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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Nov 03. 2024

물량폭탄이 미치는 영향

3일간의 대장정

그날도 평소처럼 똑같은 하루가 될 거라 생각하며 출근했다. 하지만 차량을 정차하고 내리는 순간, 그런 예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물량이 도착해 있었다. 그 물량은 전부 내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물량 폭주에 당황스러웠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사람을 구해 물량을 나눠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물량이 적은 시기에는 많으면 좋을 수 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크기가 라면 박스보다 큰 아이스박스가 500개 정도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차량에 한 번에 실을 수 없는 양이라 두 번에 나눠 배송해야 했다. 급히 사람을 찾아 두 명에게 아파트 지역을 맡겼지만 여전히 400개 이상의 물량이 남았다. 이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중노동이었고, 언덕 위에서 물건을 옮기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물량을 차량에 가득 실었다. 2차 물량을 정리하던 중 첫 사고가 발생했다. 주차장에 들어온 고객이 내가 한쪽에 둔 물건을 밟고 지나간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다는 생각에 빠르게 파손 스캔을 찍고 재포장을 진행했다. 수취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부 내용물을 확인하니, 다행히 중요한 장어는 작은 통에 따로 담겨 무사했다. 이후 고객과는 물건을 받고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첫 배송지는 아파트였다. 아파트 지역은 물량이 많지 않으니 여유 있게 시작하려 했고, 실제로도 큰 문제 없이 배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번지 배송에서 발생했다.


이번 물량은 협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이벤트로 일괄 발송한 물건이었다. 개별 고객과 협의된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한꺼번에 보내진 물량이라 주소는 도로명으로만 적혀 있었고, 건물명이나 상호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층수조차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400개 이상의 물건을 도로명 주소만 보고 배송해야 하니 시간이 더욱 오래 걸렸다. 모르는 주소는 전화를 통해 확인하거나 배송사진과 문자를 보내며 확인해야 했다.


제품이 모두 비슷한 크기와 모양이라, 차량에 도로명 주소 순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물건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처음 해보는 이벤트 배송에 미리 대처 방법을 준비하지 못한 채 단순히 지역별로만 나눠 실었더니, 번지 배송 때마다 해당 주소의 물건을 찾기 힘들었다. 결국 물건을 찾기 위해 번거롭게 다시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아이스박스 내부의 새우젓이 흔들려 균형이 맞지 않아, 언덕을 오를 때마다 물건이 넘어지기 일쑤였다. 물건을 정리하고, 운전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 몸은 점차 지쳐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오후 5시 50분경,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척 상황을 보고받은 팀장은 2차 배송 물건을 분류장에서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지시했다. 오후 6시가 되면 분류장이 문을 닫아 물건을 꺼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바로 실장에게 6시 30분까지 연장을 요청하고, 물건을 다시 실으러 갔다.


출퇴근 시간과 맞물려 길이 막히면서 또다시 시간이 흘렀고, 점점 일이 끝날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남아 있는 물량은 여전히 250개 이상이었다. 오늘 안에 배송이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한 팀장은 다른 동료들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총 4명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우리는 특정 장소에 모여 물건을 나누어 재배송을 시작했다.


그렇게 주소를 찾아다니며 새벽 2시에야 모든 배송을 마쳤다. 20시간 동안의 강행군 끝에 겨우 일을 마쳤고, 다시 오전 6시에 출근해야 했다. 거의 2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일만 하며 산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회의에서 그 많은 물량을 소화했다고 하니 박수갈채를 받았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혼자만의 공이 아님을 알기에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또 300개를 배송했다. 평소 150~170개 정도 배송하던 내가 400개, 300개를 하려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잠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다시 배송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로를 가중시켰고, 집중력은 점점 떨어졌다. 잔실수는 늘고, 배송시간도 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배송을 하던 중 결국 같이 일하는 형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과부하가 걸려 구토를 하는 것이었다. 점심에 빵을 먹은 게 얹힌 건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엊그저께 과로로 인해 숨진 쿠팡 택배기사가 생각났다. 사람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노동이 과하면 죽는 거구나 싶었다.


팀장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 배송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매번 이런 식으로 배송을 하게 되면 결국 못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팀장은 이전에 구역을 인계한 동료에게 구역을 다시 가져갈 것을 이야기해보고 안 된다고 하면 그때 다시 논의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동료에게 연락을 했고, 네가 준 구역 다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자신은 이미 그 구역을 넘겼기 때문에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자신의 지역 주변에 신축으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할 재량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약간 빈정이 상하게 되었다. 이번에 물량 폭탄이 터진 곳은 그에게 받은 구역에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나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수량에만 급급해서 섣불리 받은 게 문제라고 지적하는 팀장의 말에 기가 찰 뿐이었다.


한번 받은 구역은 물릴 수 없다. 그게 이곳의 룰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는 잘못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받은 네가 문제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였다. 나는 불합리한 것을 참으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빈정이 상하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의 지원 요청에 이유 없이 성심성의껏 해줬던 게 후회될 뿐이었다.


그날도 결국 집에는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럼 이제 나 또한 개인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로 인해 생각을 달리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일을 못 하겠다고 전해야겠다고 생각되었다. 내 구역을 받지 못하겠다면 내가 빠지겠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나에게 줬던 구역은 그에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장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사정을 알린 후 내 살길을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잠을 청한 후 다시 출근을 했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팀장이 자리에 없었다. 실장과 대화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장실에 가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의 목소리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대해 논의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엿듣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전후사정은 팀장이 말할 것이므로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팀장이 내게 찾아왔고 회의 결과 내용을 알려주었다. 내가 해당 지역을 어려워한다는 점과 타 지역으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다른 팀에서도 수긍을 했고 자리가 나면 바로 이동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언제 옮겨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약간 반신반의하게 되었다. 결국 그냥 이대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부하가 치밀었다. 하지만 팀장도 자신이 지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며 사정을 했다.


그의 그런 노력이 허투루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기에 일단은 넘어갔다. 그렇지만 역시나 말만 그럴싸할 뿐 변화가 없다면 나는 언제든지 발길을 돌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일을 해주면 상대방도 좋은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그릇된 착각이 만든 결과였다.


물론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은 하지만 돌아선 마음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을 것만 같다. 아무리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 해도 내 몸이 힘들고 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내가 희생해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가니 남의 일을 도와주는 게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그 사람들의 마음도 돌릴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조금 틀렸다고 느껴졌다. 일명 흑화된다는 표현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나도 결국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 잘못된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게 되었다. 지금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사람이기에 팀장들이 회의까지 해가며 말들이 오간 것을 보면 내 위치가 이곳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공정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상황이 오기 때문에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베푼 특혜가 불합리함을 유발하고 그게 불만이 되어 터지게 된다. 모두에게 공정할 수는 없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만큼은 서로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 그에 대한 험담이나 불만을 하면 같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어느 정도 배려를 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오래 일한 사람이 편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금 내 입김 하나로 이 조직은 와해될 수 있으며 분란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얼마나 불합리하게 운영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일단은 팀장이 개선해보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기다려 볼 것이다. 택배 일 자체는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이런 문제는 큰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팀장은 1년 동안 잘해왔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에 대해 의아함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갑자기 그런 것이 아니라 매번 힘들게 배송할 때마다 생각한 것이며 '지역이 원래 이렇다'라는 이야기로는 내 뜻을 굽히기 어려운 것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개인주의화가 되는 것은 싫지만 변화가 없으면 동참할지도 모르겠다는 순간이다. 개인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여러 사람이 있으면 그러지 못하는 건 성격 탓인 것 같다.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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