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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

만원에서 7천원으로

by 맛있는 하루

"수영장 일일이용권은 한 시간에 만원입니다. 20분 넘어가시면 추가 요금 2천원 있으세요."


황제수영이 가능한 집 근처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곳 스포츠센터에는 수영장, 헬스, 골프, 스쿼시, 사우나가 있다. 운동 종목별로 결제할 수 없는 회원권 위주의 센터다. 준회원은 3개월, 6개월, 1년권(260만원)이 가능하다. 보증금 있는 정회원(보증금 천만원+ 1년 205만원)이 제일 저렴하다. 준회원, 정회원 모두 하루 이용시간과 횟수 제한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3개월권(79만원)을 등록하고 싶지만, 언제 허리를 다칠지 모르니 당분간 자유수영 일일권으로 다녀보기로 했다. 이용 시간의 압박이 있지만, 내 체력에는 일일권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만원의 행복.




오래전, 만원의 한계를 극복해보자는 '행복주식회사'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며 사치스럽다는 편견에 맞서는 프로그램이었다. 알뜰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소비의 거품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만원은 일주일을 살기에는 버거운 돈이다. 하지만 하루에 만원을 취미생활에 쓴다? 아,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아 며칠을 방구석에서 수영을 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 결심했다.


내일의 수영을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해 몸을 관리하자고.


내일의 수영을 위해 허리에 좋지 않은 동작을 금지하고, 걷기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보자고. 이왕 만원을 소비한다면, 십만원의 효과로 뽑아먹어보자. 1분도 헛되이 쓰지 말자.


출처: https://pexels.com/


준비운동은 수영장으로 걸어가는 십 분을 활용하고, 옷은 입고 벗기 편안한 옷으로 입자. 머리도 질끈 묶고, 샴푸와 린스도 짜기 편안한 용기로 준비.


키 받아 탈의, 샤워실로 직행: 3분

수영 전 샤워: 7분

수영: 30~35분

수영 후 샤워: 10~13분

머리 말리기: 5~7분

옷 갈아입기 & 샤워키 반납: 3분


역시 나는 계획형, J형이구나. 분 단위로 적어놨지만, 초 단위로 몸을 움직여야지.


자유형 한 바퀴. 헉헉헉. 좀 쉬고 다시 수영하고 싶지만, 노노노. 만원을 제대로 활용하려니 물을 더 헤쳐보자. 무리하면 안 되니 속도를 줄이며 물 위를 떠다니듯이 가보자.


'에고, 또 삐끗했다. 내일은 수영을 못 오겠다.'




처음에는 수영하면서도 허리를 삐끗했다.


하루 수영하고 그다음 날은 휴식이었다. 한 달 뒤에는 수영-수영-휴식-수영. 넉 달 정도 지나니 , 수영-수영-수영-휴식-수영이 가능해졌다.


반 년을 꾸준히 했다. 이제는 일일 수영권보다 회원권이 더 저렴할 때가 왔다.


"저, 준회원 3개월 등록할게요."

"아, 이제 등록하시는군요? 매일 오실 거면 회원권이 저렴하죠. 차라리 1년이 훨씬 경제적일 텐데요."

"허리를 또 다쳐서 못 올까 봐서요. 일단 3개월 등록부터 할게요."


운동에 돈을 써본 지가 얼마만인가. 소비가 아니라 가치 있는 투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영했다. 일일 입장권이 아니라 시간 제한도 없다. 열심히 수영하고 쿨다운, 걷기까지. 정말 열수영했다.




회원권을 등록한 것이 아까워서 휴관일 제외하고 매일 수영을 갔다. 저질 체력에 수영을 적게 하고 오는 날이 있어도 매일 출석하니, 체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게 느껴졌다.


3개월이 지났다. 해가 바뀌며 몇 년 만에 일일 입장권과 회원권이 인상되었다.


자유수영 일일권은 만오천 원으로. 회원권은 10% 인상.


3개월 등록비가 아까워서 빠지지 않고 출석 도장을 찍고 나니, 매일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체력이 올라왔다. 1년권을 등록해도 아깝지 않겠다. 그렇게 준회원 1년권을 끊었다.


목돈으로 거금 280만 원이 지출되었으나, 365일로 나누면 매일 7천 원의 행복이다.


처음 만원이 아까워서 고민했던 그때를 생각해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 변화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만원짜리 일일권이 무서워 망설였던 내가, 이제는 하루 7천 원으로 행복을 계산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작은 용기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변화가 되었다.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매일이 더는 두렵지 않다.


앞으로도 이런 작은 용기를 잃지 말자. 망설이는 순간이 오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봐야지.




#수영에세이 #수영일기 #자유수영 #꾸준함 #시작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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