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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Oct 20. 2024

갈등과 선택

대화

타지역으로의 이동이 무산되자 큰 실망감과 무력감이 몰려왔다. 그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나를 기를 쓰고 막는 모습을 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이 그렇게 좋은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나는 계속 힘든 지역에서 배송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잘 인사하고, 부탁도 가능하면 들어주며, 다 같이 상생하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옆 동료와도 인사를 나누기 싫었고, 그냥 내 일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도 남 신경 안 쓰고 내 것만 챙기는 게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인가 싶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은 다 자기들이 맡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비효율적인 곳만 맡는 게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나를 막으려는 팀장에 대한 원망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결국엔 보내지 못한 실장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다. 실장은 나를 보내려 노력했지만, 방해받는 모습을 직접 본 터라 팀장보다는 덜 실망스러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팀장에 대한 원망이 커져서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팀장이 술 한잔 하자며 대화를 제안했다. 그래서 결국 팀장과 저녁을 함께했다.


팀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실장이 모든 이들의 분노를 사게 할 만큼 일을 엉망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나를 이용해 본인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장은 자신의 업무에 충실하지 않으며 출퇴근 시간도 마음대로이고, 우리 배송 기사들의 고충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함부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팀장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자기 마음대로 일처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부에서 팀장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한 상황이었는데, 실장이 내 이동을 자기 맘대로 추진했으며 모두를 무시하고 진행한 절차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었다고 말했다. 또한 만약 이 상황에서 내가 실장의 말만 믿고 막무가내로 타 지역으로 이동한다면, 경력 순으로 이동하던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며 너도 나도 가려는 상황이 등장하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택배 배송도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장과 작당하고 모두의 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에 배송 생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팀장의 주장이었다.


그의 그러한 주장에 내심 수긍은 했지만 그래도 내 의견을 피력해야 했다. 내 배송지가 어려운 지역이 많은 것은 팀장님도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며 언덕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는데 누구하나 이제 그만 자리를 조금씩 양보해서 공간을 확보해주려는 노력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왜 신의를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으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구역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무언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대로 이 구역을 계속 배송하는 것은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어필을 했다.


그러자 팀장도 그 의견에 동조를 했다. 그렇다면 공식적으로 타지역으로의 이동이 필요할 때 적극 추천하겠다고 어필했다. 이렇게 실장과의 대화로만 이동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이 하고 싶으면 차라리 자신에게 말을 할 것을 요청을 했고, 일단 절차를 무시하고 실장과 둘이 합작한 것은 맞기에 인정을 했다.


실장이 분명 관리자이지만 이곳에서는 혼자 일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수긍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팀장은 실장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이야기해주는 것은 싫었지만, 아무래도 팀장이 지금 진심을 다해 나를 설득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팀장조차도 나를 이용해서 현재의 팀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사실은 약간 경계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팀장이 못 가게 여기저기 전화 돌려서 못 가게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장은 그저 날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주려 했다는 게 내 입장에서 본 시선이기에 그렇다. 어쩌면 그들의 권력 다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실장은 날 이동시켜 주지 못했고 나는 다시 이곳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역으로 팀장님이 혹시 그 지역으로 가고 싶어서 나를 못 가게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실장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팀장은 "아니다. 그 지역으로 이동을 내가 하려 했다면 3년 전에 벌써 갔을 것이며, 현재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이미 이 지역에서 만족할 만한 배송 구역을 받았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팀장의 말대로라면 실장은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며,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요즘 나를 이용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실장에 대한 원망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너무 한쪽 말만 듣고 쉽게 마음을 돌린 것처럼 여길 수 있지만 사실은 팀장의 말이 더 진실인 듯했다. 팀장은 현장에서 같이 일하며, 그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지 알기에 그렇게 생각되었다. 옆 사람의 민원이 터지면 내 일처럼 들어주고 해결해주려 노력하는 모습, 자신도 바쁜데 남까지 챙기는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 반면 실장은 나를 채용만 했을 뿐 평소에는 연락도 없으며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지냈기 때문에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되자 결론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곧 상부에서 사람이 내려오면, 팀장이 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거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생활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어떤 설명을 할 때 강력한 주장보다는 자료를 바탕으로 대처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말을 한 이유는 실장이 팀장을 그런 사람으로 내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상부에도 그렇게 이야기할 것처럼 느껴졌고, 팀장 같은 어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외에도 현재의 시스템, 구역 설정, 클레임 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과음을 많이 한 탓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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