신이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기사는 모든 물량을 무사히 배송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실수로 인한 긴장감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경험이 또 다른 성장의 기회가 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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