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새벽 6시 분류장에 도착했다. 팀장이 마중 나와 있는 모습에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차를 정박 후 내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팀장에게 물었더니 오늘 동료 형님 한 분이 차 배터리가 방전돼서 늦게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나보고 대신 안에 들어가서 차를 주차시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차 댈 곳이 없어서 주차장 입구 언덕에 주차를 한다. 그 형님이 늦게 오기 때문에 내 자리에 차를 주차할 생각인 것이다. 가끔 분류장 안으로 들어가는 차 중에 늦게 오는 사람이 있으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동안은 날씨가 따뜻해서 별일 없었지만 새벽에는 추위 때문에 다시 차량들의 방전 상태가 잇따르는 것 같았다.
언덕에서 물건을 싣는 것과 평지에서 물건을 싣는 것은 차이가 크다. 차에 오르고 내리기도 힘들고 물건을 적재할 때도 기울기 때문에 더 꼼꼼히 실어야만 한다. 일이 1.5배 정도 힘들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평지에서 물건을 싣다 보니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바뀐 자리로 인해 물건을 놓는 위치도 약간 바뀌다 보니 조금 헤매게 되었다. 마치 요리사들이 자기 주방이 아니면 헤매듯이 작은 차이로 인해 밸런스가 무너지는 듯 싶었다.
바깥쪽에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안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다 들려왔다. 형님들의 불평하는 소리며 팀장의 이것저것 지시하는 소리가 들리며 평소에는 전혀 듣지 않고 일하다가 듣다 보니 약간 정신없는 듯 여겨졌다. 한편으로는 정보도 얻고 여러 이야기를 들으니 회사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깥쪽에 있을 때는 가끔 모르는 척하며 섞여오는 혼합 적재를 외면했었으나 안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언덕이 아니라서 물건을 적재하는 일은 수월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언덕에서 해야만 하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또다시 내가 타지역으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결정되어 흩어진 일이니 더 이상 개념치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328개라는 수량이 나왔고, 과일이나 아이스박스 같이 부피 큰 물건이 많이 나오니 차량은 거의 꽉꽉 채우며 싣게 되었다. 빨리 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조금 버리고 물건이 쓰러지지 않고 분류가 잘 되도록 신경 쓰며 실었다. 그리고 평소 같은 배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침의 평온했던 느낌은 점심때가 지나 돌연 깨지게 되었다. 배송 완료는 되어 있으나 물건을 받지 못했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당장 저장해 둔 배송 완료 사진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혹시나 다른 아파트에 오배송을 했거나 어딘가에 버려 두고 배송하지 않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30여 분간 그 사진을 찾기 위해 이 잡듯이 핸드폰을 검색했으나 사진이 없었다. 단 한 개의 배송 사진도 놓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혹시나 그것만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재수가 참 없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최악의 순간까지 대비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같이 일하는 형이 아직 배송하지 않은 아파트에 물건이 섞여 있는 게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늘 물건을 실을 때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적재를 해서 내가 실수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택배 차량에 실려 있는 물건을 뒤져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물건을 펼쳐둘 공간도 없었다.
우선 남은 물건을 배송하고 이후에 물건이 좀 빠지면 찾아보자고 결론을 내어 고객에게도 이와 같은 전후 사정을 설명 후 배송을 재개했다. 온종일 머릿속에 "그 물건은 어디 갔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자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빨리 배송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물건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자 운전이 급해졌다. 동승한 형에게도 혹시나 내가 말을 감정적으로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심호흡을 하며 일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물건이 빠지고 수색하니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깊은 안도감과 함께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적재를 할 때 갑작스럽게 자리 이동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 더욱 신경 써서 물건을 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배송할 물건은 많고 시간은 없을 때 허둥대게 된다. 1년 전에나 느끼던 감정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