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황금빛 석양 아래, 천비문과 제국군의 운명을 건 대치가 이어졌다. 바람이 멈춘 듯한 정적, 그러나 전장은 곧 폭풍의 중심이 될 운명이었다. 테라스가 손을 높이 들었다. 그의 검 끝에서 붉은 기운이 서서히 퍼졌다.
"총공세다! 모든 기사단, 진격하라!" 테라스의 명령과 함께 제국군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기병의 발굽 소리, 기사단의 창과 검이 햇살을 반사하며 번쩍였다. 수천의 병력, 완벽한 대열. 그것이 제국의 힘이었다.
천비문은 일순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문파의 수련생과 고수들이 각각의 자리를 지키며 숨을 죽였다. 누가 먼저 움직일지, 누가 먼저 쓰러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었다.
건은 조용히 막대기를 땅에 짚고 서 있었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조차 그를 중심으로 머뭇거렸다.
성전은 붉은 불꽃의 오라를 다시 한 번 끌어올렸다. 그의 검이 타오르며 전장의 긴장을 찢었다.
"내가 먼저 간다!" 그는 천비문을 향해 밀려오는 기사단을 향해 돌진했다.
기사들의 창이 성전을 향해 일제히 뻗었다. 성전은 빛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검으로 창끝을 튕겨냈다. 불꽃 검기가 폭발하며 기사 넷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그러나 곧이어 달려드는 기병과 궁수의 화살이 그를 덮쳤다.
위청은 문루 위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비문의 문주로서 수많은 전투와 고수들의 힘을 보아왔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설마, 건이 이 정도의 힘을 감추고 있었단 말인가?'
위청은 손에 쥔 검을 무의식적으로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건은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다가, 막대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고, 구름이 소용돌이쳤다. 대지의 맥이 요동치고, 산과 강이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허공을 찢는 듯한 신의 기운이 거대한 파도처럼 전장을 뒤덮었다. 기운은 마치 고대의 심판자처럼 모든 생명을 꿰뚫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기병의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고, 기사들이 갑옷을 입은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궁수들은 활을 들어올릴 틈도 없이 고꾸라졌다. 마법사들이 펼치려던 마법진이 허공에서 산산조각났다. 전장은 단 한 순간에 무너졌다.
성전은 싸우던 도중 그 파동에 휩싸이며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 역시 건의 힘 앞에 압도적 위압감을 느꼈다.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테라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럴 리가... 이건 전쟁이 아니야. 재앙이야...!"
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발걸음 하나에 대지가 진동했다. 막대기가 허공에서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그 기운만으로도 테라스의 갑옷이 가볍게 울렸다.
테라스는 이를 악물고 검을 쥐었다. 제국군의 최고 통치자로서 물러설 수 없는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 책임은 건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성전은 건의 기운에 움찔했지만,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비록 그 힘의 격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제국군의 기사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검을 들었다. "나는 제국군의 기사, 성전이다!"라 외치며 쓰러져가는 동료들 앞에 섰다. 그의 검이 붉은 섬광을 그리며 적의 마지막 파상공세를 가로막았다.
건이 테라스 앞까지 걸어갔다. "너의 제국도, 네 힘도, 지금의 너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건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나는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자. 네가 지키려는 질서 역시 내가 용납할 때만 유지된다."
테라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성전조차 몸을 굳힌 채 숨을 죽였다.
건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은 돌아가라. 곧 이 세계를 위협할 진짜 적들이 나타난다. 그때까지 너희 질서를 지킬 기회를 주겠다."
테라스는 주먹을 말아쥐며 침묵했다. 패배의 굴욕감, 공포, 경외. 그 모든 감정이 뒤섞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마침내 테라스가 입을 열었다. "...명령이다. 후퇴한다."
제국군은 처음엔 믿지 못하는 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병기를 거두기 시작했다. 제국의 깃발이 바람 없이 축 늘어졌다. 쓰러졌던 병사들이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천비문의 수련생들과 고수들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승리의 환호조차 감히 터뜨리지 못했다.
건은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다. 전장을 굽어보는 그의 시선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운명의 흐름을 지켜보는 자의 모습이었다.
테라스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이 존재는 대체 무엇이지? 인간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하늘 저편,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깔리고 있었다. 거대한 위협의 예고처럼. 붉게 물든 구름 사이로 검은 기운이 일렁였고, 건은 그곳을 잠시 응시했다.
그날, 천비문과 제국의 운명을 바꾼 대결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 어둠은 더 깊고 두터운 비극을 품고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