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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Sep 01. 2024

폭염 속의 택배 일상과 협력의 가치

협력과 효율 속에서 얻은 깨달음

여름휴가철이 끝나가고 있다. 날씨는 여전히 덥지만 아침이나 저녁에는 선선해지기도 한다. 휴가철이 끝나가고 이제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조금씩 추석 명절 선물세트가 택배로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점차 추석이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배 전체 물량은 감소하고 있다. 어쩌면 경기 둔화로 인한 소비 감소 탓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매체나 TV 뉴스를 보면 자영업자는 온라인 소비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의 소비가 줄었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택배 배송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온라인 쪽도 소비가 감소한 것 같다. 이런 것을 보면 마냥 소비자 탓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영화 빅쇼트에서 나온 내용처럼 우리나라도 아파트에 거품이 낀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 영화에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의해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주었고, 그들이 그 돈으로 아파트를 구매했지만, 결국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채무자로 전락하자 연쇄 부도 현상이 일어났다. 그 결과 거품이 터지며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와는 시기만 다를 뿐, 그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무분별한 아파트 건설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집값 상승을 예측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샀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고, 실질적으로 돈을 번 사람이 있기에 허황된 욕심이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동료가 이 같은 현실에 직면하여 몸부림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결혼도 했고, 집도 샀고, 차도 샀으며,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가 처한 현실은 냉혹하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고용했지만, 시급이 너무 비싸서 결국 본인의 업무량을 줄이고 자신이 직접 아이를 돌보러 집에 가야만 했다. 와이프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갔지만, 결국 누군가는 아이를 돌봐야만 한다. 개인 사업자인 택배 기사는 회사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인근 지역을 배송하는 내가 있기에 그의 업무량을 줄여주고자 그의 구역을 일부 받아서 대신 배송해주고 있다. 사실 내게 크게 이점이 나는 지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지역의 물량이 소폭 증가하자 나는 팀 내에서도 5순위 안에 드는 배달 기사가 되었다. 그의 그러한 사정 덕분에 상대적으로 내가 이익을 보는 형국이지만, 그는 고마워한다.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구역에서도 토요일이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때는 구역을 더 맡아달라고 부탁받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다 오늘, 아파트 4단지를 더 배송하게 되었다. 점심 전까지 일을 마치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어디 가야 하는데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맡긴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구역을 내게 인계하면 그의 수익이 많이 줄어들 텐데도 그는 자신의 사정을 우선시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이 주나 했지만, 배송을 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파트 4단지면 물량이 상당히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80개가 안 되었다. 한곳에서 20개씩 잡고 동이 10개 동으로 계산하면 겨우 한 동에 1~2개 배달을 한다. 즉, 너무 효율이 안 나오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료에게 현재의 택배 배송 물량은 차라리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대비 효율이 낮다는 것은 다른 일을 물색하게 하고, 그 일이 차라리 아이를 돌보는 판단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남자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어떤 지원도 없이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쨌든, 그와 나의 상호 간 협력으로 물량이 적은 내게는 수익을, 그에게는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시간을 서로 주고 있다. 상생하는 관계다. 하지만 최근 신축 단지 건설 지역에서 계속 그 지역으로 오라는 오퍼가 공식적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 돌고 있다. 나는 그쪽이 집에서 가까워서 가게 되면 좋지만, 그와의 협력 관계는 끝이 날 것만 같다. 그를 위해 내가 일하는 것은 아니니, 그런 협력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정말 시간이 안 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도와줄 생각은 있다. 그렇지만 인접 지역이 아니기에 정말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해주기는 힘들 듯하다.


4단지를 배송해 주며 느낀 점은 신축 아파트가 확실히 좋기는 하다는 점이었다. 깨끗하고 엘리베이터도 빠르고 음악도 나와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1~2개를 배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효율이 떨어졌다. 차라리 구형 아파트는 동과 동 사이가 가깝고 층수가 낮기 때문에 금방 돌리지만, 층이 높고 동과의 거리가 먼 신축 아파트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지하는 지상보다 확실히 더 더웠다. 햇빛이 없는데도 엄청난 열기가 지상의 폭염과도 비슷한 지경이었다. 이러니 지하에 놔둔 전기차가 터질 듯도 하겠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하에 전기차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전기차라고 차별하냐고 나도 같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했지만, 지하의 뜨거운 열기를 마주하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며 동의하게 되었다.


오늘도 폭염 속에서 물량 감소와 동료와의 협업, 그리고 신축 단지 배송을 통해 많은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과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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