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이제 다시 잠잠한 기운이 돌아왔다. 더 큰 폭풍이 오기 전의 고요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분위기는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저마다의 욕심과 불만이 판을 치는 이곳에서 공정함을 외친다는 것은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팀장과의 자리 교체가 이루어진 후, 나는 분류장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반대로 팀장은 분류장 입구 언덕에서 물건을 싣는 위치가 되었다. 내가 있던 그곳은 가장 빨리 나갈 수 있는 자리이지만, 언덕이라는 점과 거의 바깥에 가까운 위치라서 올겨울 힘든 자리이기도 하다.
팀장은 자신이 그 위치에서 자리 조정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만 변경될 수 있다고 했다. 1년째 사람들이 변하기를 기다렸지만, 바뀌지 않는 상황을 보다 못해 팀장이 직접 나선 상황이었다. 반대로 안으로 들어가게 된 나는 상대적으로 물건을 싣는 부담이 줄었으며, 동료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진 상태이다.
조금씩 당기기만 하면 자리가 난다지만, 내가 볼 때 그렇게 하려면 차들이 바짝 붙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물론 다 같이 합심한다면 충분히 자리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저마다 빈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그것을 줄이고자 한다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팀장이 개선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이상, 따라주는 게 순리라 생각하고 그의 제안에 순응했다. 그의 말처럼 여러 사람이 움직일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나로서는 사소한 변화라도 있어야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시점이었다.
그렇다. 이 팀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물론 지역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균등하게 구역을 나눌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는 전제에서다.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은 억지로 부당한 것을 참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며 다들 힘들지만 참고 하는 것이라면 이해해 보려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비교를 해보면 차이가 많이 나며, 오래된 사람들이 지역을 선점하여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랜 시간 견뎌온 결과로 보상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신입이나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부당한 경우를 당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수수료를 올려 달라고 집회를 할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지역별 균등화를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단합될 수 있다. 개인화가 된 곳에서 과연 한마음으로 투쟁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완전한 균등화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형평성은 맞아야 한다.
이미 나와 얼마 차이가 안 나는 사람은 이직을 준비 중이다. 몸은 몸대로 상하고 돈은 돈대로 벌지 못하니 다른 방안을 생각 중인 것이다. 고여 있는 물은 흘러갈 줄 모르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이기주의가 팀을 결속시키지 못하고 있다.
저마다 누군가 그만두면 그 자리로 옮겨야지라며 버티고 있지만, 좋은 곳을 선점한 사람들은 쉽게 그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다. 암암리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들게 얻은 지역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내어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이끌어 낼 것이라 믿었지만, 요즘에는 그마저도 흔들린다. 물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과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챙기면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지난번의 구역 재조정 실패로 내 옆 동료와의 관계에 살짝 금이 갔다. 그도 섭섭함을 느끼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의 생각은 다른 법이고, 길이 어긋났다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제 곧 신차가 나온다. 그동안 회사에서 구형차를 타고 있었지만, 환경 문제로 신형 가스차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료는 비싸지지만, 환경을 위해 정부에서 강제한 것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신형차의 이슈는 차량의 적재함이 정탑이냐 저탑이냐로 나뉜다.
저탑은 대부분의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어 신축 단지 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정탑을 버리고 저탑으로 신청을 많이 했다. 신축 단지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바꾸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다. 물론 나는 정탑이다. 아직까지도 저탑을 타서 허리를 굽히며 일한다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면 눈과 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점은 좋지만 지상에도 이미 택배 차량이 들어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어 거리가 멀지도 않다. 물론 일부 아파트에서는 저탑으로 들어오게끔 강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을 가진 아파트는 배송을 안 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온전히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며 택배기사들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아파트 관리자는 뻔할 뻔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굳이 저탑 차량으로 바꾸면서까지 무리해서 들어갈 생각은 없다. 아파트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다 보면 나만 더 피곤해질 뿐이다. 결국, 나의 작업 방식과 건강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송을 단순한 업무로만 보지 않기에, 나도 나의 방식대로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의 선택과 원칙을 지키며 일해나가고, 필요할 때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