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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수영하고 싶다

갑작스러운 이별, 예상치 못한 공백

by 맛있는 하루

"수영장 수질관리로 인하여 오늘부터 수영장 이용이 금지됩니다."


2025년 9월 19일 금요일 오전 10시 17분. 청천벽력 같은 문자를 받았다.


가슴 두근거림과 심장 쪼이는 증상이 심해져서 순환기내과 진료를 받고 나오던 길이었다. 협심증 의심 진단을 받고 각종 검사 일정을 잡고, 응급약도 처방받았다. 배는 조금 고팠지만, 수영을 가야 하니 공복을 유지하기로 했다.


'오늘은 간헐적 단식이 좀 길어지겠네. 점심 수영은 어떤 기분일까?'


병원을 나서며 수영에 대한 설레임 가득하던 찰나에 받은 문자였다.




"아... 어째 어제 수영장이 조금 이상하더라."


강습 위주 수영장이 아니라서 다른 곳에 비해 이용 회원이 적다. 그 덕분에 수질이 괜찮은 편이다. 어제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제 수영할 때 물이 더러웠다. 평소와 달리 물에 불어 찢어진 휴지 조각이 떠다니듯 뿌옇게 보였다.


'수경 탓인가? 내가 안티포그를 안 발랐나? 발랐던 것 같은데 그게 어제였나?'


내 정신머리를 탓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뭔가 어제부터 징조가 보인 것 아닐까. 궁금해서 문의를 해봤다.


물빠진 수영장


☎️ 때르르르릉


"안녕하세요? 회원 OOO인데요. 지금 수영장 가려고 하는데, 수질이 왜요?"


"안녕하세요. 어제부터 수질이 이상하다고 말씀 많이 주셨는데요. 오늘 아침 7시 반경에 수영장 속에서 검은 물이 뿜어져나와서요. 오늘은 확실히 입수 금지고요. 여과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흠... 어쩔 수 없지요. 일단 오후에 헬스라도 갈게요."


오늘만 입수 금지가 아니라니.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는 직원의 말이 더 절망적이었다.




수영을 하지 않을 거니 밥부터 먹자. 수영을 못하는 허한 마음을 달래려면 소고기를 구워야겠다. 상추도 씻고, 마늘, 고추, 양파까지. 야무지게 아점을 배불리 먹고 스포츠센터로 향한다.


씻수. 샤워실 가서 씻고만 온다는 뜻이다. 수영을 하러 간 게 아니라 씻으러 간 김에 수영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말 씻고만 오게 생겼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홀딱 벗었다가... 아차, 이게 아니지. 수영인의 습관은 무섭다. 아무 생각 없이 샤워부터 할 뻔했다. 다시 속옷을 입고 헬스복으로 갈아입는다.


처음으로 4층을 올라가본다.


- 3층: 인포데스크, 스쿼시장, 탈의실, 샤워실, 사우나실, 그리고 수.영.장.

- 4층: 헬스장, 실내 트랙, 요가실, 에어로빅실, 골프연습실




여기저기 탐색을 마쳤다. 숨쉬기 운동과 수영 말고는 운동을 다 싫어하는 나는 씻으러 가려던 참에, 수영장 어르신 친구를 만났다.


"어머, 여기는 어쩐일이야? 아! 수영장 못 들어가서 헬스장에 올라왔구나?"

"네. 구경 마치고 씻으러 가려고요."

"왜? 올라왔는데 뭐라도 해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실내자전거라도 타. 이리 와."


그렇게 실내자전거를 탔다. 헬스장에서는 이어폰이 필요하구나. 집에 두고 온 이어폰이 아쉬웠다.


물속에서 50분은 참 빨리도 지나가고 지루할 틈도 없더니, 헬스장에서는 시간이 왜 이리 안 가지? 실내자전거 탄 지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5분밖에 안 지났네?




꾸역꾸역 20분이 지났다. 얼른 실내자전거에서 내렸다.


드르럭 드르럭. 일명 '덜덜이'라고 하나? 종아리에 놓고 다리를 풀었다. 자전거 20분에 종아리 알이 배길 리는 없지만.


두구두구두구 덜덜덜. 이건 이름도 모르겠다. 허리에 벨트를 두르고 덜덜덜 떠는 것으로 헬스장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한 달에 두 번(둘째 주, 넷째 주) 휴관일은 유급휴가 같아서 좋았다. 두 주 동안 열심히 수영했으니 하루는 충분히 쉬어도 좋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고 기약 없는 수영장 입수 금지는 당혹스럽고 싫다.


"내가 원하지 않는, 회사에서 쉬라고 지정해주는 무급 단체휴무일이 이런 기분이랄까."


에라 모르겠다. 이왕 벌어진 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재량휴업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쉬어보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반신욕이나 여유롭게 해야겠다.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갔다. 마침 아무도 없었다.


수영하고 나오면 열탕에서 잠깐 소독물 냄새를 빼주고 건식사우나 위주로 땀을 빼고 나온다. 항상 온탕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패스했었는데, 모처럼 들어간 온탕의 온도가 마음에 든다.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


물속에서 발목 스트레칭을 하며 앞뒤로 움직여본다. 손도 물속에 넣어 물을 오른쪽 왼쪽으로 밀어낸다.


누가 물은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나? 물 밖에서 물은 잡히지 않아도, 물속에서는 물이 잡히는 데 말이다. 온탕에 앉아 발목과 손으로 물을 앞뒤로 가르며 느껴본다. 물의 저항을 느끼고, 몸과 물의 조화를 느낀다.


아~~~~~~~~~~~ 수영하고 싶다!!


수영하고 싶은 마음을 잘 간직했다가, 다시 소독물에 빠지는 그 기쁨을 누려야지. 그날에는 수영하기 싫다고 씻수만 한다고 꾀부리지 말고 열수, 즐수, 행수해야지.


물은 기다려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쉽지만, 이 공백이 있어야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오늘은 마음속으로 자유형을 헤엄쳐본다.




<수영 용어 TIP>

- 씻수: 씻으러 간김에 수영하기

- 열수: 열심히 수영하기

- 즐수: 즐겁게 수영하기

- 행수: 행복하게 수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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