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비문의 입구 앞, 숨조차 무겁게 가라앉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색빛 석문은 고요한 위압감으로 두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계단을 따라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은, 마치 이곳이 심판의 무대임을 선언하는 듯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의 울음조차 뚝 끊겨, 오직 살기만이 공간을 지배했다.
천비문,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온 무림 최강의 요새. 이곳을 무너뜨리려는 자는 없었고, 무너뜨릴 수 있는 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성전은 건을 잠시 응시하다가 낮게 읊조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내 앞에 서는 자는 많지 않다. 넌 누구냐."
건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이름을 알면, 정말 달라질까."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심연이 깃들어 있었다.
성전의 눈썹이 꿈틀였다. 그는 조소 섞인 음성으로 내뱉었다.
"제국군 기록엔 없는 얼굴이다. 듣던 것보다 초라하군. 무기도 없이 덤비다니, 나를 시험하는 거냐."
건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가볍고 하찮아 보였으나, 그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주위의 기운이 일순 뒤틀렸다.
"강한 자라 들었다. 진실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성전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심장은 알 수 없는 공포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막대기로 나를 상대하려고?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 감히 신을 농락하는 불경이다."
건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
"진정한 힘은 드러나지 않는다. 소리 없이, 저 깊은 곳에서 흐른다."
그 순간, 대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성전이 움직였다.
땅을 박차자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대지가 갈라지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일렁였으며, 주변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혔다. 검날이 찢어버리는 듯한 섬광을 뿜으며 허공을 가르렀다.
쾅!
대지가 통째로 흔들리며 먼지가 치솟았다. 그러나 건은 그림자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 있었다. 그의 옷자락만이 검기의 잔영에 스치듯 흩날렸다.
성전은 이를 악물었다.
"하하, 네 녀석... 날 조롱하는 건가? 아니면..."
그의 몸에서 검붉은 오라가 솟구쳤다. 살기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며 주변 공간을 찢었다. 성전은 아수라처럼 변모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콰앙! 콰앙! 쾅!
검격이 대지를 연속으로 가르며 바위가 부서지고, 천비문의 거대한 석문마저 균열이 퍼졌다. 허공은 칼바람처럼 찢어졌고, 석조 조각들은 하늘을 메우며 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건은 여전히 유유히, 죽음조차 비켜가듯 움직였다.
막대한 검강을 막대기로 흘려보내는 그의 모습에 성전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졌다.
"막대기로 내 검을 막는다고?"
그의 음성엔 점점 두려움이 섞여갔다. 광란의 검격은 방향을 잃고, 성전은 자신도 모르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건은 조용히 다가왔다. 발끝이 대지를 스치는 순간마다 흩날리는 먼지조차 그의 몸을 범하지 못했다. 마치 세계가 그의 존재를 피해가는 것처럼.
성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광폭하게 외쳤다.
"이딴 장난이 통할 리 없어!"
붉은 오라가 그의 몸을 감싸며 폭발했다. 하늘조차 뒤틀렸다. 주변 공간이 붉게 물들고, 돌계단과 거대한 석상들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부터 진짜다."
성전은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검을 들어 올렸다. 허공을 가르는 순간, 수십 갈래의 참격이 중첩되어 터졌다. 건의 움직임을 가둘 듯 사방을 메웠다.
건이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지만, 성전은 동시에 허공에 불꽃을 뿌렸다.
"燼滅之火(진멸지화)!"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사방을 삼켰다. 대지가 타오르고, 하늘은 피빛으로 물들었다. 검붉은 불길이 뱀처럼 꿈틀대며 건을 조여들었다.
그러나.
"靑蓮之壁(청연지벽)."
푸른 빛이 건의 주위를 감싸며 소용돌이쳤다.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불꽃을 짓눌렀고,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전장이 얼어붙었다.
성전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이럴 리가 없어...!"
건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심연과 같았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 세상의 이치조차 거스를 수 있는 자.
"네 기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미완성이군."
성전은 이를 악물며 최후의 힘을 끌어올렸다.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이제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했다.
"燼滅仙劍(진멸선검)!"
붉은 불꽃이 거대한 용처럼 치솟았다. 천공을 가르며 몰아친 화염의 파도는 대지를 삼킬 듯 몰려왔다. 하늘은 울부짖고, 땅은 비명을 질렀다.
건은 조용히 막대기를 높이 들었다.
순간, 세계가 갈라졌다.
쾅아아앙!
막대기의 끝에서 퍼져나간 투명한 충격파가, 성전의 최후의 일격을 찢어발겼다. 불꽃은 허공에 흩어졌고, 땅은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듯 함몰되었다.
천비문 주변의 산맥마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전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절망만이 서려 있었다. 심장은 마치 멎어버릴 듯 미세하게 떨렸다.
건은 조용히 걸어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넌 몰랐던 거야. 진짜 적은, 이름도 모를 저편에서 온다는 걸."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죽음처럼 스며들었다.
성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싸움은,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 공포는 이제부터였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검은 번개가 천비문을 향해 내리꽂혔다.
어둠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